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감정의 지도, ‘냅킨’에서 시작되다
나는 치료를 받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치료가 진행되지 않았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 말만 하고 나왔다.
정신과 의사 앞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건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말할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단지 “대답”만 하고 있었다.
“예.”
“아니오.”
가끔은 “잘 모르겠어요.”
그게 전부였다.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고,
표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이해받기보다
무사히 지나가는 대화를 택했다.
교수님의 말.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냅킨에 못 쓸 정도면,
그건 아직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그 말이 머릿속에 탁 박혔다.
내 감정도 그랬다.
냅킨 위에 쓸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없었다.
감정은 분석 가능한 ‘현상’이길 바랐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나는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고,
변수를 조정해
흐름을 바꾸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감정은
수치화되지 않았고,
정의되지 않았고,
무너짐은
측정조차 안 되는 상태였다.
그 무너짐은
나를 조용히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말을 삼키는 순간, 회로가 끊겼고
그 단절이 이어지며
감정은 고여 썩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진료실 옆 카페에 앉아
하얀 냅킨 하나를 펼쳤다.
그리고 회로처럼
내 마음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침엔 누가 내 말을 끊고,
그다음 말이 목에 걸리고,
표현을 포기하고,
감정을 억제하고,
오후엔 무기력했고,
밤엔 아무것도 못했다.
그건 진단서였다.
감정을 해석하는 구조도였다.
그때부터 나는 감정을
‘에너지’로 보기 시작했다.
1) 감정 = 흐름
2) 무기력 = 단절
3) 과민함 = 과열된 회로
4) 폭발 = 감정압력 누출
그 회로를
‘마음에너지 회로’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그걸 그렸다.
냅킨에도, 노트에도, 머릿속에도.
그리고 다시 정신과에 갔다.
의사는 물었다.
“요즘 기분은 어떤가요?”
나는 그날,
처음으로 감정을 언어로 설명했다.
“지난주 화요일에 회로가 끊겼어요.
대화 필터가 작동했고, 찌릿 신호가 지나쳤고,
억울할 뻔한 회로가 과열됐어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웃으며.
그날 이후
우리는 감정을 해석하는 언어로
처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