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가진 사람의 말이 기준이 될 때

요즘 자주 보이는 영상이 있다.

“이렇게 하면 서울대 갑니다.”

“이렇게 하면 월 1,500 벌어요.”


처음엔 나도 혹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조금 덜 헤매고 싶고

조금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잘 아는 분야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가 멈췄다.


‘어… 이건 아닌데.’


그때 알았다.

나머지도 다 그럴 수 있겠구나.


그 영상들은

‘이렇게 하면 행복해진다’가 아니라

사실은 이런 말에 가까웠다.


이미 돈이 있어야 하고,

이미 좋은 환경에 있어야 하고,

이미 아이가 잘하는 집이어야 한다는 전제.


그 위에서만 성립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전제는

아무 말 없이 지워진다.

마치 누구나 출발선에 서 있는 것처럼.


그걸 보면서 문득,

이건 조언이 아니라

구조를 숨긴 채 희망을 파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씁쓸했던 건,

그 영상에 달린 구독자 수였다.

20만이 넘는 숫자 앞에서

‘아, 이게 지금 우리가 숨 쉬는 공기구나’ 싶었다.


누군가는 이걸 보며

“내가 부족해서 그렇구나”라고 느끼고,

누군가는 또 한 번

자기 삶을 부정하게 되겠지.


사실 우리는

행복해지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서울대를 가든,

월 1500을 벌든,

그건 결과일 뿐인데

언제부턴가 그게

‘사람의 값’처럼 쓰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영상들이 조금 무서웠다.


조용히,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의 삶을 서열로 나누고 있었으니까.


행복은 원래

그렇게 시끄럽지 않다.

조용히,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속도로 오는 건데.


그걸 잊지 않으려고

오늘도 이렇게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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