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랑탕
한창 낚시에 미쳐서 주말마다 전국을 누비던 때가 있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이 낚시라는 게 잘 될 때보다 안 될 때가 더 많다. 그날도 산골 저수지에서 밤새 허탕을 치고 철수하는 길이었다. 손맛을 보지 못한 일행의 신경은 날카로웠다. 가뜩이나 궂은 날씨에 몸은 춥고 까닭 모를 허기가 밀려왔다. 아산과 천안 사이의 국도변에서 한 허름한 식당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혼자 텔레비전을 보면서 식사 중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길래 일하시는 분인가 보다 했는데,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 할머니는 우리에게 영업이 끝났음을 알렸다. 주인은 집안 잔치를 가서 없고 본인은 하루 도와주러 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준비한 음식이 다 떨어졌다는 말을 덧붙였다. 배고파서 그러니 지금 드시는 거라도 달라고 사정했다. 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찌개는 자신이 먹으려고 대충 끓인 것이라 손님에게 내줄 수는 없고 인부들 짬밥이 좀 남았는데 그것도 괜찮냐고 물었다. 식당 주변에 우후죽순 올라가는 아파트 공사장이 눈에 들어왔다. 현장 인부들의 함바집을 겸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양은 푸짐할 테니.
주방으로 들어간 할머니는 이내 쪼르르 달려 나와 뚝배기를 내밀었다. 맛부터 보고 그래도 괜찮으면 주겠다는 것이다. 마트도 아니고 웬 맛배기인가 했다. 뚝배기 안에는 도가니 몇 점이 진한 고깃국물 위에 둥둥 떠있었다. 일행 모두 국밥에 환장하는 타입이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도가니라니. 쫀득한 도가니가 구수한 육수와 함께 입 안에서 춤을 췄다. 값이 궁금했다. 인부들이 대고 먹는 밥에 값을 더 받을 수는 없고 동일하게 받겠다고 했다. 못을 끓여내도 먹을 판에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맞이한 뜻밖의 행운이었다. 전날 입질 한 번 없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식사가 나오자마자, 우리는 일제히 뚝배기에 머리를 박고 경쟁하듯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온전한 도가니탕은 아니고 여러 부위가 섞인 국밥이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먹는 모습이 기특했는지 솥에 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싹 긁어 내왔다. 파와 고춧가루를 잔뜩 넣고 빰을 뻘뻘 흘리며 두 그릇을 비우고 나자, 얼어붙었던 몸이 노곤해지면서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어디 따뜻한 아랫목에 가서 두 발 뻗고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에 이쑤시개를 하나씩 물고 차례로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맛있는 도가니탕은 처음입니다.”
“도가니 아닌디?”
“……”
“그거 우신 아녀. 우신.”
“……”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몰랐구먼. 아는 줄 알았는디.”
“우신이요?”
“우신 몰러? 소 거시기.”
할머니의 손이 사타구니 밑으로 내려간 뒤에야 알아차렸다. 해구신이 물개 거시기라면 우신은 소 거시기라는 것을.
우리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할머니는 웃었다.
“몸에 좋은 겨. 남자들이 그거 먹으면 겨울에 감기도 안걸린댜.”
먹어보기는커녕 일행 중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할머니 말마따나 서울촌놈들이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것이 왜 보급화 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랑은 소불알을 가리키고, 우신은 소 생식기를 가리킨다. 우랑탕과 우신탕이란 이름으로 나뉘지만 보통 두 재료를 함께 사용하고 이름을 혼용하여 부른다. 젊은 축에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이 지긋한 몇몇 어르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지금의 동서울터미널이 청량리에 있을 때 답십리의 곱창집과 더불어 한창 흥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엔 동네 시장 어디나 그런 가게가 하나쯤 있을 때였다. 유독 대구 출신 중에 먹어본 사람이 많다. 동성로 좁은 골목에 그런 집이 제법 있다고 했다. 우랑을 끓여만 먹지 않고 순대볶음처럼 볶아 먹기도 했단다. 냄새가 심하지 않고 계란 노른자처럼 고소하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곰탕과 설렁탕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그 방면에 해박한 전문가를 만나 얘기를 나눈 일이 있다. 그가 들려준 얘기가 자못 충격적이었다. 그는 대뜸 내게 곰탕과 설렁탕, 소머리국밥, 내장탕의 차이를 아느냐 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머리만 갸우뚱하는 내게 그는 차이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곰탕은 고기를 우려서 국물을 내고, 설렁탕은 뼈를 우리고, 소머리국밥은 소머리로 국물을 내는 게 정석이지만 어느 곳도 그렇게 하는 집이 없다는 것이다. 양지와 뼈를 섞은 같은 국물 베이스에 국수가 들어가느냐 마느냐, 어느 부위의 고기를 넣느냐의 차이라고 했다. 갈비탕도 곰탕으로 끓인 국물에 따로 삶은 갈비를 넣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 모두가 한가족인 셈이었다.
