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도 모이면?
임신 23주차가 되니 부쩍 배가 나왔다. 똑바로 선채 아래를 내려봐도 발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 물론 임신 전에도 똥배로 인해 간신히 발끄트머리 안부만 확인하던 나였지만 양치한 거품이 바닥이 아닌 배 위로 떨어지는 경험이 아직은 신기하기만 하다.
보란듯이 배가 나오고 나니 이것저것 불편한 것들이 생긴다. 똑바로 누워있으면 금세 숨이 찬다거나 배가 나오기 전에 입었던 허리 라인이 들어간 옷들을 전부 못 입게 되었다거나 하는. 그 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걸 고르라고 하면 두 말없이 발 씻는 일이라고 대답하겠다. 자고로 발이라는 것은 주저 앉든 발을 들어올려 세면대에 올리든 해서 몽글몽글 낸 비누거품으로 발꼬락 사이사이를 문질러 씻어줘야 제 맛인데, 배가 나오고 나니 허리를 숙이는 것도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도 여간 불편한 일이 되어 마음처럼 씻어내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실밥이 먼지처럼 잘 일어나는 양말을 신어 엄지 발톱을 덮는 살 사이에 실밥이 까맣게 낀 날은 정말 휴...
요즘은 차렷자세를 한 채로 샤워기를 이용해 발에 물을 쏘며 발꼬락을 이리 움찔 저리 움찔 하는 것으로 발 씻기를 대신 하고 있다. 닦아내는 것도 손을 이용해 수건으로 문질문질 닦아내지 못하고 바닥에 발 수건을 터프하게 던진 상태에서 왼발로 오른발을 문지르고 오른발로 왼발을 문질러가며 닦고 남은 물기는 선풍기를 이용해 말린다. 언젠가 나보다 일찍 임신했던 친구가 만삭에 발을 닦으려다 다리에 쥐가 심하게 나 욕실에 주저 앉아 펑펑 울었단 무용담을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것이 울 정도의 일인가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발가락 사이의 찝찝함이 몇 달간 이어진다면 조만간 나도 울겠다 싶다.
임신하고 겪는 소소한 불편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누군가를 붙잡고 일일이 하소연하자니 끝이 없고 싸안고 가지고 있자니 어쩐지 억울한 마음. 누군가에게 말을 했을 때 그 누군가가 보일 반응도 겁난다. 어쩌면 이해하고 맞장구 쳐주겠지만 어쩌면 다들 겪는데 유난이라거나 몇 달만 참으면 되니 좀 참으라거나 아기를 낳으면 더 힘들텐데 지금이 천국이다 생각하고 즐기라거나 하겠지. 그동안 실제로 전부 들어 온 말들.
소소함도 쌓이면 큰 불편이 된다.
한 방에 훅 들어오는 불편도 불편이지만 작게 작게 계속 이어지는 불편도 쌓이면 온 정신이 곤두선다. 다들 겪는 일이라고 하여 불편이 불편이 아닌 것이 되는 건 아닐테다. 오히려 다들 겪는 불편이니 다같이 불편에 대해 공감하고 배려해주면 좋을텐데, 모두가 겪는 불편이니 너도 군말없이 감내하라는 말을 들으면 시간이 지나면 흐려졌을 불편이 마음 속에 찌꺼기처럼 남는 불만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난 또 뿔난 임산부가 되어 입 삐죽이 내밀고 남몰래 꿍시렁꿍시렁 하겠지.
그래, 소소함도 쌓이면 큰 불편이 된다.
모두가 모두에게 모든 소소함을 공유하는 것은 아닐테니 저 사람이 소소함이 쌓여 괴로워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저 정도 소소함 쯤은 가뿐하게 넘기고 있는 것인지 겉으로 봐선 모를테고. 그래도 누군가 나에게 소소한 불편을 말한다면 나는 그것이 콩알만한 소소함이라도 콩 한가마니만한 말을 들은 것마냥 공감해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고 나서야 비로소 문득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