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밀려올 때마다 떠오르는 글이 하나 있다. 어니 J. 젤린스키의 책 <느리게 사는 즐거움 Don't Hurry, Be Happy> 속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이다.
결국, 단 4%만이 우리가 실제로 대처할 수 있는 진짜 걱정거리다.
다시 말해, 96%의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마치 내 마음속에 잔잔한 파장이 일렁이는 듯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수치를 원형 그래프처럼 내 머릿속에 그려두었다. 그리고 걱정이 나를 덮칠 때마다 이 그래프를 하나씩 꺼내본다. 이건 어디에 해당할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씩 정돈된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친정에 다녀왔다.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고생했다고 5만 원을 주셨다. 그런데 며칠 뒤, 오빠가 그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분명히 받았던 돈인데, 어디로 간 건지 짐작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돈 자체보다도 애매한 상황이 주는 답답함과 짜증스러운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까지 들어 마음이 복잡했다. 힘들게 일해서 주신 돈인데, 이렇게 잃어버렸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그때 나는 다시 원형 그래프를 떠올렸다. ‘이건 이미 일어난 일, 즉 30%에 해당하겠구나.’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그에 끌려가 마음까지 휘둘릴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다 보니, 나중에 어딘가에서 나오면 좋고, 아니어도 어쩔 수 없지, 라는 쪽으로 생각이 자연스럽게 흘렀다. 그래, 다시 열심히 벌면 되는 일이지. 그렇게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졌다.
또 다른 예도 있다. 때때로, 아주 가끔 남편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마주쳐 마음이 흔들리는 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 말 그대로 걱정 아닌 걱정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일은 일어날 가능성도 희박하고, 설사 일어난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결국 그것도 40%,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 또한 걱정 목록에서 과감히 지워야 한다.
사실 이렇게 사건을 꼭 분류해서 어디에 해당한다고 나누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그 걱정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내 마음이 조금씩 정돈되고 평온해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까지 그 4%에 해당하는 ‘진짜 걱정’을 마주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4%가 눈앞에 있어도 예전처럼 그것을 걱정으로 인식하지 않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의 나는 웬만한 일에는 ‘이건 걱정할 일이 아니야’ 하고 스스로 선을 긋는다. 지금도 이 글을 쓰기 위해 예전에 했던 걱정들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나는 그동안 참 많은 쓸데없는 걱정들 속에서 스스로를 지치게 해왔구나—하는 깨달음이 문득 마음속에 스며든다.
예전에 그렇게 힘들어했던 걱정들이 지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또 하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달 전, 나를 괴롭히던 고민이 뭐였는지 떠올리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고, 일 년 전의 걱정들은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희미해져 있다. 분명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고,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며 애를 썼던 문제들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지나고 나니 결국은 다 지나갔고,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을 견디고 잘 걸어 나왔다. 그 사실이 새삼 대견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걱정이 몰려와도, 조금은 느긋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이미 많은 걱정들을 이겨내 왔다는 걸 안다면, 앞으로의 걱정에도 덜 휘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때의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고 싶다.
물론 나는 아직 부족하다.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하찮은 걱정 하나에 깊은 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그리고 언젠가는, 걱정을 차분히 분류하고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날도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