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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Nov 13. 2019

가장 맛 좋은 민물고기

종어

이런 류의 의문은 어떤 과일이 가장 맛있는지 알면 저절로 풀린다. 사회적 맥락과 자원환경, 유통구조, 경제성보다 우선하는 것이 개인의 취향이다. 물론 취향도 사회적인 맥락에서 도출되는 속성이 있다. 아무리 취향이 독특하다한들 그 시대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어떤 개인도 유행과 자본 앞에 자유롭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한 속성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1925년 1월 4일 자 동아일보에 ‘부호의 음식과 극빈자의 음식’이라는 제목의 기획기사가 실렸다. 부호 역에 백인기라는 인물이 소개된다. 당대 최고의 부자다. 메가타 개혁 후, 일본인을 등에 업고 송병준, 김시현, 조중응, 예종석, 이완용, 한상룡과 함께 신흥 부호로 떠올랐다. 기사에 그가 어느 정도 부자인지 잘 보여준다. 매일 밤 유명인과 외국인은 초대해 연회를 벌이고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난다. 송이와 인삼을 갈아 만든 해독주스로 먼저 속을 달랜 뒤, 천천히 브런치를 즐긴다. 한겨울에도 봄나물이 지천이고, 팔도 산해진미가 담긴 그릇은 전부 순금으로 되어있다. 식사를 마치면 석류와 참외, 유자를 꿀에 몇 년씩 재어 만든 ‘목과정’이란 차를 마신다. 


그의 밥상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르는 요리가 있었다. 바로 ‘종어’라는 민물고기다. 멀리 강경에서 매일 배송받는 특별한 식재료로, 그 값이 무려 30원. 당시 일반 노동자의 월급이 30원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입이 쩍 벌어진다. 하루 한 마리만 먹었다고 해도 지금 가치로 한 달에 1억 인 셈이다. 대체 어떤 맛일까? 나로서는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는다.


종어는 서해로 들어가는 한강과 금강, 대동강 일대 하구에 서식하는 종이었다. 옆으로 납작하고, 등이 누런 갈색, 배가 담색을 띠며 주둥이는 툭 불거졌고, 아래턱이 위턱보다 짧다. 비늘과 잔가시가 없는 게 특징이다. 보통 몸길이가 30cm 내외로, 3년 이상 자라면 80cm까지 커지기도 한다. 종어는 이름에서부터 ‘으뜸 종宗’ 자를 쓰는 고기의 끝판왕이다. 조기의 어원이 종어라는 주장에서 보듯, ‘바다에 조기가 있다면 강에는 종어가 있다’는 말이 아주 허세로만 들리진 않는다. 관리에게 뇌물로 종어를 갖다 바치면 적어도 최하위직 공무원인 현감 자리는 얻을 수 있다는 유래에서 ‘종어가 현감’이란 속담이 탄생한 것도 이해가 간다.


