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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준 Nov 14. 2022

나와 우울의 투쟁

다소 우울한 내용이 포함됨 주의

요즘 우울을 다시 배우고 있다. 우울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울을 학문적으로 열심히 배우고 있다. 책을 읽고, 다양한 우울장애 설문지를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삶을 돌아보고 있다. 히틀러가 <나의 투쟁>이라는 책을 썼다면, 나는 <나와 우울과의 투쟁>이라는 책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삶은 5개의 우울이라는 페이즈로 구성된다.

1차 우울은 중고등학교 시절이다. 거의 초등학교까지라고 봐도 무관하겠다. 우리 아버지는 존경할만한 분이지만, 불안강도가 너무 강했다. 그 불안을 나에게 표출했다. 인생의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를 너무 어린 나에게 너무 많이 해버렸다. 상당히 잘못된 감정 표현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는 어렸고, 세상의 무게 짓눌렸고, ‘학습된 무기력’을 배웠다.

이 시절의 나는 아무리 공부해도, 공부하려고 해도 뇌와 의지는 움직여주지 않았고, 학교에 가서 잠만 잤다. 술과 담배를 피웠고, 친구들과 온갖 나쁜짓을 다하고 다녔다. 결국 고등학교 평균 내신 성적을 9등급으로 마쳤다. 단 하나의 8등급도 없이 깔끔하게 전부 9등급이었다.

2차 우울은 20살 군대가기 직전이다. 대학교에 가지 않은, 가지 못한 나는 공장과 건축일을 했다. 매일 같이 경멸에 가까운 쌍욕을 먹으며 일했다. 일을 못하거나, 지각을 한다는 이유였다. 나는 건축일을 하면서도 고립감을 느꼈고, 집에 돌아와도 고립감을 느꼈다.

매일 다리 밑에서 술을 마셨다. 집에서 술마시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 내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 군대에서 강제로 술을 끊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3차 우울은 28살 요가를 시작하기 전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큰 피해를 입혔다. 입으로 말이다. 자만심이 한껏 올랐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할말 못할말을 다지껄였다. 큰 상처를 줬다. 그걸 깨달았을때는 이미 늦었다.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휴직을 했고, 1달 동안 매일 온천천을 하루종일 걸어다녔다.

이때 나는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고, 요가를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실수를 한다.

4차 우울은 30살 당시의 여자친구와 극단적인 이별을 했을 때이다. 이 이야기는 자세히 하고 싶지 않다. 당시의 나는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루에 한 두번 과호흡 상태가 되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매일 요가수련을 했지만, 내 안의 폭력성을 감출길이 없었다.

5차 우울은 34살이 된 지금 올해 9월 13일 이전의 한달 정도이다. 어느날 나를 돌아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할때 기력이 하나도 없고, 주말에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누워있었다. 극심한 피로가 느껴졌다. 이유는 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 발전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수면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버렸다.

각각 5개의 우울이 찾아온 이유는 학습된 무기력, 고립감, 나에 대한 실망, 관계의 극단적인 파국, 나에 대한 신뢰 부족과 자기 발전감의 부재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릴때에 비해 우울감이 지속되는 기간이 점점 짧아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1차 우울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우울감에서 벗어나는지 알수가 없었다.

2차 우울은 12개월 정도 지속되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군대에서 나름 인정받는 군인이 되니까 전혀 우울하지 않았다.

3차 우울은 4달 정도 지속되었다. 이때부터 운동과 명상을 매일 했다.

4차 우울은 3달 정도 지속되었다. 불교를 공부했고, 용서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5차 우울은 1달 정도 지속되었다. 발전을 못한다면 잠을 줄여버리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나의 인생을 <나와 우울의 투쟁>이라 표현해보았다. 다시는 우울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울증을 한번 경험한 사람은 우울에서 벗어나더라도 다시 우울해지기 쉽다. 우울로 향하는 뇌회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뇌회로가 형성된 사람은 우울에 빠져도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벗어나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또 언젠가 우울해지겠지만, 나는 또 우울에서 빠져나올 것이며, 그만큼 유연한 사람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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