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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Nov 13. 2019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도라지주

내가 군 복무했던 부대는 다른 부대와 편성이 달라서 한 소대의 인원이 고작 1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군단 직할대라는 특성 때문이었는데, 중대원 전체를 모아봤자 50명 안팎에 불과했다. 적은 병력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일이 많았다. 자체 훈련은 기본이고 군단에서 벌어지는 온갖 잡스러운 작업에 동원되었다. 참호 구축과 진지 보수공사도 그중 하나였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기에 장마를 대비하는 차원이었다.


부대를 떠나 2주 동안 작업지에서 숙영을 했다. 가까운 곳에 포사격장과 전차 도로가 있는 전방의 야트막한 산이었다. 소대별로 대상지와 구간을 할당받아 삽과 도끼, 곡괭이, 포댓자루 등을 들고 정해진 간격으로 산개했다.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자마자 곧바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속에 들어가, 새로 할당량을 부여받는 3박 4일 동안 죽어라 흙만 팠다. 중대 간에 경쟁이 심했기 때문에 눈을 뜨는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쉴 틈이 없었다. 어찌나 땅 속에 돌이 많은지. 흙이 반이면 바위가 반이었다.


좋은 점이 있기는 했다. 땅만 파면 누구도 우리를 터치하지 않았다. 빨리 끝내 놓고 쉴 수도 있었다. (약아빠진 간부들은 그 꼴을 두고 보지 못했다. 목표치는 늘 기대치를 압도했다.) 식사는 무전이 오면 약속된 장소로 소대마다 한 명씩 선발된 배식 담당자가 내려가 배급받는 식이었다. 대개 음식은 조리가 되어있었지만, 가끔 조리되지 않은 식자재가 생으로 올라올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생닭 다섯 마리가 똥째로 나왔다. 닭볶음 재료인 고추장과 기본양념, 채소가 함께 제공되었다. 물이 충분치 못한 산속에선 난감한 일이었다. 닭을 흙에 묻은 뒤, 나무를 태워 그 열기로 닭을 구웠다. 흙이 고기보다 많이 씹혔지만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진흙 구이가 탄생했다.


배식담당 병사는 작업에서 열외였다. 하루에 두세 번씩 커다란 배낭을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불어 그에게는 핵심 임무가 따로 추가되었다. 동료의 사기진작을 위해 배식차가 오기 전에 잽싸게 산을 내려가 몰래 술을 샀다. 소대별로 소주와 라면을 군장에 나눠지고 가파른 산을 오르는 그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했다.


그해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창 작업에 빠져있을 때였다. 두 번째로 작업 구간을 할당받은 날, 사전에 현장을 답사하고 돌아온 선임병이 우리를 숨 가쁘게 불렀다. 상기된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우리는 삽자루와 곡괭이를 들고 그를 따라나섰다. 7부 능선에서 계곡으로 떨어지는 사면에 평편한 지형이 나타났다. 나무로 둘러싸인 그곳은 남향으로 볕이 잘 드는 곳이었다. 도착하기 전부터 알싸한 향이 코를 찔렀다.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숲으로 들어갔다. 부대 막사 크기의 넓적한 공간이 수풀에 가려있다가 우리를 보고 화들짝 놀라 길을 열었다. 안락한 공간 안에 허리 높이로 자란 가느다란 풀이 빼곡했다.


아직 꽃을 피우기 전이었으나, 냄새만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감탄사를 뱉기도 전에 누가 먼저 날 것도 없이 땅을 파서 뿌리를 뽑았다. 흙을 털고 껍질을 벗겨 입에 넣었다. 달면서 쓴 즙이 입안에서 툭 하고 터졌다. 청정구역인 민간인 통제 지역에서 자연산으로 몇 년을 자랐을지 모를 도라지의 맛은 신비로웠다. 그전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그런 도라지 맛은 볼 수 없었다. 으름과 다래, 칡, 두릅을 수확한 일은 적지 않았지만 도라지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천혜의 자연조건이 맞아떨어진 곳이라 가능했다. 돌 없는 찰진 사토에 물이 풍부하고 빠짐도 좋은 데다 주변을 높은 침엽수림이 둘러싸 바람을 막고 있었다. 게다가 산의 남쪽 비탈면에 위치해서 일조량이 끊기지 않았다. 우리는 심마니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참호를 파는 대신 미친 듯이 도라지를 캐기 시작했다. 불과 한 시간 만에 세 개의 마대가 가득 찼다. 그날 저녁 반찬은 날도라지를 고추장에 버무린 무침이었다. 생으로도 먹고 라면에도 넣어서 끓였다. 모두 도라지의 진액이 달라붙어 손톱이 새까맸다. 누가 이런 도라지는 산삼보다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력 얘기를 했고 내다 팔면 부자가 될 거라고도 했다. 우리는 도라지밭을 두고 온갖 상상을 하면서 행복한 밤을 맞았다. 자꾸 웃음이 배어 나왔다. 


그러나 미처 날이 새기도 전에 우리의 상상은 악몽으로 바뀌었다. 새벽에 하나둘 일어나 화장지를 들고 간이화장실로 뛰어갔다. 대충 칸막이를 설치해 만든 야외화장실 앞에 줄이 늘어섰다. 몇몇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나무 밑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속을 비우고 돌아와도 다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모두 식은땀을 흘리며 인상을 찡그리고 배를 움켜잡은 채 밤을 새웠다.


