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 , 2014
‘그날’, 에이미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다. 평생을 부모님이 만든 ‘어메이징 에이미’와 비교 당하며 ‘제품’으로 살았고, 사랑에 빠진 뒤에도 남자들이 원하는 ‘쿨 걸’을 연기했다. 모든 자리에서 주인공이었지만 정작 아무도 그녀의 진짜 이야기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진짜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없었던 사람. 그런 여자가 자신을 배신한 남편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고 사라져 버리기로 결심한다. 집을 떠난 그녀는 마음대로 먹고, 까맣게 살을 태우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사실 여기까지는 어떻게 보면 흔한 이야기다.
그런데 <나를 찾아줘>의 진짜 이야기는, 에이미가 이대로 사라지지 않고 ‘살아 남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원래 계획처럼 닉의 숨통을 조이다가, 적정한 시점에 자살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면 그것도 나름 통쾌한 복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그만 퇴장해야 한다. 사실 그녀가 진짜 원했던 것은 복수가 아니라 완벽한(것처럼 보이는) 부부, 행복한(것처럼 보이는) 결혼 생활이었고, 그걸 깨달은 에이미는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기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목소리를 낸다. 이전에는 항상 주목받으면서도 ‘제품’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이제는 거짓이더라도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말 그대로 이야기의 지배자, 작가가 된다. (반면, 닉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지 못한다.) 요컨대 <나를 찾아줘>는 여성이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쟁취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물론 에이미는 충격적인 범죄를 저지른 비도덕적 인물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애초에 재미를 위한 장르 소설이며, 그녀는 세상의 모든 여성을 대표할(혹은 착한 여자여야 할) 이유가 없다. 세상에는 당연히 나쁜 여자도 존재하니까. (나쁜 남자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수많은 범죄, 스릴러, 미스터리에서 여성 캐릭터가 어떤 취급을 받아 왔는지 생각해 보면 더 분명해진다. 그런 장르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주로 남자들이며, 여자들은 납치되거나, 강간당하거나, 죽거나, 혹은 그 세 가지를 모두 당하곤 했다. 에이미는 그런 일을 겪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그것을 이용하는 가히 독보적인 인물이다. 에이미는 모든 여성을 대표하지 않으며, 그 어떤 여성도 에이미가 될 수 없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어메이징 에이미’도 아니고, ‘한 남자의 아내’도 아닌, 그녀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 여기서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모든 진실을 아는 닉조차 그녀에게 묻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에이미는 ‘사라진 여자’(Gone girl)에서 ‘살아남은 여자’가 되었고, 이 이야기를 끝내는 마지막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에이미가 이룬 성취다.
“우리가 좋아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그런 여자가 되고 싶은 유혹을 거부한다. 그 대신 그들은 자기 자신이 된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이 세상에는 읽고 싶은 이야기 하나가 더 탄생한다.”
–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