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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더필즈 Aug 10. 2020

기면증을 치료하려다 엄청난 하품을 얻었다

항우울제와 하품

YAWNING


국가고시를 치렀던 그 해, 그 계절은 정말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휴학으로 인해 미처 이수하지 못한 학점을 한꺼번에 채우느라 

다른 동기들이 10학점 내외의 수업을 들을 때에 나는 23학점을 수강했고,

그 와중에 모 회사에 합격해 버리는 바람에 입사 전 프로젝트까지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국가고시를 준비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모자란 데다가

스트레스는 어마무시한 이명과 기면증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아, 진짜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다. 


특히 기면증은 고통스러움을 넘어 자괴감까지 들게 했다.

아니 이건 뭐 쩨쩨파리에라도 물린거 아냐, 농담처럼 말은 했지만

잠을 이겨 보겠다고 사람 북적이는 카페에 책을 들고 앉아도,

지하철 플랫폼 의자에 앉아도,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쓰러져 자고 있었으니

늘 불안함과 걱정, 초조함을 안고 쿨쿨 잠에 빠져 드는....뭐 그런 웃프고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매일을 괴로워하고 있었다. 담배도 그때 피우기 시작했다. 니코틴을 좀 넣어주면 잠이 깰 줄 알고. 


결국은 찾아갔다. 정신과. 


신림동에 있는 모 정신과의 수면클리닉에서는 

나에게 두 가지 약을 처방해 주었다. 프로비질(modafinil)과 이펙사(venlafaxine). 


다른 글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당시 앳된 인상의 원장님이 내 체중을 묻지 않고 약을 처방한 탓에

프로비질이 과한 용량으로 처방되어 의식을 잃을 뻔한 소동이 있었다. 인데놀을 복용하고, 이후 투약분에 대한 용량 조절을 통해 프로비질의 부작용은 어찌어찌 해결을 했고, 어느 정도 기면증이 조절되고 난 이후에는 이펙사만 복용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펙사를 복용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턱이 빠지도록 매일 엄청난 횟수의 하품을 했다는 거다.

이펙사를 복용하고 한 1주 후부터, 나는 졸리지 않을 때에도 하루에도 수십번 늘어지게 하품을 해댔다. 


국가고시를 마치고 나서도 마음은 편안하지 않아, 불합격 통보를 받을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감에 시달렸고,

나는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매일 영화를 보거나 서점에 눌러앉아 자극적인 요소로 가득한 소설들을 골라 읽었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3권이 그때 막 출간된 직후라 이 또한 집어들고 한참을 읽었다.


그리고 하품을 계속 했다. 



아니 이거 진짜 재미있는데, 나 지금 몰입하고 있는데, 

억울하게도  


하품이 계속 나왔다. 

난 원래 하품할 때 소리도 안내는데, 자꾸 나도 모르게 하암하암 소리를 내면서 하품을 하고 있었던 거다.

아니 진짜 억울한 건 1Q84 3권이었겠지. 누가 보면 정말 지루한데 어쩔 수 없이 읽는 것처럼 보였을 거야. 


그 때 본 영화들도 다 너무 감명 깊었음에도, 보는 내내 나의 리액션은 하품투성이였다. 울다 하품하고, 하품하다 울고....하품을 하도 하다 보니 턱이 빠질 것처럼 아프기까지 했다. 이듬해에 한창 턱관절장애로 고생했는데

이때 했던 하품이 그 원인에서 1할은 차지할거다 아마. 



처음엔 왜 이렇게 하품이 나나 싶다가 결국 약 때문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고, 먹던 약이 이펙사 뿐이라

이펙사를 잠시 끊어 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하품은 빠르게 사라졌다... 턱에도 편안함이 찾아왔다. 


실제로 venlafaxine 복용 후 과하게 하품을 한 사례들이 case report로 보고되어 있고(1일 평균 80회 이상을 하품한 남성도 있었다) 인서트 페이퍼에서도 이상반응으로서 임상시험 대상자의 3% 이상에서 과한 하품이 나타났다고 쓰여 있다. 


왜 나는, 그들은, 이펙사를 복용하고 그렇게 턱이 빠지게 하품을 해댔을까?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세로토닌은 행복감에 기여하는 물질로 흔히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우울증에 처방되는 많은 약들이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억제하는 기전을 통해 우울감을 개선한다.
이 세로토닌은 혈관에 작용해서 피부 혈류량을 조절하기도 하는데 이는 체온 조절의 중요한 메커니즘이기도 해서, 세로토닌이 증가하게 되면 뇌와 심부 체온이 상승하게 된다.

따라서 이펙사(venlafaxine)과 같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를 복용할 경우
세로토닌 증가에 따른 뇌/심부 체온 상승이 나타나 결과적으로 과한 하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문헌들에서는 언급하고 있다.

참고문헌: Gallup AC , Gallup GG : Yawning and thermoregulation. Physiology Behav 2008; 95:10–16  


하품을 하는 사람이 긴장되거나 불안해 보이는 일은 없다.  

그 때의 나도 어쩌면 그렇게 쩍쩍 하품을 해대면서 조금은 더 불안과 긴장을 해소하는 효과를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펙사는 내게, 여러모로 고마우면서도 힘들었던 약 중 하나로서 기억에 남게 되었다.   



*한 가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은

그 이후로 그 분홍 캡슐을 떠올리기만 해도 하품이 난다는 거다.

이 글을 쓰면서도 벌써 열 번 넘게 하품을 했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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