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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Nov 13. 2019

가꾸의 계절

연계찜

젊은 시절, 대구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다. 여름 끝자락에 가서 가을을 보내고 왔는데, 마치 여름과 가을, 겨울을 한꺼번에 겪은 것처럼 파란만장했다. 여름은 무척 더웠고, 이후엔 가을을 만끽할 새도 없이 추위에 시달렸다. 어제 선풍기 틀고 잤는데, 다음날 난방기 기름을 주유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비염이 도졌고, 감기로 번져, 내내 기침을 달고 살았다. 몸이 좋지 않으니 어디 쏘다닐 여력이 없었다. 일을 마치면 동료들은 시내 구경 나가고 나는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텔레비전만 보다가 잠들었다. 따분하고 무료한 생활이었다.


코가 막힌 탓에 먹는 게 영 시원치 않았다. 식당에서 주는 밥만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음식에 흥미를 잃은 나를 자극한 건 대구 사람들의 유별난 닭사랑이었다. 대구엔 닭을 재료로 한 음식이 참 많았다. 당시에도 치킨 체인점이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치킨만 파는 게 아니라, 찜닭도 함께 판다는 점이었다. KFC에서 찜닭을 판다고 해도 대구에서는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어느 가게나 다 그랬다. 튀기는 것과 끓이는 것의 차이는 전혀 다른 공정이라, 사업주의 입장에서 매우 불합리한 운영이다. 그럼에도 찜닭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기거하던 숙소 가까이에 찜닭을 파는 치킨집이 두 군데나 있었다. 두 곳 모두 전화로 주문이 가능했다.


그중 한 곳에 연계찜이란 메뉴가 있었다. 다른 집은 그냥 찜닭으로 표기했지만, 그 집은 연계라는 독특한 이름을 사용했다. 다른 곳에서 파는 찜닭은 닭도리탕처럼 토막 난 데 반해, 연계찜은 삼계탕처럼 통으로 찐 그야말로 통닭이었다. ‘연계’는 지방 특유의 억양 때문에 ‘영계’로 불렸고 그러한 이유로 인기가 많았다. 내장을 빼낸 통탉 안에 간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를 다져 넣고 찐 뒤, 살짝 익힌 부추와 함께 양념간장에 찍어 먹었다. 백숙과 비슷했으나, 끓이는 게 아니라, 찐다는 점에서 달랐다. 기름기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슴슴하니 담백해서 저녁 술안주로 딱이었다.


손님들 사이에서 이모라고 불리는 여자가 주방을 보고 남편이 배달을 했다. 그때 이모 나이가 40대인가 50대인가, 괄괄한 목소리와 성격에 몸집이 푸짐한 스타일이었다. 그에 비해 낯가림이 심했던 남편은 상대적으로 비쩍 골아서 바람에 날아갈 것처럼 왜소한 체구였다. 누가 봐도 여자 대가 세서 남자가 기를 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숙소가 코앞이기도 하고 기다리기 싫어서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포장해 오는 걸 좋아했다.


처음 내가 심부름에 걸린 날 이모가 물었다. “니가 가꾸가?” 가꾸 아닌데요. 하고 내 이름을 댔다. 이모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가꾸 맞네. 오늘부터 가꾸데이.” 이모는 내가 귀엽다며 덤으로 닭발을 한 움큼 봉다리에 담아줬다. 가꾸가 술래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어느 날, 직접 가게에 모여 찜닭을 시켰다. 어쩐 일인지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이모가 찜닭이 익는 동안 먹으라고 칼국수를 한 냄비 내왔다. 칼국수는 처음이었다. 찜을 찌면서 생긴 육수에 칼국수 사리를 넣고 끓인 것이었다. 그 맛이 하도 기가 막혀서 칼국수만 따로 팔아도 장사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어데, 아까바서 아물따나 끼린 긴데. 괘안나?” 말은 그렇게 해도 이모는 연계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본인이 어떤 책을 보고 영감을 받아 직접 개발한 음식이라고 했다. 소설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요리책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요리책에 연계탕이 등장한다. ‘음식디미방’ 디미? 디미가 뭐예요? “디미, 모르나? 니미” 찾아보니 맛을 알다의 한자어인 지미(知味)였다. 이모는 책 제목도 욕처럼 말하는구나, 했는데 정말 책 이름이 그랬다. 레시피를 그대로 베낀 건 아니고 현대에 맞게 응용한 듯했다. 된장과 마늘, 깻잎, 생강, 산초를 넣는 기본 레시피에 이모는 기름 대신 돼지고기를 갈아 넣고 염교 대신 쪽파를 사용했다.