나는 좀 의아했다. 국물이 뽀얀 집이 있고 맑은 집이 있는데 그건 왜 그러냐? 대답은 심플했다. 뼈가 들어가면 국물은 탁해진다. 그러나 아주 오래 끓이지 않는 한 그렇게 색이 뽀얗게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식당이 분유 가루를 쓴다. 전지분유보다는 탈지분유를 더 애용한다. 지방을 뺏기 때문이다. 한 대접만 넣어도 맑은 곰탕이 뽀얀 곰탕으로 변한다. 거기에 양지 수육을 넣으면 설렁탕이 되고, 꼬리 고기를 넣으면 꼬리곰탕, 도가니를 넣으면 도가니탕이다. 좀 다른 버전이긴 하지만 해장국과 순댓국까지 그런 식으로 파생상품을 만들 듯 응용하면 하나의 국물로 수십 개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전국 방방곡곡 누비며 그토록 감탄해 마지않던 음식들이 결국 하나였다니…. 나는 두 눈만 껌뻑인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건 도가니의 정체였다. 그에 따르면 한 마리의 소에서 나오는 도가니가 워낙 소량이라 가격이 비쌀뿐더러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도가니 대신 사용하는 것이 있다. 뭡니까? 나도 모르게 소리가 커졌다.
우신. 그 단어를 들은 게 아산에 이어 두 번째였다. 스지(힘줄)를 쓰는 가게는 아예 대놓고 속여 파는 집이라 빼놓고 우신은 그나마 양심이 있다는 것이다. 업자가 아니고서야 탕 안에 있는 둘을 구분하기 어렵다. 그동안 내가 먹은 것은 도가니탕이 아니라 도가니가 가미된 우신탕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억울하진 않았다. 어차피 우신도 훌륭한 보양식이고 스지보다는 그나마 나으니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무시하기에 그의 이력이 너무도 확고했다. 외식 창업 중 한식 분야 컨설팅에선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 마장동이 번성하던 시절 일을 시작해 그때까지 그의 손을 거쳐간 식당만 일렬로 세워도 경부고속도를 채우고 남을 정도였다. 고기 납품처만 보고 맛집인지 알았다. 국물 한 숟가락만 떠먹어도 그 식당이 얼마나 오래갈 집인지 눈에 보였다. 실제로 그가 추천한 집을 가서 후회한 일이 없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지금도 가끔 ‘우리 가게는 탈지분유를 쓰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설렁탕집, ‘저희 집은 도가니 100%만 사용합니다’ 하는 가게를 보면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 제일 속이기 쉬운 게 맛이야. 그런데 오래 속이기는 정말 어려워.”
몇 년 뒤에 아산에서 천안으로 가는 길에 그 식당을 지나갔다. 허허벌판은 아파트로 채워지고 식당은 자취마저 찾을 수 없었다.
>>만드는 법
1. 우신과 우랑을 구하는 게 관건이다. 현재는 강아지 간식으로 많이 넘어가 수량이 딸린다.
2. 정육점을 통해 최대한 구해본다.
3. 우신과 우랑을 소금에 씻어 냄비에 한 번 후루룩 끓인다.
4. 물을 버려 잡내를 빼고 우랑의 껍질을 벗긴다.
5. 이생강, 마늘, 파, 통후추 등등을 넣고 본격적으로 끓인다.
6. 끓으면 낮은 불에서 2시간 이상 천천히 졸인다.
7. 썰어서 탕과 함께 먹는다. 도저히 못 먹겠으면 식혀서 강아지에게 간식으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