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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준 Nov 03. 2022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아무때고 내게 전화해, 나야 하며 말을 건네도.. 누군지 한번에 알아볼 나의 단 한사람~" 1997년도에 발매된 김경호의 노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노래의 한 소절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도 만난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 개빡치는 사람, 가스라이팅 겁나 하는 사람, 개꼰대, 은근히 열받게 만드는 사람, 뇌에 필터가 전혀 없어보이는 사람 등등등등.. 나를 슬프게 하기도 하고,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고, 나를 빡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분노하고, 빡치고, 역가스라이팅하고, 역꼰대를 시전하고, 같이 열받게 하고, 똑같이 뇌의 필터를 날려버릴 것인가? 그럴수는 없다. 그래도 된다. 하지만 나의 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내 격이 떨어지는건 용납할 수 없다.


그럼 어떤 방법이 있는가? 피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피할수 없는 경우도 있다. 직장 상사거나, 거래처 직원이거나, 부모거나, 형제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아주 어려운 방법이 있다. 그들을 나의 인생의 선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생은 나를 변화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 배워야할 것들을 가르쳐주고, 나를 변화시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렵다. 정말로 어렵다. 하지만 이 방법이 가장 현명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라는 외부적 압력을 공급한다. 그렇다. 우리는 외부적 압력을 제공받는다. 표현부터 남다르게 바꿔보자는 것이다. 외부적 압력을 '받는다'에서 ‘제공’한다로 말이다. 외부적 압력을 제공 받은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사람은 외부적 압력이 발생하지 않으면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이를 항상성이라고 한다.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항상성이 인간의 안정적인 생존에 유용하긴 하지만, 항상 항상 항상성을 항상 유지하려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우리는 항상성을 넘어 회복탄력성을 가져야 한다.


외력에 의해 압박을 받고 나면, 상처를 받는다. 근육처럼 말이다. 근육도 운동을 하면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나서 ‘초과회복’한다. 마음도 이게 가능하다. 상처 받은 만큼 강해지거나, 마음을 활용하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것을 도와주는 사람은 나를 빡치게 하는 사람뿐이다.


이들을 통해 관계 문제를 해결하거나, 관계를 개선할 방법을 찾거나, 나의 말버릇과 습관과 같은 문제를 발견해서 개선하거나, 서로의 행복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일종의 관계 기술이 된다.


그러니 우리를 슬프게 하고, 빡치게 하는 사람들을 스승이라 생각하고 모시도록 하자.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자.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자. 서로를 위한 방법을 찾자. 그리고 발전하기로 하자.


하지만 도저히 안되겠다면, 자신을 잃을 만큼 힘들다면, 내가 감당할 수 없다면, 가족이든, 친구든, 부모든, 직장상사든 뭐든 다 필요없는거다. 그때는 그냥 떠나야 한다. 그 누구도 나를 잃을 정도로 사랑할 필요는 없고, 그 누구도 나보다 사랑할 필요는 없다. 나를 빡치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스승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한계치는 있는 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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