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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저녁 Jun 21. 2017

소소함도 쌓이면 큰 불편이 된다.

티끌도 모이면?


 임신 23주차가 되니 부쩍 배가 나왔다. 똑바로 선채 아래를 내려봐도 발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 물론 임신 전에도 똥배로 인해 간신히 발끄트머리 안부만 확인하던 나였지만 양치한 거품이 바닥이 아닌 배 위로 떨어지는 경험이 아직은 신기하기만 하다. 


 보란듯이 배가 나오고 나니 이것저것 불편한 것들이 생긴다. 똑바로 누워있으면 금세 숨이 찬다거나 배가 나오기 전에 입었던 허리 라인이 들어간 옷들을 전부 못 입게 되었다거나 하는. 그 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걸 고르라고 하면 두 말없이 발 씻는 일이라고 대답하겠다. 자고로 발이라는 것은 주저 앉든 발을 들어올려 세면대에 올리든 해서 몽글몽글 낸 비누거품으로 발꼬락 사이사이를 문질러 씻어줘야 제 맛인데, 배가 나오고 나니 허리를 숙이는 것도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도 여간 불편한 일이 되어 마음처럼 씻어내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실밥이 먼지처럼 잘 일어나는 양말을 신어 엄지 발톱을 덮는 살 사이에 실밥이 까맣게 낀 날은 정말 휴...


 요즘은 차렷자세를 한 채로 샤워기를 이용해 발에 물을 쏘며 발꼬락을 이리 움찔 저리 움찔 하는 것으로 발 씻기를 대신 하고 있다. 닦아내는 것도 손을 이용해 수건으로 문질문질 닦아내지 못하고 바닥에 발 수건을 터프하게 던진 상태에서 왼발로 오른발을 문지르고 오른발로 왼발을 문질러가며 닦고 남은 물기는 선풍기를 이용해 말린다. 언젠가 나보다 일찍 임신했던 친구가 만삭에 발을 닦으려다 다리에 쥐가 심하게 나 욕실에 주저 앉아 펑펑 울었단 무용담을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것이 울 정도의 일인가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발가락 사이의 찝찝함이 몇 달간 이어진다면 조만간 나도 울겠다 싶다.


 


 임신하고 겪는 소소한 불편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누군가를 붙잡고 일일이 하소연하자니 끝이 없고 싸안고 가지고 있자니 어쩐지 억울한 마음. 누군가에게 말을 했을 때 그 누군가가 보일 반응도 겁난다. 어쩌면 이해하고 맞장구 쳐주겠지만 어쩌면 다들 겪는데 유난이라거나 몇 달만 참으면 되니 좀 참으라거나 아기를 낳으면 더 힘들텐데 지금이 천국이다 생각하고 즐기라거나 하겠지. 그동안 실제로 전부 들어 온 말들.


 소소함도 쌓이면 큰 불편이 된다. 

 한 방에 훅 들어오는 불편도 불편이지만 작게 작게 계속 이어지는 불편도 쌓이면 온 정신이 곤두선다. 다들 겪는 일이라고 하여 불편이 불편이 아닌 것이 되는 건 아닐테다. 오히려 다들 겪는 불편이니 다같이 불편에 대해 공감하고 배려해주면 좋을텐데, 모두가 겪는 불편이니 너도 군말없이 감내하라는 말을 들으면 시간이 지나면 흐려졌을 불편이 마음 속에 찌꺼기처럼 남는 불만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난 또 뿔난 임산부가 되어 입 삐죽이 내밀고 남몰래 꿍시렁꿍시렁 하겠지. 


 그래, 소소함도 쌓이면 큰 불편이 된다. 

 모두가 모두에게 모든 소소함을 공유하는 것은 아닐테니 저 사람이 소소함이 쌓여 괴로워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저 정도 소소함 쯤은 가뿐하게 넘기고 있는 것인지 겉으로 봐선 모를테고. 그래도 누군가 나에게 소소한 불편을 말한다면 나는 그것이 콩알만한 소소함이라도 콩 한가마니만한 말을 들은 것마냥 공감해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고 나서야 비로소 문득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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