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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Nov 13. 2019

빈대를 찾아서

고수김치

친구 집이 있는 전남 장흥으로 모내기를 하러 간 적이 있다. 며칠 일손을 거든다는 핑계를 대고 월출산과 해남 일대를 돌아다닐 심산이었다. 모내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모를 너무 깊이 박거나 얕게 묻으면 안 되었다. 수위 조절이 중요한 것은 농사에서도 적용되는 이치였다. 나는 모판 옮기는 일을 했다. 


한창 땀을 흘리고 나무 그늘 밑에 모여 점심 먹을 때였다. 내 성이 ‘문’이라는 걸 알고 동네에서 일을 도와주러 온 한 분이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성도 ‘문’이었다. 본관과 종파와 항렬이 뒤따랐다. 한참 족보를 따져보더니 우리가 아주 가까운 친족이라고 했다. 그 방면에 문외한인 나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가 나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에 얼어붙었다. 더 놀란 건 그 일대에 집성촌이 있다는 거였다. 


모내기를 마치고 그는 나를 트럭에 태워 집성촌으로 데려갔다. 차마 할아버지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뭔가 냄새가 달랐다. 문씨 성을 쓰지 않는 사람은 출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 친구에게는 짖는 개가 나한테는 짖지 않았다. 30호 남짓한 동네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저 집의 누가 어느 때 무슨 벼슬을 했고, 어느 집 아들이 어디 공직자를 지냈고, 누구 집이 정계와 재계를 어떻게 주무르는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가 강물처럼 흘러갔다. 같은 성씨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까마득한 집안 어른에게 큰절을 올리고 나와 저녁 식사에 초대됐다. 찬은 변변치 않지만 멀리 서울에서 온 손자뻘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말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집성촌의 거창한 역사와 다르게 상은 그의 말처럼 조촐했다. 고기라도 굽지 않고 뭐했냐는 타박에 30대의 젊은 할머니는 말없이 눈만 흘겼다. 


친구와 나는 가운데 놓인 조기조림엔 손대지 못하고 주변부 푸성귀와 젓갈만 집적거렸다. 김치 종류가 꽤 여러 가지였는데, 차례로 맛을 보던 나는 한 김치 앞에서 기겁을 했다. 겉모습은 고들빼기김치와 닮았는데, 쌉싸름하면서 달싹한 맛에 앞서 특유의 향이 코를 찔렀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향이 가시지 않았다. 두 번 다시 그쪽으로는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반면 친구와 할아버지는 거침이 없었다. 친구는 국에 밥을 말아 두 그릇을 싹싹 비웠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그게 무슨 반찬이냐 물었더니 ‘빈대지’라고 했다. 집집마다 여름에 해 먹는 김치의 한 종류라는 것이다. 왜 빈대냐 하니 빈대 냄새가 나서 그렇다고 했다. 빈대가 그런 냄새구나 했고, 빈대떡도 관련이 있나 싶었고, 그럼에도 김치로 담그는구나 했다. 내가 도저히 먹을 수 없다고 하니까, 처음엔 그래도 맛이 들면 ‘게미지다’고 했다. 세 번만 참고 먹으면 나도 환장하게 될 거라고 친구는 장담했다.


가당치 않다고 비웃었는데, 다음 날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우면서 싸서 먹어보라기에 밑지는 셈 치고 한 입 먹었다가, 두 번 먹고, 세 번을 먹었다. 고깃기름이 빈대의 특유의 향을 희석하면서 새로운 풍미를 자극했다. 작용과 반작용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고 있다. 너무도 싫었던 친구가 어떤 계기로 인해 가까워지면 원래 친했던 친구들보다 더 친하게 되는 인간관계의 현상을 말한다. 싫어하는 감정이 클수록 작용하는 힘이 더 세지는 게 원칙이다.


내가 그랬다. 서울에 돌아와서 없는 빈대풀을 찾았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실연의 상처는 오랜 시간을 거쳐 저 혼자 아물었다. 나중에 쌀국수가 유행을 일으키며 고수가 서울 시장에 등장했을 때 빈대풀의 이름이 고수라는 걸 알았다. 재배 고수는 야생 고수보다 잎과 줄기가 길고 뿌리가 짧다. 향도 야생 고수보다 약하다. 


지금도 고수김치를 담그는 집이 있을까 모르겠다. 친구도 먹어 본 지 오래라고 했다. 담근다고 해도 뿌리와 잎의 비율이 같았던 그때 그 맛은 아닐 것 같다. 어릴 때 내 할머니는 콩잎으로 김치를 담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콩잎김치를 먹지 못했다. 시장 반찬가게에 콩잎김치라고 해서 사 온 것은 깻잎 대신 콩잎이 들어간 장아찌였다. 때로 하나의 요리는 한 세대의 운명과 함께 태어났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 담그는 법

1. 여름에 남쪽으로 여행을 간다.

2. 들판에 퍼질러 앉아 고수풀을 찾아 뿌리째 캔다.

3. 물에 깨끗이 씻어서 소금에 절인다. 

    재배 고수는 잎이 연약하지만 야생 고수는 이파리가 강하기 때문에 상관없다.

4. 나머지는 고들빼기김치 담그는 방법과 같다. 

    한쪽에선 겉절이식으로 해 먹는 게 좋다고 하지만 역시 김치는 삭혀먹어야 제맛이 난다.

5. 삼겹살 구울 때 꺼내 먹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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