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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어휘] 유선경

독서노트

by 보미


상담을 하다보면,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내담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것들을 좀 더 세밀하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독서노트 #2

감정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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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에 알맞은 어휘를 붙여주는 일



『감정 어휘』 는 막연하고 모호하게 느껴졌던 감정에 알맞은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유선경 작가는 심리학이나 상담 전문가가 아님에도 감정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감정을 구분하고 적절한 어휘를 붙이는 것의 중요성을 웬만한 상담자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번 그녀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감탄했고, 깊이 공감했다.

'내가 이렇게 어휘력이 좋았다면, 상담에서 내담자들에게 감정의 중요성을 더 효과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 책은 단순히 감정에 어휘를 붙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감정을 신체적·감각적으로 떠올려 보고, 그 의미와 관련된 욕구, 생각, 행동을 이해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감정을 다루는 것이 서툰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내가 갈 길을 알려주는 실마리, 그것은 '감정'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감정이란 달팽이가 침 흘린 흔적만큼이나 흐릿하고 모호하며 무엇보다 믿을만하지 못하다. 쏟아내고 펼쳐 선명한 햇살을 쬐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일 것이다.




상담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결국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막연한 우울감에 시달리거나, 갑작스러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거나, 이유 없이 불안해지거나,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 무기력함에 빠지는 등, 많은 이들이 감정과 관련된 어려움으로 상담실을 찾는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감정의 어려움을 겪음에도, 우리는 감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한다. 내 감정을 잘 알아주기만 해도 그것이 내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는데, 사람들은 감정을 신뢰하기보다 피해야 할 커다란 골칫덩어리처럼 여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책에서 말하듯,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펼쳐 보이며 선명한 햇살 아래 드러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렇게 온전히 드러내도 괜찮은, 안전한 환경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사회는, 그리고 사람들은 감정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이들을 약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단단한 껍데기를 두르고 살아간다.

한 번 껍데기를 두르게 되면, 햇살이 쨍쨍하고 안전한 환경에서도 그걸 훌훌 벗어던지기 어려워진다.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연약한 감정과 마음을 하나씩 풀어 보기 위해서는.




이처럼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자극에 대해 마음이 일으키는 반응'을 감정이라고 한다. 어떤 자극인지, 어느 정도의 세기인지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 다른 형태와 강도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감정의 다양성이다.




이 책에서는 '감각'을 활용해 감정 어휘를 분류하고 정리한다.


2장. 온도로 신호를 보내는 감정.

3장. 통각으로 신호를 보내는 감정.

4장. 촉감으로 신호를 보내는 감정.

5장. 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감정.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다양한 감각들을 사용해 볼 수 있는데, 그것들을 어떻게 감지해 볼 수 있을지 이 책에서는 친절하게 하나하나 안내하고 있다.


내 마음에 집중해보자.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귀기울여보자.


그 느낌은 뜨거운가? 차가운가? 아픈가? 근질근질한가? 부드러운가? 거친가? 밝은가? 어두운가?


지금 내 마음이 ____________ 다.











이제부터는 2장 이후의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뽑아 자유롭게 감상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2장부터는 정말 다양한 감정 어휘가 등장하므로, 직접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내게 인상 깊었던 문장이 반드시 여러분의 마음에도 와닿으리라는 법이 없고, 각자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어휘는 저마다 다를테니 말이다.




모든 사람이 결코 아픈 만큼 현명해지지는 않는다. 도리어 더 어리석어지는 사람도 쌨다. 아픔을 제대로 겪지 않아서이다. 아픔이 없었다는 소리가 아니라 아픔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의미다.

사람은 아파서 아리고 저리고 쓰리고 뻐근하고 미어지고 기진맥진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어떻게 해야 괜찮아지고 편해지고 말랑말랑해지고 간질간질해지는지 방법을 터득해간다.




'아픔에 반응하는 내 감정에 귀기울여라.' 라는 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에게 아픔을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도 결국 나의 감정이다.

그 감정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감정을 느끼기 전에, 그 감정을 먼저 판단하려고 한다.

