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이 갈렙(Caleb)인 이유

자아실현 이야기 #1

by 필문
7DE11025-04F4-4D37-A68C-0E54EFFB783C.jpeg 나의 첫 해외 경험. 필리핀

2015년 겨울. 당시 24살이던 나는 처음으로 해외에 나갔다. 학교 어학연수 프로그램으로 두 달간 필리핀 세부로 떠났는데 사실상 어학연수를 가장한 해외여행이었다. 어학연수 준비사항으로 영문이름 만들기가 있었는데, 초등학생 시절 영어학원에서 지어준 Steven이라는 이름 외에 영어 이름을 지어 본 적이 없었다. 이 기회에 의미 있고 값진 이름을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그냥 엄마가 추천해준 성경 인물 '갈렙'으로 정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갈렙의 영어 스펠링은 'Caleb'. '케일럽'이라고 발음하는 이 이름이 익숙한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없었다. 주변 친구들은 그냥 '갈렙'으로 부르거나 '카레'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기도 했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이름을 좋아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여호수아와 더불어 가나안 정탐 시 아낙 자손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맹한 정탐꾼. 당시에 어린 나는 그 작은 이유 하나만으로 이 이름을 좋아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 이름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갈렙의 삶은 '용맹함' 그리고 '인내'로 정의할 수 있겠다. 열두명의 정탐꾼 중 무려 열 명의 정탐꾼들이 그 땅에 대한 반감을 내비쳤고, 실제로 거대한 아낙 자손들을 보았을 때 인간적인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하지만 갈렙은 물러서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두려움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갈렙을 이길 수 없었고, 그러한 이유가 용맹스러운 갈렙을 만들 수 있었다.

처음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갈렙의 나이는 사십 세. 하지만 헤브론 산지를 정복할 당시의 나이는 무려 팔십오 세. 사십오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심지어 갈렙이 선택한 땅인 헤브론 땅은 크고 견고하여 정복이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팔십오 세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당당히 승리하여 입성하게 된다. 사십오 년이라는 세월 동안 기다림의 지쳐 쓰러지기는커녕, 갈렙은 인내하며 기다렸고 누구보다 용감하게 그 땅을 쟁취하게 된다.


7FA8B7E0-2AAB-43D9-A20D-BA9F56DF350C.jpeg 첫 회사를 그만두던 날

내가 갈렙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하게 된 이유는 나와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학생활을 꽤나 열심히 해서 괜찮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졸업도 전에 취직했었다. 하지만, 26살에 그런 월급을 받아 본 것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던 것도 사실상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었고, 나름의 기준에서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커리어였지만, 7개월 만에 그만두고 방황을 시작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서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물론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떠한 의미로,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은 생각보다 나를 괴롭게 하였다. 그렇게 첫회사를 그만두고 일 년 정도를 도서관에서 지냈던 것 같다. 매일 말씀을 읽고 여러 가지 책을 접하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떠한 사람이 돼야 하는지. 하나님의 나를 향한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깊이 파고드는 시간을 가졌었다.

답을 찾았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사실 돌아보면 그렇게까지 깊이 묵상해본 적이 살면서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크리스천인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이를 위해 인생의 브레이크를 걸어주셨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때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신앙이나 생각은 어느 정도 중심을 잡게 되었고, 이로 인해 더 이상 크게 흔들리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답을 찾던지 못 찾던지 마음의 평안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답을 찾은 것도, 안 찾은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의 삶은 내가 대학시절 꿈꾸었던 삶과는 거리감이 있다. 사회적인 성공도, 그렇다 할 업적도 없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주신 비전이 분명히 있고, 언젠가는 그것을 이루실 줄을 확신하기 때문에 현재 보이는 삶으로 인해 의심하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갈렙도 처음 약속의 땅을 맛보고 사십오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처럼, 나에게도 아주 긴 단련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갈렙이 그랬던 것처럼,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고 의심하지 않으며 용맹하고 정직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언젠간 이루실 그 비전을 보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나에게 갈렙이라는 이름이 주어진 것 같다. 그래서 갈렙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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