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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훈 Dec 10. 2020

vol. 57 -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letter.B를 보내는 나성훈입니다. 두 달만에 다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헤맸습니다. 글쓰기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길을 잃었다고 할까요. 어쩌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었고, 그 외에는 부차적인 일일 뿐이었습니다. 연재를 재개합니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입니다. 폴란드 출신 ‘올가 토카르추크’ 라는 작가의 소설입니다. 작가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2018년에 노벨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처음이라, 나의 일상이 세계적인 흐름과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베이스로 ‘흔적’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는데 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참 서글픈 일입니다. 


작품과 관련하여 저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자면, 몇 주 전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코로나가 다시 대유행 하기 전입니다. 거기서 농장을 갔는데, 소가 있었습니다. 농장에 소가 있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그곳은 소를 아주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송아지에게 우유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체험해 보라고 자판기에서 우유병을 뽑았습니다. 송아지 아주 가까이 다가가 우유를 주는데, 말 그대로 소처럼 크고 맑은 눈이 보였습니다. ‘아, 저런 눈을 가진 존재를 우리가 부리고, 체험하고, 먹는구나.’ 그 눈을 떠올리면 앞으로 먹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기억에서 빨리 지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일상이 지속되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동물과 온 생명에 대한 섬세함이 많이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과 측근은 식물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동물과 자연….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반면에 주인공이 견디기 힘든 존재들도 나옵니다. 두 대립되는 사람들 속에서 생기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책은 세심한 가이드가 되어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갑니다. 챕터가 시작할 때마다 블레이크의 시 구절이 나옵니다. 제가 볼 때 블레이크는 카나리아 같은 시인입니다. 연약해서 모두를 깨우칩니다. 어쩌면 이 책은 블레이크를 닮은 것 같습니다. 


독서를 마치고 <흔적>이란 영화도 함께 보면 좋을 책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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