1938년 <경성잡필(京城雜筆)>이란 잡지 6월호에 실린 정문기 박사가 쓴 금강지종어(錦江之宗魚)란 글에서 종어의 이름에 관하여 설명한 부분이 있다. 지금에 맞게 손봐서 옮기면 이렇다. “조선시대 수산물의 진미 가운데 한양 고관들의 미각을 가장 많이 자극시킨 것은 금강에서 나온 종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종어는 다른 어류에게서 맛볼 수 없는 진미가 있다. 종어는 동자개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일본이름으로는 ‘이노시’, ‘기기’라 하고 조선속명으로는 금강 논산, 부여 및 한강 행주 부근에는 ‘요매기’, 대동강, 평양 부근에는 ‘레메기’ 또는 ‘웨메기’, 경성 남대문시장에서는 ‘여무기’라 부르며, 부여지에는 경어라고 적혀 있다. 요메기에서의 ‘메기’는 나마즈(일본어로 메기)지만, ‘요’라는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 물고기의 이름 앞에는 ‘요’와 ‘여’의 음이 붙은 것이 많다. 이들 ‘요’와 ‘여’의 음이 붙은 이름을 가진 물고기는 대체로 좋은 맛을 지닌 어류들이다. 열메기가 그렇고, 열갱이와 요메기 또한 그러하다. 이들 어류는 각기 그 속 중에 가장 맛있는 어류이다. 그렇다면 ‘요’와 ‘여’는 최상 즉 으뜸(宗)의 뜻을 나타낸 말들이 아닐까 싶다. 다만 종어라는 명칭이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고래 궁중과 더불어 고귀한 가정에 있어 진중한 것으로 요리 중에 용봉탕이라는 것이 있어 그 재료는 보통 잉어와 닭을 사용했지만, 이조시대의 어떤 임금이 잉어 대신에 여메기를 써서 용봉탕을 시식했더니, 그 맛이 뛰어난 정도가 천하에 비할 데 없다고 한 의미에서, 여메기를 종어(宗魚)로 명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조선을 대표하는 토종 물고기로 전시될 정도로 유명했던 종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싹쓸이해가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1923년 2월 13일 자 <매일신보>에 “부여명산 ‘종어’, 재등 총독이 황실에 헌상차로”라는 제하의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충남 부여군은 고려팔경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종어라는 강물고기가 생산하는 곳으로 또한 유명하다는데, 그 고기는 청국 어떤 땅에서 나고 조선에서는 부여군에서만 생기는 고기로 큰 것은 오 척 가량이요, 맛이 좋다하여 이전부터 왕실이나 귀족에 진상하던 고기인데, 지난번 재등총독이 남선 시찰할 때에 맛을 보고 이번 의회에 가는 길에 마흔 근 무게 되는 다섯 마리를 가지고 동경 가서 황실에 헌상코자 가져갔다는데, 그 고기는 오월에 알을 나며 잡기는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잡는 바 일년 산액이 오십 관 가량밖에 아니 된다더라.” 여기서 재등총독은 제3대 조선총독인 ‘사이토 마코토 (齋藤 實)’를 가리킨다.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워낙 희귀한 고기로, 1930년대에 이미 잡히는 수가 한 해에 300마리를 넘지 못했다. 그나마 백인기 같은 자의 뱃속을 채웠을 것이다. 산업화의 격랑이 몰아치던 1970년대 이후에는 아예 자취를 감춰 멸종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지난해 봄에 국립수산과학원이 금강에서 잡은 종어를 산 채로 가져오면 사례금으로 마리당 30만 원을 주겠다는 공고를 냈다. 많은 강태공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어떤 낚시꾼도 사례금을 찾아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국립수산과학원은 무슨 이유로 멸종된 고기에게 상금을 걸었을까? 2000년 중국에서 종어를 들여와 인공수정으로 양식에 성공한 이후, 2008년에 한 차례, 그리고 2016년과 2017년에 어린 치어를 금강에 방류했다. 그 성과로 치어가 우리나라 생태계에 적응하여 성어로 자랐는지 보고자 했던 것이다. 아직 낙관하긴 힘들지만 전망이 어둡진 않다. 작은 크기의 종어가 하구 부근에서 간간이 발견되곤 한다. (참고로 국립수산과학원이 2008년에 양식화에 성공하고도 무려 8년간 종어 복원사업을 벌이지 못한 건 4대강 정비사업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에 갔을 때 맛볼 기회가 생길 줄 알았다. 4쌍의 수염이 짧고 지느러미가 깊이 파인 특징을 적어 수산시장을 돌면서 찾아보았으나, 메기류 자체가 적고, 설령 있었다고 해도 구분할 감식안이 내게는 없었다. 나라마다 선호도가 다른 이유일지도 모른다. 처음 베트남에 갔을 때 다금바리의 저렴한 가격을 보고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베트남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 고기라 했다. 회를 즐기지 않는 나라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가 베트남에서 다금바리라고 하는 ‘라푸라푸’라는 고기는 우리나라의 다금바리, 즉 자바리와 다른 종이라 한다. 베트남, 태국, 필리핀 일대에 서식하는 어종으로 크기만 크고 맛이 없어 애물단지로 취급받다가, 한국인들이 몰려들면서 황금알로 떠올랐다. 


이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준치라는 물고기가 있다. ‘썩어도 준치’의 그 준치다. 청어과의 생선으로 맛이 좋아 옛날에는 진짜 물고기라 하여 ‘진어(眞魚)’라고 불렸다. 중국의 4대 생선이 있다. 황하의 잉어, 이수의 방어, 송강의 농어, 그리고 양자강의 시어다. 그중에서 시어를 가장 높이 쳤다. 그래서 시어를 ‘물속의 서시’라고 불렀다. 허균의 <도문대작>에 보면 시어가 준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제주도에서 그 이름을 차용해 한치를 준치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한치는 다리 길이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짧아서 생긴 이름이다. 옛날에 한치 중에서 크기가 큰 놈을 ‘중치’라고 불렀던 건데, 일부 해안가에서 준치로 이름을 바꿔 팔고 있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수입산 냉동 오징어를 들여와 현지에서 말린 경우가 많다. 설령 한치라고 해도 수입된 인산염(폴리 인산나트륨)이 범벅된 게 대부분이다. 오징어가 준치가 되는 세상. 고기 팔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종어 복원사업이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같은 동자개과인 빠가사리가 종어 팔자로 뒤바뀔 수 있다.


>> 먹는 법

1. 정과 망치를 들고 금강에 있는 보를 깬다. 3년은 족히 걸릴 시간에, 

    종어가 금강의 생태계에 적응하길 기도한다. 보를 깬 뒤에 금강 하구에 투망을 친다. 

2. 사이토 마코토 후손을 찾아가 먹은 거 다 토해놓으라고 시위를 한다.

3. 빠가사리와 메기를 넣고 매운탕을 끓인 뒤, 종어라고 생각하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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