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내장탕
아빠는 없는 사람이었다. 말수 없고, 유머 없고, 응당 취미도 없었다. 아빠한테 있던 게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 집에 있어도 잘 눈에 띄지 않았고, 있어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다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아빠를 발견하고 ‘언제부터 여기 계셨지?’하고 놀라는 게 아니라, ‘오늘 프로야구는 보기 글렀네.’하고 지나쳤다. 공기처럼 투명하고, 가구처럼 고정되고, 그림자처럼 어두웠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단 하나, 취미랄 것도 없는 소소한 습관 같은 게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시장에 데리고 다녔다. 장 보러 가는 게 아니었다. 왕십리에서 도장골 시장으로 이어진 뒷골목에 단골 닭내장탕집이 있었다. 아빠는 거기서도 말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닭내장탕을 시켜놓고 아빠는 소주를, 나는 꽈배기에 사이다를 마셨다. 더러 순댓국이나 해장국을 먹을 때도 있었다. 짜장면을 먹지 않는 아빠가 야속했지만, 가자고 할 때마다 나는 순순히 따라나섰다.
골목에 접어들 때부터 닭 비린내가 섞인 흙냄새가 났다. 비 오는 날 닭똥이 뒤엉킨 흙바닥에서 올라오는 그런 종류의 냄새였다. 어린 나이에 맡기 힘들었을 텐데, 인이 박여서 그랬나, 별로 역하지 않았다. 나를 예뻐한 주인 여자가 접시에 따로 챙겨준 창자와 똥집, 난관을 껌처럼 씹으면서, 아빠가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유리문 밖을 구경했다. 양은솥에서 올라오는 뽀얀 김 사이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때 나는 어른들은 참 재밌게 사는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술 마시고, 싸우고, 고함지르고, 웃다가 울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훔치다 들켜서 혼나고. 시장의 모습이란 게 그랬다. 돈이 거래된다는 것과 선생이 없을 뿐이지, 우리 반 아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나도 닭내장탕을 곧잘 먹었다. 그냥 먹기엔 매워서 물을 좀 타고 밥을 말았다. 어린 입맛에 맞는 음식은 아니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어졌다. 아빠도 굳이 권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고 군대 다녀오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다. 왕십리 시장길은 아파트 숲으로 덮였고, 그 사이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더 이상 닭내장탕 같은 구닥다리는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결혼하고 잠시 홍은동에 살던 시기에, 아내와 홍제동 시장을 구경하다가 닭내장탕집을 발견했다. 아직도 파는 곳이 있구나 하고 지나쳤다. 몇 번 망설이다 퇴근길에 들러 맛을 보았다. 혀가 변한 건지 맛이 바뀐 건지, 실망스러웠다. 우선 흙 맛이 나지 않았다. 흙을 파헤치고, 흙에서 뒹굴고, 흙을 먹는 닭만의 특유한 냄새가 있다. 아빠는 모래 맛이라고 했던, 첫술에 그 맛이 확 풍겨야 닭내장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치게 정갈하고, 고급스러웠다. 내장은 깨끗하게 손질되어 기름기 하나 없이 매끈했고, 파, 마늘, 깻잎이 정확한 비율로 고춧가루 양념에 섞였다. 닭곱창을 먹는 건지 소곱창을 먹는 건지 헛갈렸다. 그냥 버리는 내장을 주워다가 양념을 대충 해서 막 끓이는 옛날 방식이 아니었다. 제일 쌌던 음식이 가장 비싼 음식이 되었다. 메뉴판에 있는 닭개장이나, 닭도리탕, 삼계탕보다도 비쌌다.
유명하다는 몇 군데를 더 가보았는데 대체로 비슷했다. 어디서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닭내장 냄새를 가리기 위해 지나치게 강한 양념이 들어가고, 혐오감을 줄이기 위해 형체를 알 수 없도록 다지고, 굳이 집어넣지 않아도 되는 버섯과 당면을 첨가했다. 몇 집은 남은 양념에 밥을 볶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음식이 고급화된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문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음식까지 그렇게 대접한다. 내가 사는 좁은 동네에 50m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꽈배기 전문점이 있다. 그 중간에 핫도그 가게가 있다. 하도 이상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김밥, 떡볶이, 튀김, 어묵, 호떡, 만두가 각각 따로 전문점으로 분할돼 별개의 매장을 운영한다. 내가 어릴 땐 포장마차 한 군데에서 팔던 군것질거리들이었다.
세분화되고 더 전문적으로 바뀌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꽈배기를 만들어 많은 사람의 배를 채우는 게 소명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군것질이 체인화되어 전 국민이 똑같은 맛을 봐야 한다는 건 이상하다. 이 동네 핫도그 맛과 저 동네 핫도그 맛이 다른 게 정상이다. 음식은 물론, 아이들 간식거리조차 서귀포 남단에서 연천 북단까지 하나의 맛으로 통일되었다는 게 나는 어쩐지 슬프고 불편하다. 어릴 때 시장에서 먹던 꽈배기 맛과 허름한 선술집에서 싸구려 닭내장을 앞에 두고 소주를 마시던 아빠가 그리워서 그런 게 아니다. 몇 년 뒤, 핫도그를 접시에 올리고 칼과 포크로 썰어 먹을까 봐 겁난다.
>> 만드는 법
1. 시장에 가면 닭내장을 파는 집이 있다.
2. 화학약품을 사용해 깨끗하게 세척한 내장 말고 갓 잡은 신선한 내장을 산다.
3. 밀가루와 소금으로 빨래 빨 듯 열나게 비벼준다.
4. 끓는 물에 정종을 넣고 한소끔 끓여 냄새를 뺀다.
5. 물을 갈고 취향에 맞게 갖은 채소와 양념을 넣고 끓인다.
6. 너무 오래 두면 질겨지므로 적당히 익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