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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Jul 24. 2018

같느니 죽겠다.

나에게 뻔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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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물었을 때 사람들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선택지만을 재차 알려줬다. 

그래서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재미없었다. 그들은 늘 뻔한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뻔한 패턴 속에서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누구도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는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마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한데 왜 막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안돼도 내 삶이다. 말아먹든 부숴먹든 그건 내가 책임질 문제인데 고나리 질 하는 인간들이 꽤나 많았다.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라곤 하는데 와 닿지 않았다. 진짜 나를 걱정해줄꺼라면 기왕 하는 거 더 잘해보라고 응원이나 해줄 일인데 말이다. 난 껍데기만 번지르르하고 싶지 않았다. 


좀 거칠고 투박해서 남들 보기에 상품성이 떨어져도 내 의식이 가미된 나만의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마치 농약을 뿌리지 않은 유기농 과일처럼, 껍질은 벌레 먹고 색이 바래도 내용물은 내 것으로 꽉 찬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삶을 관통하는 수천 가지의 진리가 있다한들 내가 거기서 감동이 없다면 나와 무관한 일이다.

내가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를 변화 사킬 줄 알아야 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보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그렇게 살았다. 원하는 게 있다면 대뜸 달라하지 않고 받을만한 행동을 먼저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이미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다. 

그렇게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할 시점부터 나는 불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선택해도 실패는 내 탓이었다.

누구에게 탓하지 않아도 됨이 이렇게 기쁜 일인지 몰랐다. 나를 가볍게 만들었다.

탓을 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종의 저주다. 나는 누군가를 축복하며, 축복받으며 살고 싶었다.


나는 하루에 수천 명이 찾아주는 다이소보다, 한 달에 하나의 작품만 팔아도 한 달을 먹고사는 유서 깊은 상점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너무 많은 이들의 취향에 영합하기 위해 버둥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많은 취향을 충족시킬 거리를 다 갖추기엔 돈도 시간도 부족하다. 


쉽게 나를 알아주고 찾아주는 소수에 의해 내 삶이 유지되는 꿈을 꿨었고, 지금도 꾸고 있다.

나의 무의식은 날마다 헤엄친다. 그게 때로는 바다를 향하기도 하고 산 중턱의 작은 개울일 때도 있다.

혹은 다 부서져가는 폐가 옆에 흐르는 물웅덩이 일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헤엄친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자라나지 않는다. 누구를 통해서도 뻗어가지 않는다.


누군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똑같은 방식으로 사용하느니 갖지 않겠다.

이미 터져있는 길을 걷느니 되돌아가겠다.

아무나 볼 수 있는 것들을 똑같이 반복해 보느니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


뻔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 그러다 땅을 치며 후회한들 그것 또한 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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