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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Jun 18. 2018

내가 아픈 건 나만 안다.

내가 아픈 건 나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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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주하는 시련의 크기는 다르다. 누군가는 친구와 다툰 일이 절망처럼 체감되고 누군가는 친구와 절연한 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모든 일들이 상대적이라지만 누구도 내 감정을 완벽히 공감하지는 못한다.

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남이 칼에 찔린 고통보다 내 손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다. 결국 내 아픔을 가장 크게 공감해주고 적극적으로 치료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타인의 도움을 먼저 요청한다. 

다만 타인의 도움과 관심은 출혈을 멈추게 하는 정도의 응급조치에 불과하다.

감염방지나 재생 같은 근본적인 치료는 스스로 에게 맡겨진 몫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인의 [의도]이다.


누구도 당신에게 처음부터 상처를 줄의 도로 접근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스스로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관계를 시작하기도 한다.

비바람과 같은 자연재해에는 의도가 담겨있지 않다. 여러 자연현상들이 중첩되어 일어나는 일에 불과하다. 악의가 없다. 그리고 당신이 관계에서 받은 대부분의 상처들도 자연재해와 비슷하다.

나쁘기를 의도해서 생긴 일은 거의 없다. 

의도적인 공격은 차치하고서라도, 그게 아니라면 삶으로서 담담히 감내해야 할 그런 일들이다.


비가 오면 슬퍼지지만 비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생긴 일 자체는 따지고 보면 슬픈 일이라기보다, 생길 수 있는 일에 가깝다.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심정이 슬플 뿐이다. 

이것을 상황과 감정을 분리시키는 이성이라고 한다. 당신이 입은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초석이다.


우산 없이 걷다가 수만 개의 빗방울을 마주하며 온몸이 비에 젖어든다고 해서 우리가 비를 욕하지는 않는다. 

우산이 없는 나를 탓할 뿐이다.  


댓글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데 길게는 못하겠다. 첫사랑이 실패한 이유는 그녀와 나 모두에게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최선을 다했지만, 서로의 최선이 서로에게 닿지는 못했다. 

그것뿐이다.

상처를 주었지만 상처를 주고 싶어 준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사랑이 아직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잘살기를 기도하고 축복해줄 뿐이다.


웃지 못할 일들과 사람들에게 감사하라.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걷게 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라. 그 길에는 자갈이 많아서, 걷다 넘어져

무릎이 까졌겠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장애물들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지, 거기에 자갈들이 많은 것이 문제는 아니다.

당신과 나 그리고 또 누군가의 사이에 생기는 모든 일들이 그러하다. 지나가는 비와, 깔려있는 자갈들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그 날, 그 길을 처음 가봤기 때문이다.

 

당연히 생겼을만한 일들을 자책하지 마라.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될 줄 알고 생기는 일들은 없다.


비속에서 울어봐야 당신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누구도 볼 수 없다. 

당신만 흐르는 눈물을 느낄 뿐.

그러니 그냥 웃어라. 그래도 된다. 슬퍼서 울겠지만,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기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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