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저기압일 땐 고객 앞으로

1. 2018년 9월, 마카롱팩토리에 마케팅 인턴으로 입사한 나에게 처음 주어진 업무는 네이버 블로그 콘텐츠 쓰기였다. 차종별 특장점을 블로그 콘텐츠로 업로드해 마이클(당시 마카롱) 앱을 알리고 설치를 유도하는 일이었는데, 블로그 어투를 ‘~에요’로 할지 ‘~니다’로 할지로 꽤 오랜 기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2. 그리고 5년 후인 2023년 1월, 나는 CSO가 되었고 많은 고민 끝에 새로운 조직인 '엔진오일 TF'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이게 마카롱팩토리에서의 마지막 업무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실패하면 내가 여기서 성장을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3. 당시 오랜 정체로 조직 분위기는 침체되어 있었고, 지친 동료들은 하나둘 떠나면서 ‘안 될 거야’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나조차 에너지가 다운되는 느낌이었으니, 다른 동료들은 오죽했을까. 이런 위기 속에서 정체를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업은 모두 중단하고, 가장 중요한 엔진오일 교체 서비스에만 집중하는 목적 조직 TF를 만든 것이었다.


4. 그런데 사실 성장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정체가 왔고, 정체가 왔기 때문에 TF를 꾸린 것 아닐까. 조직을 신설했다고 해서 마법처럼 지금의 정체를 타파할 성장 전략이 솟아나는 건 아니었다.


5. 그러나 스스로의 무능함을 자책할 시간도 부족했다. 이게 안 되면 “우리는 진짜 안 돼”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퇴사하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다해 무라도 썰어보고 후회 없이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6. TF 리더로서 내가 내린 판단은 ‘고객에게 물어보자’였다. 고객을 만나 왜 마이클로 정비소를 예약했는지, 왜 예약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좋은 건 강화하고 부족한 건 고치자는, 전략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계획이었다.


7.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가릴 것 없이 모두 마이클 제휴 정비소에 가서 고객을 만났다. 다행히 우리는 고객을 만나기에 참 좋은 서비스였다. 고객이 어떤 정비소에 언제 예약했는지 알 수 있었기에, 미리 가서 기다리면 고객을 만날 수 있었다. 차량 정비 특성상 고객은 차를 맡겨두고 대기실에 있기 때문에 인터뷰 요청도 흔쾌히 받아들여 주셨다.


8. 또 정비소에 방문한 고객이 첫 방문 고객인지, 재방문 고객인지, A 정비소에 갔다가 B 정비소에 간 고객인지도 알 수 있어 세그먼트별 심층 인터뷰가 가능했다. 여기에 정비소 사장님까지 계셨으니, 여유가 있을 때는 사장님 인터뷰도 진행하며 플랫폼 공급자 관점에서 개선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9. 한 달 동안 수많은 정비소에서 고객을 만나본 결과, 정체 타파를 위한 ‘신의 한 수’ 같은 치트키 전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역설적으로 ‘너네 잘 하고 있어’와 같은 우리 서비스에 대한 확신이었다.


10. 이미 스무 번 넘게 마이클을 통해 정비소를 예약한 고객, 마이클 덕분에 폐업 위기를 벗어났다는 사장님, 너무 좋아서 이런 서비스도 만들어 달라는 고객… 이런 분들과 이야기하니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우리 서비스에 가장 확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11. 모두가 함께한 인터뷰 과정은 패배 의식이 짙었던 분위기를 환기했을 뿐 아니라, 일의 속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었다. 고객이 원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인터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얼라인되면서 ‘무엇이 더 중요하다’와 같은 설득 과정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12. 다행히 당시 위기를 잘 넘기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꾸준히 성장해 왔지만, 돌아보면 참 운이 따랐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의도하고 실행한 건 아니었으니까.


13. 그래도 온갖 숫자 속에 파묻혀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면, 우리는 지금도 고객을 찾는다. 고객과 대화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 꼭 현장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4. 성장이 멈춰 있지만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고객 앞으로 다가가면 의외의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러분 회사의 USP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