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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Nov 13. 2019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서 그래

몸국

서귀포에 살다 보니 제주에서 맛있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먹어봤는데 솔직히 모르겠다. 예전엔 맛있던 음식점도 제주만의 특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방어가 맛있다고 하는데, 막상 서귀포 사람들은 부시리를 먹는다. 전복죽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쌉쌀한 맛이 좋았던 오메기떡은 설탕 범벅이 되어가고, 옥돔, 갈치, 한치, 고등어는 수입산이다. 제주에서 나온 농수산물로 제주답게 만든 음식을 점점 찾기 힘들다.


그나마 고르라고 하면 보리빵과 몸국, 그리고 자리물회와 고기국수다. 제주에서 생산된 보리를 발효해 설탕을 전혀 쓰지 않고 만드는 보리빵집이 아직 남아있다. 자리물회는 섶섬 일대에 서식하는 자리돔이라는 생선을 뼈 채 숭숭 썰어서 된장 푼 물에 넣어 시원하게 먹는데, 이것도 잘 찾아보면 예스럽게 만드는 집이 있다. 고기국수는 입맛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전통을 고수하는 가게가 있기는 하다.


사실 품목보다 식당을 잘 골라야 한다. 유명한 맛집이라고 해서 무작정 찾아갔다가는 돈만 날릴 공산이 크다. 6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제주 열풍은 제주 음식문화를 기형적으로 만들었다. 제주는 전체가 거대한 관광지다. 거주민보다 뜨내기 관광객에게 의존하는 습성이 있다. 유행과 대중의 입맛에 빠르게 감응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다. 원래 음식이라는 게 한두 번 먹어서 모른다. 세네 번 먹으면서 서서히 그 맛에 적응해 가는 게 음식이다. 그러나 제주의 식당은 한두 번에 승부를 봐야 하고 그러려면 응당 대중의 선호도를 쫓아갈 수밖에 없다.


서귀포 시내에 내가 좋아하던 고기 국숫집이 있었다. 돼지고기와 뼈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내장까지 넣어서 육수를 내는 집이었다. 그러다 보니 냄새가 좀 났다. 처음 가는 사람들은 먹기 부담스러웠지만, 익숙해지면 구수한 그 냄새를 잊지 못해 자꾸 찾게 되는 집이었다. 블로거 사이에 이름이 알려지고 장사가 좀 된다고 하니까, 육지에 나갔던 아들이 내려와 인테리어를 싹 바꾸고 도시 관광객 입맛에 맞게 내장을 뺏다. 들큼한 냄새는 사라지고 여느 식당과 다를 게 없는, 달고 짠맛의 그저 그런 가게가 되었다. 할머니 혼자 하던 식당에 세 명이 달라붙자, 자연스레 가격이 올랐다. 깨끗해지고 서비스의 질은 향상됐으나, 갈 때마다 실망감이 쌓였다. 차라리 서울 한복판에서 설렁탕에 국수를 말아먹는 게 맛이나 가격 면에서 월등했다. 몇 번 더 가고 마침내 발길을 끊었다. 그런 집이 너무 많다. 특색과 보편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몸국도 마찬가지다. 가장 제주다운 음식이 대중화 앞에서 고유성을 잃고 있다. 몸국은 고기국수처럼 돼지 삶은 육수에 모자반을 넣는 게 기본이다. 거기에 돼지 내장과 미역귀라고 불리는 장간막을 잘게 썰어 넣고, 메밀가루와 메밀반죽을 풀어 약간 걸쭉하게 만든 다음, 신김치로 간을 맞춘다. 상황에 따라서 재료를 한두 개 더 넣거나 빼기도 한다. 그런데 돼지 내장과 장간막, 신김치마저 통째로 빠지면 그건 무슨 음식일까? 실제 그렇게 파는 식당이 있다.


제주 토박이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왜 몸국을 식당에서 파는지 모르겠다.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 했더니, 미역국 파는 집을 본 적 있냐 물었다. 성게 미역국 빼고 없는 것 같다고 하자, 몸국이 바로 미역국 같은 음식이라는 거다. 오래전부터 마을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빠지지 않던 잔치음식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오일장에서 큰 솥을 걸고 팔기도 했다. 소량을 조금 요리해서는 모르고, 가마솥에 대량으로 끓여야 제맛이라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내가 몸국 맛을 제대로 본 곳도 전문식당이 아니었다. 제주에는 마을 단위의 축제나 행사가 많은데 그때마다 커다란 들통에 몸국을 끓여 손님들과 나눠먹는 관습이 있다. 미역국이 집집마다 끓이는 방식이 다르듯, 몸국도 동네마다 끓이는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그분은 몸국이라는 이름에도 불만이 있었다. 몸은 ‘아래 아 ·’를 쓴다. 발음이 ‘아’와 ‘오’ 사이에 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아, 오, · 를 구분할 수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분의 불만은 몸국이 사람의 몸으로 해석될 여지 때문이었다. 차라리 모자반국이라고 명명하는 게 옳다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이게 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서 그렇다고 했다. 언제 사람들이 몸국에 관심을 가졌냐 했다. 물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먹으려 드는 사람은 많다. 음식만 그런 게 아니다. 제주에서 나는 농수산물이 다 그런 처지에 놓여있다. 


제주의 대표적인 생선 옥돔도 수입에 의존한다. 예전엔 일본에서도 들어왔는데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거의 전량 중국산이다. 혹자는 잡히기를 중국 배에 잡힌 것일 뿐, 바다에 제주산, 중국산이 따로 있냐고 반문한다. 그건 수산업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목포, 남해, 진주, 영덕에서 똑같이 들었다. 하지만 소비자 측에서 보면 엄연히 다르다. 우리나라 배에 잡히면 배 안에 있는 냉장고에 잠깐 들어갔다가 곧바로 공판장을 통해 수산시장으로 유통된다. 짧으면 하루, 길어야 사나흘이다. 그러나 중국배에 잡히면 배 냉장고에 들어갔다가 중국 측 수출업자 손으로 넘어간다. 냉장고에서 냉동고로 옮겨지고, 그 과정에서 옥돔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약품이 사용된다. 선적하는 데 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옮겨지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한국 측 수입업자 손에 들어온 뒤, 통관과 검사로 또 시간을 허비한다. 수입 옥돔이 시장에 유통하기까지 짧게는 2·3주에서 길게는 한도 끝도 없다. 제주 배에 잡힌 옥돔과 중국배에 잡힌 옥돔의 차이는 말리는 과정이 다르다. 제주 배에 잡힌 옥돔은 내장만 제거하면 되지만, 중국배에 잡힌 옥돔은 해동과 세척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주에서 소비자가 먹을 수 있는 옥돔은 약품이 남은 채 제주 해풍에 잘 마른 놈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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