다음날, 탈진한 병사들은 작업에 나설 수 없었다. 파다 만 참호 안에 널브러져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침에 나타난 소대장이 한심하게 지켜보다가 어디선가 지사제를 구해왔다. 누가 약을 먹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설사가 나는 것은 그동안 우리 몸에 쌓여있던 노폐물이 배출되는 것이라고 했다. 명현현상이라는 어려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약효가 사라진다는 말이 목에 걸렸다. 우리는 정력이 달아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를 악물고 참았다.


다행히 오후 들면서 속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여전히 속이 부대껴 밥 먹기 힘들었다. 도라지죽을 만들어 먹자는 아이디어에 모두 동의했다. 도라지를 식은 밥과 함께 끓이니까 그런대로 삼킬만했다. 그날 산삼, 더덕보다 좋다는 도라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밤늦도록 끝장토론이 벌어졌다. 그때 나온 것이 도라지주였다. 먹지 못한 소주가 2병이나 있었다. 흙만 턴 도라지를 페트병이 미어터지도록 넣었다. 물리적으로 도라지와 소주의 비율이 8:2 가량 됐다. 넘치는 소주는 빈 병에 옮겨 또 담갔다. 그렇게 만든 도라지주가 6병이었다.


도라지주 6병을 가운데 두고 다시 토의가 이어졌다. 보관이 문제였다. 한두 병도 아니고 6병을 부대로 가지고 복귀하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숨겨뒀다가 내년에 와서 먹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병장이 반대했지만, 무참히 묵살되었다. 우리는 참호 안에 굴을 팠다. 도라지주를 보관하기 위한 냉암소를 설치한 셈이었다. 상수리나무 밑동이 은닉하기 좋았다. 배수를 위해 이중으로 공간을 만들고 입구에 나뭇가지로 촘촘히 벽을 세운 뒤, 흙과 나뭇잎을 이겨 발랐다. 거기에 나무의 잔뿌리가 자연스럽게 입구를 가려주었다. 통풍을 위해 두 군데 작은 구멍을 뚫고 나뭇잎과 돌을 겹겹이 쌓아 천연필터를 만들었다. 모든 게 완벽하고 감쪽같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만 아는 표식을 나무에 하고 노끈을 매달아 멀리서도 찾을 수 있게 했다.


2주간의 작업을 마치고 도라지주 한 병을 군장에 몰래 가지고 복귀했다. 내부반에 도라지주 한 병 짱박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빙 둘러앉아 도라지주를 땄다. 도라지밭에서 나던 냄새가 순식간에 내무반을 덮었다. 마시기도 전에 냄새에 취했다. 푸른 하늘과 깊은 숲, 맑은 물소리가 공중에 떠다녔다. 처음엔 쓴맛이 강하게 나다가 알싸한 향이 맴돌고, 끝에는 올리고당 같은 끈적한 단맛이 났다. 누가 나중에 설탕을 집어넣은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누군가 새벽이슬 머금은 도라지를 막 캐서 배와 같이 갈아 마시면 이런 맛일 거라고 했다. 확실히 향과 여운이 길게 남았다. 


잔은 두 순배를 돌지 못했다. 도라지를 꺼내 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이게 이 정도면 산에 두고 온 건 어떨까?’ 누군가 꿈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참호 속에 있는 다섯 병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다음날, 점호하던 중대장이 코를 킁킁대며 말했다. “내무반에서 담배 피우지 마.” 중대장은 피우지 않는다는 우리말을 믿지 않았다. “아주 쩐내가 난다. 환기 좀 시켜라.” 그리고 나가면 한 마디 덧붙였다. “노인네도 아니고 도라지가 뭐냐? 솔이면 몰라도…”


그해 겨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소대원 전원이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눈이 펄펄 날리는 날에도 웃통을 까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연병장에서 축구를 했다.


이듬해, 설레는 가슴을 안고 진지 보수공사에 참여했다. 말년병장이라 작업에서 열외였는데 마지막으로 국가에 헌신하고 싶다는 열변을 토한 끝에 기어이 따라나섰다. 공사구간이 변경되어 도라지주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산을 세 개나 넘어야 했다. 먼저 다녀온 후임병 둘이 빈손으로 왔을 때만 해도 콧방귀를 뀌었다. 지뢰탐지봉을 들고 나는 다른 후임과 직접 산을 넘었다. 2시간을 꼬박 정글을 뚫고 당도하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참호는 참호가 아니었다. 칡덩굴을 헤치며 가까스로 참호를 찾았으나, 곳곳이 손실된 통로는 흔적만 있을 뿐, 형상이 사라지고 없었다.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은 나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나무의 표식은 이끼와 함께 과거의 시간 속에 묻히고 말았다. 망연한 심정을 위로하며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고 출발했는데 돌아오니 저녁이었다. 그나마 도라지밭에서 몇 뿌리 뽑아온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입안에 쓴 물이 괴었다.     


>> 만드는 법

1. 물과 일조량, 지질을 고려하여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는 깊은 산중에 토종 도라지씨를 뿌린다. 

   (총 맞을 위험이 있으니, 민간인 통제구역은 삼간다.)

2. 한 5년 눈 딱 감고 산다.

3. 도라지를 캐서 껍질째 술을 담근다. 

4. 항아리에 넣고 땅에 묻는다. 카메라를 설치해 감시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5. 1년 뒤에 꺼내 유리병에 옮겨 담는다. 

6. 한 달에 한 번, 남몰래 홀짝거린다. 몸의 변화에 대해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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