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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Nov 13. 2019

이런 어거지를 보았나

옹고지탕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나는 거의 매년 여름방학을 강원도에서 보냈다. 가끔 겨울방학을 나는 일도 있었지만, 태백산맥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하도 세서 한계령을 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방학 초입에 엄마가 던져놓고 가면, 후반기에 아빠가 나타나 데려가는 식이었다. 부모님 고향인 양양과 속초, 친척이 흩어져 살던 강릉, 고성, 간성 일대가 내가 주로 유기되었던 장소였다. 지금도 그 시절 여름을 떠올리면 비린내 진동하는 항구와 키 큰 옥수숫대의 쉰내가 난다. 


많은 음식을 먹었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영원할 것 같던 긴 여름이 지나고 백사장의 열기가 한풀 꺾일 즈음, 일가친척이 모여 냇가로 놀러 가곤 했다. 우애, 화목과 같은 거창한 목표 같은 건 애초에 없었고, 여름 내내 마셔서 쌓인 술독을 풀려는 어른들의 소망이 깃든 자리였다. 삼촌은 대놓고 몸보신하겠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족대 하나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냇가로 뛰어들었다. 사촌 형이 멀찌감치 그물을 치고 기다리면 나머지 조무래기들이 발을 구르며 고기를 몰았다.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느려도 안 되었다. 천렵은 물 밑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물 위에서 조정하는 일이다. 모든 게 물 흐르듯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야 했다. 처음에 나는 고기를 몰기는커녕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했다. 돌을 밟고 자빠져 혼자 멱을 감기 일쑤였다. 익숙해진 뒤에야 비로소 체중을 물에 의탁하는 법을 알았다.


어종은 다양한 편이었다. 메기나 붕어 따위가 잡히기도 했으나 구워 먹을 만큼 큰 놈이 아니면 풀어주었다. 우리의 목적은 오로지 옹고지였다. 대부분 손가락만 한 크기였으나, 살이 통통하게 오른 놈은 거짓말을 보태 내 팔뚝만 했다. 당시에 옹고지가 얼마나 많았는지 한 시간 천렵질에 족히 한 양동이가 찼다. 아이들의 손을 떠난 양동이를 고모와 숙모들이 넘겨받았다. 대충 해감을 빼고 손질을 해서, 일찌감치 피워놓은 모닥불에 솥을 걸고 끓였다. 고추장을 푼 물에 감자와 파, 깻잎이 들어갔다. 특이한 것은 옹고지에 수제비처럼 밀가루 반죽을 입힌다는 점이었다. 적당히 끓기 시작하면 근처에 있는 산초나무잎을 따다가 넣었다. 


새빨간 고추잠자리가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냇가에서 탕이 익는 동안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화투를 쳤다. 탕이 익으면 모두 빙 둘러앉아 한 대접씩 받아 들고 시끄러운 물소리를 들으며 뜨겁고 매운 국물을 떠먹었다. 입안이 얼얼해도 자꾸 먹게 되는 얼큰한 맛이었다. 어른들의 술안주로 손색이 없었다. 뼈가 있었지만 씹기 어렵지 않았고, 살은 밀가루에 섞여 죽처럼 진득하고 쫀쫀했다. 먹고 난 뒤에도 산초 향이 입안을 떠나지 않았다.


그 뒤로는 먹지 못했다. 비슷한 것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늦여름이 되면 냇가에 쪼그리고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먹던 그 음식이 생각났다. 나중에 그때 먹은 것이 추어탕의 일종이라는 걸 알았다. 추어탕은 지역마다 끓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전라도는 무청 시래기를 베이스로 미꾸리를 갈아 넣고 걸쭉하게 끓인 다음 들깨와 초피(제피)를 뿌린다. 남원이 대표적이다. 경상도는 미꾸리를 갈지 않고 똥째로 넣어 흐물거릴 때까지 끓인다. 무청 시래기가 아닌 배추 시래기와 토란대를 넣고 초피 대신 산초가 들어간다. 특이한 것은 방아잎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 원주로 대표되는 강원도는 된장이 아닌 고추장 양념으로 얼큰하게 끓이는 게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전라도와 경상도가 양념의 탁하고 맑은 차이를 보이지만, 강원도는 아예 붉어서 다른 색을 띤다.


