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료실에서, 그리고 그 이후
요즘 내 얼굴이 계속 이상했다.
왼쪽 눈이 유난히 무거웠고,
양 볼이 퉁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두통은 자주, 그리고 조용히 올라왔다.
근데 이상하게, 아프다는 말이 잘 안 나왔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고,
대충 물 한 잔 마시고 넘기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오늘,
거울 속 내 얼굴이 진짜 낯설게 느껴졌다.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한참 말하다 말고 “얼굴이 자주 부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트레스성일 수도 있어요.
요즘 좀 많이 예민해져 있으신가 봐요.”
그 말이 딱,
가슴 속 어디쯤에 툭 하고 박혔다.
그게 다였는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
내 안에서 말도 안 되는 감정들이
조용히, 그리고 한꺼번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감정을 느끼는지도 몰랐는데
하나씩, 느껴졌다.
첫 번째는 슬픔이었다.
처음엔 멍한 기분이었는데,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별일 없었는데도.
근데 진짜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사실은 너무 오랫동안
아무도 내 마음을 묻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그동안 내가 참았던 슬픔은
울 일 없게 만든 게 아니라
울 수 없게 만든 삶 속에 숨어 있었다.
슬픔은 지금처럼,
아무 이유 없이 문득 찾아올 때 진짜였다.
두 번째는 외로움.
그냥 ‘혼자 있는 느낌’하고는 좀 달랐다.
몸은 같이 있어도
내 마음이 ‘혼자만의 시간’으로 오래 남겨진 듯한 느낌.
어릴 때부터 감정 말하면 민감하다는 소리 듣고,
너무 눈치 본다거나,
별 거 아닌 일에 서운해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내 감정은 어딘가에 항상 숨겨두고 살아야 했다.
누구와 함께 있어도
내 속은 혼자였던 거다.
그걸 이제야,
몸이 먼저 말하고 있었던 거다.
세 번째는 억울함.
참 많이 맞춰줬다.
진짜 무슨 기계처럼.
상대가 불편할까 봐,
내 말이 부담일까 봐,
심지어는…
내가 말하는 것조차 상대의 피로가 될까 봐
입을 다물었다.
근데,
정작 돌아보면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맞춰주지 않았다.
나는 그냥,
늘 괜찮은 사람이었고
그 안에서 서서히 부서져가고 있었다.
그게 억울했다.
진짜 억울하다는 말조차
지금에서야 처음 꺼내본다.
마지막은 절망감.
감정을 느껴도 뭐가 달라지겠냐는 마음.
아무리 정직해져도,
상처받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걸
몸이 먼저 배웠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마음은 감정을 꺼버렸다.
지루함조차 느낄 여유가 없는 삶.
그런데도 여전히 누군가에겐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 애썼던 삶.
그걸 멈추고 나서야,
절망감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 감정은 지독하고 무력했지만,
동시에 나를 더 이상 속이지 않게 해줬다.
이건 감정을 견디는 시간이 아니고,
감정을 드디어 허락하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늦게 찾아온 감정들은,
내가 너무 오래 나를 안아주지 못했다는 걸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