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필준 Dec 09. 2021

삼매가 그렇게 어려운건 아닙니다만 어렵습니다.

그냥 저냥 요가수트라 1.17

vitarka vicara ananda asmita rupa anugamat samprajnatah

유상삼매는 이성, 성찰, 지복, 순수한 존재감을 동반한다.


<삼매가 그렇게 어려운건 아닙니다만 어렵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뭐 있는게 많지는 않지만 꽤나 행복합니다. 하루가 행복하면 인생이 행복한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거의 매일 행복하고, 행복한 시간이 많습니다. 가끔 옆에 디자이너가 야루고 빡치게 하면 좀 때려주고 싶긴 합니다. 그 깊이감 있는 빡침마저 행복합니다.


저의 행복한 하루 일과는 뭐 거의 매일 똑같습니다. 6시 기상, 7시 수영, 9시출근, 12시 낮잠, 점심은 패스, 18시 퇴근, 19시 글쓰기, 20시 요가, 21시 독서, 22시 취침 끝


왜 행복하냐면 삼매를 많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삼매가 별거 없습니다.


수영하면서 자신을 느끼고, 일하면서 집중하고, 글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책보면서 생각하는게 다 삼매입니다.


삼매도 종류가 있습니다. 생각이 있는 삼매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삼매로 나뉩니다. 생각을 하는 삼매를 유상삼매라고 합니다. 저의 일과는 거의 유상삼매로 이루어집니다. 유상삼매는 이성적 생각, 자기 성찰, 깊은 행복감, 순수한 존재감을 동반합니다.


이제 수영 4개월차이지만 수영을 하면서도 삼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잘하는 것과 삼매는 별개의 문제기 때문입니다.


수영을 할 때 나름 이성적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초보이기 때문에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꼬라지로 수영을 하고 있는지 최대한 자기 반성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집중해서 수영을 하다보면 깊은 행복감을 느낍니다. 사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집중하지 못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집중만 잘 유지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깊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수영을 하고나면 살아있는 기분을 느낍니다. 살아있는 기분이라는게 꼭 스릴이 넘치는 활동이나, 자기 학대적 활동만으로 느끼는건 아닙니다. 내가 나를 그저 느낄 수 있다면 순수한 존재감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수영이라는 하나의 활동에도 이성적 생각, 자기 성찰, 깊은 행복감, 순수한 존재감이 모두 동반됩니다. 이런식으로 모든일을 할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요?


참 쉽죠?

사실 쉽지 않습니다. 삼매 상태를 만들려면 기초공사를 많이 해야 합니다.


1. 내가 하는 활동이 자발성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2. 활동을 하기전에 할지 말지 생각조차 안해야 한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할 수 있어야 한다.

3. 과정에서 뭘 해야할지 고민하지 않아야 한다.

4. 감정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5. 호흡을 중심으로 모든 일이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6. 번뇌에 가까운 과도한 집중으로 에너지가 급격히 소모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7. 삼매와 번뇌상태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8. 평소에 명상을 좀 해두어 뇌의 상태를 안정화 시켜야 한다.


수영은 제가 선택한 활동이기에 자발성에 기반을 둡니다. 그리고 오늘 수영 가지말까? 하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습니다. 수영장은 눈이 오든 비가오든 번개가 치든 전날 술을 오지게 먹든 그냥 무조건 가야하는 장소입니다.


수영을 하는 과정에서 헷갈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수영을 시작한 첫 주에 도서관에 있는 수영관련 도서를 다 꺼내옵니다. 정독을 하진 않습니다. 쭉 훑어 보면서 수영에 대한 전체적인 지도를 머리에 그려 놓습니다. 그래서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최대한 빨리 알려고 노력합니다. 목적과 세부목표가 정해지면 과정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감정적인 안정을 위해서 수영장 가는길에 노래를 부르거나, 명상을 합니다. 물에 들어가기전에 스트레칭도 끝내놓습니다. 수영하다 번뇌가 생길땐 호흡을 고릅니다. 부작용은 수영호흡을 해야하는데 요가호흡을 하고 앉아있다는 겁니다.


번뇌에 가까운 과도한 집중으로 빠지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몰입상태를 유지하려 합니다. 특히 눈과 손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눈과 손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몸의 인지를 저하시킵니다.


저도 나름 요가선생이기 때문에 삼매와 번뇌정도는 구분합니다.

명상도 매일 10분 이상 하고 있습니다.


뭔가 자기자랑 같지만, 행복하게 사는건 자랑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나름 뼈를깎는 노력으로 만든 행복입니다요?

작가의 이전글 나는 게임중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