슬픔이 느껴지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슬퍼할 만한 일이야?'하며 슬픔을 무시하려고 하고,

화가 나는데, '이게 화낼 일인가?'하며 분노를 억누르려 한다.

마치 어린 시절,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나는데, '네가 뭘 잘했다고 울어?' 라는 말을 듣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내가 잘했든, 잘못했든 그 순간 슬플 수는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미안해서 슬플 수도 있고, 그 순간에 너무 당황하거나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슬플 수도 있다. 그 순간 나에게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는 것은, 뭐든 그럴만해서 느껴진 것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정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게 느낄만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 감정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평가하려 든다.




감정은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리는 신호이기에 모두 정당하다. 그의 말조차 들어보려 하지 않고 이성이나 의지가 폭군처럼 감정을 굴복시키려 한다면 감정의 입장에서 가혹하고 부당하지 않을까. 이 과정에서 아픔이 발생한다. 감정 자체가 아픈 게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참고 억누르고 없애려고 하는 자기 반응이 아픔을 일으킨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정당하다. 그러니 먼저, 감정의 말을 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너 필요없다고, 지금 네가 나타날 상황이 아니라고.

억누르고 없애려 하기 전에, 일단 그 감정이 내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이 '정당하다'는 것은,

감정을 느끼는 그 자체가 정당하다는 뜻이지,

그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방식이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끔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다는 것을 핑계 삼아 다른 사람을 해치는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런 행동이 나타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을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이기보다 그저 도구처럼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 감정을 조절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듯, 우리 대부분은 감정조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보통은 감정을 참고 억누르는 것을 감정조절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조건 참는 것이 감정 조절은 아니다.


감정 조절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감정을 유발한 원인을 이해하며, 내가 느끼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이름을 붙여 표현하는 것이다.




감정에 있어서 긍정적=좋다, 부정적=나쁘다는 식의 공식은 성립될 수 없다.




앞에서 모든 감정은 정당하다고 말했듯, 감정은 무조건 '좋다'거나 '나쁘다'로 단순히 분류될 수 없다.


흔히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감정들—기쁨이나 즐거움 같은 감정들—이 무조건 많이 느낀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감정들—슬픔, 분노, 수치심 같은 감정들—이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


충분히 경험되고 이해되어야 할 감정들을 단지 '나쁘다'는 이유로 숨기거나,

지금 필요하지 않은 감정을 '좋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느끼려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을 나로 존재하지 못하게 만들고, 마음을 병들게 한다.



'나는 긍정적인 감정들만 느끼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한다면,

혹시 그저 좋지 않은 감정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알아줘야 할 마음들을 외면한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본 사람들은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도 있다.

슬픔이 없이는, 기쁨이도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떤 상황에서 몸이 부드럽고 물렁해지며 또 어떨 때 마음이 포근하고 몽실몽실하고 몽글몽글해지는 지 기억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휩쓸 때 그 기억을 꺼낼 수 있다면 그래서 이상향을 스스로에게 마련해준다면 감정의 해일에 대책 없이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가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갈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나의 마음이 포근하고 몽실몽실해지는 순간을 떠올려 보자.


안전한 공간에 있고 보호받고 존중받을 때, 우리의 몸은 부드럽고 물렁해지며 마음은 포근함을 느낀다.

유선경 작가는 그 순간을 이상향이라고 말했다.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기억, 순간, 장소를 잘 기억해두자.

그리고 혼자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벅차고 힘들게 느껴질 때, 그런 이상향을 스스로에게 마련해 줄 수 있도록 해보자.



감정에게 말을 걸어보자.

지금 네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그러기에 내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감정은 우리가 감정을 대하는 것처럼 성급하지 않다.

내 마음이 준비되고 안전하다고 느껴질 때,

그 감정들을 하나씩 마주해해도 그들은 결코 탓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너를 꼭 알아줄 거라고. 네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리뷰하며 덧붙이고 싶었던 말이 있다.

언제든 여러분에게는 '상담'이라는 공간이 있다.

이 책을 읽더라도 혼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이름붙이기 어려운 감정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상담 안에서 상담자와 함께 그것을 나눌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러니 모두가 스스로의 감정에게 조금씩 더 친절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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