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통증 신호는 같은 경로를 공유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큰 상실감과 함께 이별을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것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진짜로 아프다.
살면서 여러 종류의 이별을 겪어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온전히 마음을 주었던 사람을 한 순간 갑자기 잃게 된 순간의 고통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고 지금도 생생하다.
그 날 밤새 몸에서 열이 나고,
가슴 언저리가 너무 아프고 답답하고 괴로웠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었다.
내 심장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리고, 세상과 나 사이에 투명한 방음벽이 생긴 것처럼,
내 심장박동 소리와 숨소리를 제외한 모든 외부의 소리가 먹먹하게만 들렸다.
숨이 막혀오고, 이 답답한 숨을 그냥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맞은 것처럼'. 이 노랫말이 어릴 때는 유치한 가사인 줄만 알았는데. 아 진짜 총 맞아도 이런 느낌이겠다 싶었다.
이건,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대상없는 분노와 슬픔이 함께 찾아 올 때 나타나는 고통인 것 같았다.
그런 고통은 당분간 계속됐고, 특히 그 이별의 소식을 처음 접했던 시공간인 밤 열시, 내 방에 혼자 누워있는 상황이 되면 고통은 다시금 무섭게 나를 삼켜 버렸다. 아팠다. 많이 아팠다.
깜빡 잠이 들더라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게 되는 숱한 밤들을 보냈다.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려, 결국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약빨이 들었는지 모든 것은 조금씩 잠잠해졌다.
어릴 때 가슴이 아파 'heartburn'에 쓴다는 잔탁을 여러 알 삼켰던 철없는 아이는,
십년의 세월이 지나 실제로 위식도염을 앓는 어른이자 약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철이 없어서,또 엉뚱한 생각을 했다.
"상실감으로 인한 '가슴 아픔'은 실제로 통증으로서 존재하는데,
그렇다면 진통제로 이 가슴아픔을 달랠 수는 없을까?"
마냥 엉뚱한 발상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러한 연구들이 행해져 왔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언어권에서, 우리가 상실감에 대해 '가슴 아프다'고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게 심장이 아프다(예: heartbreaking)는 은유를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신체에서 통증과 유사한 감각이 나타난다는 증거일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 겪는 쓰라림에 진통제를 투여해보자
2010년에 행해진 한 연구를 살펴 보면, 연구자들은 피험자들에게 사전에 세팅된 컴퓨터 게임을 하게 했고, 일부러 게임 내에서 소외 당하는 느낌이 들도록 유도했다. 한 그룹에 대해서는 매일 타이레놀 2g*을 복용하도록 했고, 다른 한 그룹은 플라시보(위약=가짜약)을 복용하도록 했다. (*시판되는 타이레놀 500 mg정을 하루 두알씩 두번 복용)
참고로 여러 진통제 중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을 투여시킨 것은 이것이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진통제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부프로펜과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의 경우 말초에서의 작용이 좀더 우세하다.
그리고 MRI 영상을 이용해 뇌 각 부분의 활성을 관찰한 결과, 사람이 인간 관계에서 상실감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의 반응이 타이레놀 복용 군에서 플라시보 복용 군 대비 유의하게 감소하는 것을 관찰했다.
해당 영역은 anterior insula(전측 뇌섬엽), 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 (dACC, 전측 대상회)라고 불리는 영역으로서, 흥미롭게도 이 영역은 물리적 통증과 감정적 고통 모두에 대해서 활성화된다.
이와 같이 물리적인 통증과 감정적인 통증이 같은 신경회로가 겹친다는 이론이 제기되어 오고 있지만(overlap theory), 아직 명확하게 정립된 이론은 아니다. 반드시 상실감과 같은 '가슴 아픔'이 아니더라도, 해당 뇌 영역은 어떤 외부적 자극이든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에 대해서는 활성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가슴 아픔'을 실제 통증처럼 간주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상실감에 대한 고통을 '금단 현상'처럼 보는 견해도 있다. 누군가와 사랑의 감정을 나눌 때에 뇌에서는 '행복감'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등)이 분비되는데, 연인과의 결별 등을 겪을 때에 이러한 신경전달물질이 갑자기 차단되면서 마치 마약을 하다가 끊었을 때와 같은 금단, 갈망 현상이 나타나고 이것이 통증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금단 현상'으로 인한 고통이라는 설명이 더 와 닿고, 실제로도
이별 후 심각한 상실감으로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이 타이레놀을 여러알 털어 넣는 것보다는
세로토닌을 보충해 주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단 세로토닌과 관련된 항우울제는 한달 정도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의 통증'과 '물리적 통증'이 같은 맥락일 수 있다는 것, 참 흥미로운 이야기이지 않은가?
어릴 적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같은 데서 읽었던가, 자식을 잃고 가슴 아파하는 옆집 아주머니 가슴팍에 상처 보호용 밴드를 갖다 붙여주었다는 어린이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가슴 아파하는 이웃에게 타이레놀을 권하는 것은 그보다는 근거가 있는 대처겠지만.. 음, 위로는 그냥 따뜻한 말로, 때로는 침묵의 포옹으로 전하는 것이 좋겠지.
Reference: DeWall, C.N. et al. (2010). Acetaminophen reduces social pain: Behavioral and neural evidence. Psychological Science, 21, 93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