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가끔 연락이 오면 만나기도 하지만,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다. '친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굳이 친구를 만들고 싶지도 않다. 친구란 무엇일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친구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왔고, 친구가 없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나는 친한 친구가 없는 걸까?
어릴 때 받은 상처 때문일까?
사람 자체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실망하고 싶지 않다. 나는 4남매 중 둘째 딸이다. 부모님은 막내아들을 원하셨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대가족이 되었다. 그 시절엔 여자아이들이 작은 식탁에서 식은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나는 그런 차별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당시엔 그런 분위기가 흔했으니까. 그럼에도 초등학생 때 엄마가 “너를 낳고 남자아이가 아니라 속상했었어”라고 말했을 때는… 어린 마음에도 꽤나 슬펐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오며 받은 또 다른 큰 상처는 '비교'였다.
엄마를 닮아 예쁜 여동생이 있었고, 나는 아빠를 닮아 평범한 외모였다. 따로 보면 못난 얼굴은 아니지만, 동생과 함께 다니면 늘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학원을 가도, 학교를 가도, "동생은 예쁜데 둘이 안 닮았네." 같은 말을 들었다. 중학생 때는 같은 반 남학생이 "네 동생이 000 맞아? 동생은 예쁘던데 너는 안 예쁘네."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 말이 얼마나 상처였던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시절, 동생과 비교당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상처가 사라진 건 아니다. 어쩌면 내가 사람을 멀리하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였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함부로 평가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모든 사람과 가까운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소통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을 온전히 드러낸 적은 거의 없다.
겉으로는 친근하게 대하지만, 말 그대로 '사회생활'일뿐이었다.
나는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하면 실망하고, 실망은 곧 상처가 되니까. 그렇다면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것 아닐까?
내 울타리 안에는 가족만 있다
오직 가족만이 내 울타리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가족은 어떤 순간에도 내 편이 되어줄 것이고, 내가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나를 이해해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더 잘 보이려 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해 왔다. 어쩌면 타인에게 쓸 에너지를 가족과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평가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고, 타인에게 감정을 낭비하기보다는 나를 돌보고, 나를 위해 시간을 쓰며 살아왔다.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신경 쓰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될 때도 있었다.
친구가 없는 삶, 나는 괜찮다
가끔 사람들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좋아 보인다. 하지만 부럽다거나 나도 그들 사이에 끼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전히 내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친구는 만들고 싶지 않다.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나처럼 사람을 멀리하며 사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또 살아가며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도 없다는 것도 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쉽게 정을 주지 못하는 나는 왜일까?
어쩌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세상에 나를 던질 용기가 부족한 걸까?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려고 애써본 적도 있다. 누군가의 말이 깊은 의도에서 나온 건 아니었을 수도 있고, 나를 일부러 상처 주려던 건 아니었을 테니까. 이제는 나를 평가하는 말들을 들어도 예전처럼 쉽게 상처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들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내 가치관에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내 삶을 통제하고 있다.
이후에는 생각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마음을 열어볼 생각은 없다. 친구가 없는 삶이 가끔은 외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별다른 단점이 없다.
그저 가끔, 내가 사는 방식이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뿐이다.
어쩌면 그냥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아닐까.
사람들 틈에서 외로움을 느끼기보다, 혼자라는 평온 속에서 나는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
그것이 나를 지켜낸 방식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