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푀유
대학시절 했던 아르바이트 중에서 ‘조명 보조’는 좀 특별했다. 국악 공연장에 조명을 설치하고 조명기사를 보조하는 시다였다. 세팅과 시연은 기사가 맡았고 나는 조명기구를 나르거나 전선을 배치하는 따위의 허드렛일을 했다. 대부분 소규모 공연이었기 때문에 조명기사가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지만, 운반할 도구가 많거나 공연시간이 길어지는 경우에 나를 불렀다. 기껏 한 달에 한 번, 바쁠 때 두세 번이었다.
조명기사는 50대 아저씨였다. 설비를 소유한 개인 사업자로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젊을 때부터 국악인들을 쫓아다니며 그쪽 바닥에서 인맥을 쌓았다고 했다. 변수 많은 공연의 특성상, 그는 스케줄이 잡히는 당일에 연락을 취해왔다. 나는 한 번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수업을 제낀 적도 있다. 페이가 셌다. 다른 아르바이트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의 서너 배를 당일날 바로 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국악공연은 보통 연주와 춤을 포함한 창 위주의 극공연으로 나뉜다. 활동성이 없는 음악공연은 조명이 단조로운 반면, 극공연은 악기까지 동원되므로 조명이 화려하고 가짓수가 많았다. 가야금, 대금, 퉁소, 피리, 해금과 같은 국악기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어서 잘 모르겠으나, 참가하는 연주자 모두가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대가들이라고 했다. 나는 춤 공연 쪽에 더 관심이 갔다. 대학생으로 구성된 공연단원들은 어느 유명한 무용가의 문하생들이었다. 한복을 입은 모습이 모두 선녀 같았다. 예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했다. 나보다 두세 살 나이가 많았는데, 평소에는 눈길 한번 맞추지 못하다가, 공연 중에 무대 뒤에서 훔쳐보는 걸로 만족했다. 부채를 들고 화려한 춤사위를 펼치면 황홀했고, 칼을 들고 박진감 넘치게 퍼포먼스를 펼치면 숨이 막혔다. 어쩌다 짐 옮겨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하루 종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국악공연은 생각보다 수요가 많았다. 국내에 거주하는 미군과 그 가족, 외국계 기업 연수, 외교부, 각국 대사관 등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공연들이었다. 그리고 또 한 곳, 전통문화를 자본과 권력으로 소유할 수 있는 계층이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세상의 모든 돈(All the Money in the World)’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부자가 되는 것과 부자로 사는 것은 다르다.” 사람들은 어떻게 부자가 될까에 주목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자는 어떻게 사는가이다.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의 집이었다. 살림살이를 보지 못했으니, 기거하는 집은 아닌 듯했고, 손님 대접을 위한 별도의 연회장이었던 같다. 겉에서 보면 썰렁한 두 동짜리 단층 건물인데, 들어가면 지하 2층으로 두 동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마치 동화 속 미로 궁전 같았다. 난처했던 일화가 있다. 처음 갔던 날, 긴장한 탓인지 속이 부글거리더니 갑자기 배에서 뇌를 향해 빠르게 구조신호가 올라왔다. 마침 화장실이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다리를 벌리기 전에 입이 먼저 벌어졌다. 도기를 제외한 모든 부속이 황금색이었다. 색만 황금이 아니라, 진짜 황금인 것 같았다. 손잡이, 수전, 걸쇠 등등. 이런 곳에 똥을 싸고 괜찮은 걸까, 싸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화장실을 몰래 빠져나오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경비원이 나를 불렀다. 다음부턴 화장실을 쓰지 말라는 경고였다. 청소담당 아주머니가 재빠르게 들어가 황금색에서 손때 얼룩을 지웠다. 내가 쓸 수 있는 화장실은 지상 야외에 있었다.
공연은 소극장이 있는 지하에서 열렸다. 2시간 전에 공연자와 스텝들은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빨리 열릴 때도 있었지만 한두 시간씩 늘어지는 게 예사였다. 보통 오후 6시로 지정된 예정시각은 관람자의 스케줄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관람자가 도착했다는 무전이 오면 부산하던 지하공간은 일순간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양복 입은 경비원들만 입구로 도열하고, 나머지는 벌레처럼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공연은 한 시간 남짓, 길어야 한 시간 반을 넘지 않았다. 관객은 극히 소수였다. 얼핏 보기에 대여섯 명에 지나지 않았다.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몇을 제외하곤 아는 얼굴이 거의 없었다. 진짜 대단한 사람들은 텔레비전에 얼굴이 안 나온다고 조명기사가 말했다. 종종 상식을 벗어난 그의 말을 신뢰하기 힘들었다. 정원 마당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몇억씩 한다고 했다. 우리 동네 뒷산에 흔해 빠진 나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설마요? 몇백이 아니고?”
“저런 것도 몇 천씩 하는데?”