한창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주방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이모가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지르는 소리였다. 반이 욕이었다. 대충 내용을 듣자니, 남편이 무슨 죽을죄라도 저지른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뭐를 씹네 마네, 찢네, 뽑네, 자르네 하는 건 지나쳤다. 요리사라 쓰는 용어가 달랐다. 엉덩이가 따끔거려서 앉아있을 수 없었다. 대구 여자 무섭네 혀를 내두르며 우리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가게를 나왔다.


며칠 뒤, 남편이 다시 오토바이를 몰고 배달하는 모습이 보였다. 남편의 입과 사타구니는 무사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홀연히 사라졌다. 이번엔 꽤 길었다. 가게에 갔을 때 이모는 풀이 죽어있었다. 그날은 연계 맛도 별로였다. 칼국수가 먹고 싶었지만 해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또 남편은 돌아왔고 언제 그랬냐는 듯 오토바이를 몰았다. 동료가 어디서 듣고 왔는지 이모가 한때 미스대구에 출전할 정도로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고 했다. 상상이 가지 않아서 직접 물었다. “치아라, 알분시립게.” 더는 말도 붙일 수 없었다. 출전을 하기는 한 건지, 출전만 한 건지 우리끼리 의견이 분분했다. 사람이 생긴대로만 사는 건 아닌 듯했다.


대구에서의 일이 마무리되고 마지막으로 그 집에서 칼국수와 함께 연계찜을 먹었다. 고등학생 아들이 아빠 대신 배달일을 하고 있었다. 이모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찬바람이 부는 날, 그렇게 나는 대구를 떠났다. 4개월 안 되는 동안 닭 100마리는 족히 먹은 것 같다. 반바지 입고 가서 닭털이 들어간 파카를 입고 상경했다.


나에게 대구는 닭의 도시다. 그래서 대구에 치맥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렜다. 이모는 아직 연계찜을 할까? 나를 알아보겠냐고 물으면 “니 가꾸 아이가? 문디 자슥, 낯짝이 해싹는 거보이 안됐네. 쪼매 있어봐라.” 나를 가게 안으로 밀어 붙일 것 같다. 포항만 해도 두어 번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대구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구글에서 지도를 찾아보다가 동대구역 앞에서 길을 잃고 포기했다. 시간은 나를 위해 시간을 내지 않는다.


음식디미방에는 총 146종의 음식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다. 51종의 술 양조법과 식초를 담그는 3가지 방법을 비롯하여, 20가지의 음식 저장법과 국수, 만두, 떡, 어류, 육류, 채소, 곡물 등 의 요리방법이 담겨있다. 1600년대 경북지역의 다채로운 음식문화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친정에서 배운 요리법과 시가의 조리법을 나눠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저자 장계향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집필했다는 것이다. 본인이 요리하면서 숱하게 저지른 실수를 자녀들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성된 듯하다. 책 끝에 어두운 눈으로 힘들게 쓴 책이니 베껴가는 것은 좋지만, 가져가거나 훼손하지 말라고 적어 두었다.


>>만드는 법

1. 닭 속을 비우고 간 돼지고기와 파, 된장, 마늘, 깻잎, 생강, 산초 등을 다져 채운다.

2. 산초와 토란대는 꼭 넣는다. 향과 식감의 차이가 크다.

3. 면포로 싸 찜통에 넣고 중불에 2시간 이상 찐다.

4. 다 익으면 부추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양념간장과 함께 먹는다.

5. 찜통에 흘러내린 육수를 버리지 않고 칼국수를 넣어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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