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200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원진 Jan 01. 2021

유치원 포토그래퍼의 조언_3

다섯


마지막으로 포토그래퍼의 조언은 '나와의 관계'에서도 유효했다.

나는 거의 매일 일기를 쓴다.  짧게는 서너 줄, 길 땐 서너 장을 넘기기도 한다. 일기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루 중 내가 했던 행동과 말, 느꼈던 감정을 모두 제어하고 알아채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불안, 두려움, 창피함 같은 감정은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대부분 마음속에서 뒤엉킨 채 고여 있다. 나에게 글쓰기는 그렇게 고인 것들을 바라보고, 풀고, 위로하는 일이다. 반대로 그래서 이전 일기를 주기적으로 찢거나 삭제한다. 어떤 면에서 그건 감정의 배설이기에 굳이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다. 다시 읽는 게 힘겹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일기장은 나에게 고해소이자 해우소이다. 어쩌면 포토그래퍼가 말한 여러 조언을 나는 이미 일기를 쓰며 행하고 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건 '좋아하세요.'라는 조언이다. 나는 이게 가장 어렵다. 

만약 "하모를 좋아하세요?"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하모 대신에 내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을 넣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랑받기 충분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나'를 대입하면 달라진다. '존재'가 아닌 '사랑받을 이유'가 필요해진다. 예컨대 돈을 많이 벌었거나, 멋진 옷을 걸쳤거나, 좋은 사진을 찍었거나 그도 아니면 분리수거를 잘하는 일처럼 뭐라도 해야 사랑할 수 있다는 계약서가 마음 입구에 놓여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오랫동안 행위에 따른 보상으로 스스로를 사랑했고, 반대로 행위에 따른 처벌처럼 나를 미워했다. 행위가 없는 상태의 나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막막하다. 아무것도 아닌 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바라보는 일 자체가 낯설고 두렵다. 텅 비어있을까봐 두렵고 볼품없을까봐 두렵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두려움을 바로 봐야 함을 느낀다. 늙는다는 건, 몸도 외모도 새로운 걸 배우는 능력도 젊은 시절처럼 아름답거나 풍요롭지 못하다. 보상으로 스스로를 사랑한다면 갈수록 '사랑할 이유'는 줄어들 것이다. 결국 나를 '존재'로 대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앞으로의 삶은 점점 더 초라하고 재미없어질 것이다. 나는 늙은 내 얼굴에 여유와 행복이 있길 소망한다.   

그래서 똑바로 바라보고 쓴다. 내 존재를 사랑한다고 쓰진 못하지만, 바라보고 있다고는 적을 수 있다. 

그 '바라봄'은 내 몸뚱이를 보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계절, 사랑하는 하모와 유치원 아이들을 바라볼 때 거울처럼 반사되는 내 모습이 있으니까.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을 보며 나 역시 존재 자체로 충만한 시기가 있었음을 떠올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치원 포토그래퍼의 조언_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