조명기사는 연못 밑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잉어를 가리켰다. 놀리는 건가 싶다가도 그의 얼굴을 보면 아니었다. 어쩐지 부유한 잉어들은 뭔가 달랐다. 자태와 색이 고왔고 무엇보다 여유가 흘러넘쳤다. 감히 무서워서 돌도 던질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난 빈 객석에는 관객이 남긴 흔적이 있었다. 어려운 이름의 양주와 포도주, 얼음이 반쯤 녹은 잔, 생과일주스와 알록달록한 다과. 손도 대지 않고 남겨진 것들을 숨어있던 사람들이 나와 시음했다. 내게도 잔이 돌아왔지만 나는 술잔 대신 한입 크기의 자그마한 케이크를 골랐다. 씹는 것과 동시에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여러 모양이 있었는데 경쟁이 심해 다 먹지 못하고 두 개를 집어먹을 수 있었다. 모양만큼이나 맛이 오묘했다. 언제 먹은 건지, 공기가 아닐까 착각하게 만드는 케이크였다. 구름의 맛이 딱 그럴 것 같았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시중에 흔한 게 아니라, 어느 호텔에서만 소량 주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 팔면 개당 돈 만 원은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손가락을 빨면서 오래 음미하지 않고 빨리 삼킨 것이 후회스러웠다.
가격 때문만이 아니라, 그 뒤로 그 케이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명기사로부터 전화가 올 때마다 열 일을 제치고 달려갔다. 공연시간이 임박했을 때 호텔 매니저가 직접 들고 나타났다. 이름이 ‘밀푀유’였다. 프랑스어로 ‘천 겹의 잎사귀’라는 뜻이 숨어있었다. 얇은 페스트리 사이사이에 부드럽고 달콤한 필링을 번갈아 포개 만든 요리로, 겉보기만큼이나 손이 많이 가는 디저트였다. 최고급 재료는 둘째치고 만드는 시간에 한계가 있었다. 대여섯 가지의 종류에 열 개 남짓한 수량을 맞추는데도 공연 전날부터 준비한다고 했다. 공연 내내 나의 눈은 밀푀유가 있는 탁자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입대하느라 아르바이트를 중단하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 밀푀유에 대한 아쉬움이 제일 컸다. 후에 파리에 처음 갔을 때, 맨 먼저 밀푀유로 소문난 집을 찾아갔었다. 필링으로 고급 치즈와 특별한 초콜릿 무스를 사용하는 나름 유명한 디저트 카페였지만 내가 먹었던 것과 달라서 아쉬웠다. 전통의 원칙과 현지화의 변형에서 오는 괴리였을 것이다. 훗날 이태원에 있는 한 빵집에서 비슷한 맛을 내는 밀푀유를 만날 수 있었다. 역시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핸드폰 반 쪼가리도 되지 않는 것이 돈 만 원 가까이했다. 아내와 한 스푼 씩 떠먹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입맛을 고집하기보다 잊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그때 먹었던 건 다시 먹을 수 없을 테니까.
밀푀유를 미국에서는 나폴레옹이라고 부른다. ‘나폴리탱(Napolitain)’이 와전된 것이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는 식재료를 겹겹이 쌓아 만드는 요리 스타일이 많다. 이탈리아어로 ‘밀레 폴리에(mille foglie)’라고 불린다. 현재의 밀푀유는 19세기 프랑스의 앙토냉 카렘(Antonin Carême, 1783~1833)이라는 셰프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먹는 법
1. 부자와 결혼할 예정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포기한다.
2. 그래도 먹고 싶으면 강남 일대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걸로 만족한다.
3. 그래도 시간이 남고 열정이 넘친다면 직접 만들어 본다. 먼저 페스트리를 오븐에 굽는다.
버터가 많고 얇을수록 좋다. 힘들면 식빵을 사다가 꾹꾹 눌러놓는다.
4. 그릇에 설탕, 밀가루, 달걀노른자를 넣고 거품기로 저어 둔다. 소스 팬에 우유와 바닐라를 넣고 끓인 후,
위 배합물과 섞어서 다시 약한 불에서 저어주며 서서히 끓인다.
5. 냉장고에 차갑게 식힌다. 식은 필링 크림을 거품기를 사용해 텍스처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젓는다.
이 과정이 힘들다면 마트에서 파는 걸 사다가 쓴다.
6. 미리 구워 놓은 페스트리(혹은 식빵) 위에 크림을 고루 펴 바른 뒤, 그 위에 다시 페스트리를 얹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층을 쌓는다. 중간에 넣는 필링을 치즈크림이나 초콜릿, 딸기잼으로 바꿔도 좋다.
그러나 천 겹의 이파리라고 해서 천 겹을 쌓을 생각이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7. 다시 냉장고에 1시간가량 넣어두고 기다린다.
8. 냉장고에서 꺼내 토핑으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올린다.
슈거파우더, 퐁당 아이싱, 딸기, 블루베리, 올리브 등등.
9. 절대 밀푀유의 본 맛은 아니겠지만, 스스로 천상의 맛이라는 주문을 걸면서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