이렇게 지역마다 각각 달랐던 추어탕의 특색은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뒤죽박죽 되었다. 전라도식에 산초가 나오는가 하면 경상도식에 방아가 빠지기도 한다. 어느 곳이나 미꾸라지를 갈아서 쓰고 어디나 들깨가루가 올라간다. 산초와 초피조차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산초는 향만 있고 초피는 향과 매운맛이 강하다)


아버지는 근성을 가진 술꾼이었다. 술안주라면 별의별 희한한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탕류를 특히 좋아했다. 그런데 추어탕은 입에 대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고기가 다르다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원래 추어탕은 미꾸라지가 아닌 미꾸리로 끓인다는 걸 한참 뒤에 알았다.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다른 종이다. 보통 수염의 길이와 몸통 모양으로 구분하지만, 함께 보지 않으면 차이를 모른다. 양식이 어렵고 맛에서 월등한 미꾸리를, 값싸고 양식하기 쉬운 미꾸라지가 밀어냈다. 홍어 자리를 가오리가 꿰찬 것과 같은 이치다.


미꾸리 중에서도 동해안 일대에서만 서식하는 쌀미꾸리라는 종이 따로 있는데, 옹고지가 바로 내가 어릴 적에 먹은 그 고기였다. ‘엉거지’, 또는 ‘어거지’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같은 강원도라고 해도 영서와 영동이 각각 다른 방언을 쓴다)


재료도 재료지만 아버지는 양념장으로 된장을 쓰는 것이 못마땅했다. 옹고지탕은 고추장에 고추를 숭숭 썰어 넣어 얼큰하게 끓이는 게 제맛이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넣는 것도 게으른 술꾼에게는 끼니를 때우기 위한 훌륭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10여 년 전, 한 결혼식에서 사촌형을 만나 옹고지탕에 대해 물어보니, 본인도 그 맛이 가끔 생각난다면서 여름에 한번 가족을 싹 데리고 떠나자 했으나, 지금껏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아직 그쪽 지역에 사는 고모부의 말로는 천렵하는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옹고지 씨가 말랐다고 한다.


더위를 피해 산에서 내려오는 물에 몸을 담그면 체온이 금세 떨어진다. 덜덜 떨리는 몸으로 태양에 달궈진 자갈 위에 앉아 옹고지탕을 먹다 보면 땀구멍이 다시 열린다. 한기와 열기를 오가면서 입안이 얼얼해지도록 먹던 알싸한 그 맛. 그 시절 물속에 들어가 튜브를 타고 먹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잡고기가 많이 섞이긴 했어도, 몇 년 전 충주에서 괴산으로 넘어가는 길에 먹었던 어죽이 엇비슷한 맛을 냈다.     


>> 만드는 법

1. 일단 강원도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2. 옹고지는 수온이 낮은 곳에 사는 어종이므로 산에서 내려오는 물가에 텐트를 친다.

3. 족대를 펴든 낚시를 하든 알아서 고기를 잡는다. 다만 천렵은 가족 간의 화합이 중요하다는 걸 명심하라. 

    부부간에 싸움이 날 수 있다.

4. 2박 3일 동안 허탕을 쳤다면 가까운 오일장에 가서 중국산 양식 미꾸라지를 산다. 

    자연산이라고 해도 치어는 중국산이다.

5. 미꾸리가 어떻다느니, 양식 맛이 어떻다느니 오지랖 넓은 척하다 욕바가지를 쓸 바엔 

    근처 흔하디 흔한 추어탕 식당에 들어간다.

6. 식당에 들어가서 주는 대로 먹지 않고 왜 강원도에 강원도식 추어탕이 없고 전라도식이냐며 

    흠잡으려거든 포장을 해서 나온다.

7. 시장에서 고추, 고추장, 반죽한 수제비를 사서 텐트로 돌아온다.

8. 포장해 온 추어탕에 고추장을 풀고, 고추와 수제비를 넣고 팔팔 끓인다. 

9. 익으면 각자의 그릇에 담아 맛있게 먹는다.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 굳어질 때를 대비해서 함께 사온 치킨과 피자를 풀어놓는다.

10. 냇가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되도록 빨리 먹는다. 

      전방 부근 모기는 군인의 피를 빨아 전투병의 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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