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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의 이자까야 Jan 27. 2020

시작은 반이 아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은 본디 어떠한 일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그 자체에 큰 의의를 두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 면에서 시작이 반이나 된다는 이 한 문장은, 특히 새해 목표를 세울 때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목표를 세우기만 해도 반은 이룬 것 같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또 '시작이 반이다'는 칠전팔기, 무모할 정도의 시도와 실패가 반복되는 스타트업과도 어울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1년 전에는 말이다.


스타트업 마케터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지금,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나에게 더이상 달콤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은 반일뿐' 내지는 '시작은 고작 시작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뉘앙스로 느껴진다.


시작은 진짜 반 밖에 안된다


신규 입사자가 초기 스타트업에 들어오면, 정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뭐라도 시작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새 광고를 집행하든, 영업을 뛰든, CS를 처리하든, 기존 데이터를 분석하든 무언가는 하게 된다. 또 이러한 일들을 시작하기 위한 가이드는 아무리 작은 스타트업이라도 존재한다. 내부 문서든, 대표나 동료가 전달을 해주든.


문제는 시작을 하고 난 이후다. 어떻게 하면 그 50%의 시작을 100%로 만들지,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다'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처음에 정해진 업무를 시작하고 그걸 하고 있다는 것에 안주한다. 나름 여러 시도들을 하지만 그러한 시도들로부터 무언가 깊게 배우려 하지도, 크게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성과가 안 좋으면 '운이 나빠서', 성과가 좋으면 '내가 시도라는 노력을 많이 해서'로 결론짓는다.


하지만 '시작은 반일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해진 업무를 어떻게 하면 기존보다 더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내가 행한 시도들의 개수보다 그 시도들이 성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더 궁금해한다. 시작은 50% 일뿐이고 100%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시적인 성과에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업무의 확장성, 효율성, 지속가능성에 대해 집중한다. 이렇듯 같은 업무가 주어져도 어떤 사람이 맡고 있냐에 따라 이 업무는 우선순위가 가장 높아질수도, 아예 없어질수도 있는 곳이 스타트업이다.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에 더 성장해야만 하는 스타트업은 당연히 도전정신이 중요하다. 도전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전만 한다고 해서 모두가 성장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작은 단지 5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회사의 관점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용의 머리로 시작했지만 뱀의 꼬리로 끝맺지 말자. 시작은 창대했는데 끝은 미미해지지 말자. 명심하자. 내가 한 시작은 어쩌면 고작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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