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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Oct 07. 2018

겸손함이 없는 지옥.

사람들은 내 마음을 모른다. 이야기해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해한 다곤 하지만 말뿐이다.

서운함은 항상 이 지점에서 발생된다. 내가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데 네가 왜 몰라주냐 이거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 역시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다. 


남이 시험에 떨어졌다는 글을 봐도 그렇구나 하고 5초 후에는 아무렇지 않게 웃긴 짤이나 예쁜 연예인 사진을 보며 낄낄대곤 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고통에 민감하고 타인의 고통에는 둔감할 수밖에 없다. 

이 로직을 인정하지 못하면 평생 남을 비난하며 살게 되어있다.


대개 힘들 때 실제적으로 안타까워해주는 사람은 나와 금전적으로 교류가 있는 사람이다. 

내가 평소에 술이나 밥도 많이 사주는 사람은 당연히 내가 돈이 없게 될 때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다.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오던 효용이 줄어들 테니까.

그럼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내가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은 사람들이 내 고통에 둔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라고.


그렇게 되면 서운 할 일이 크게 줄어든다. 당신이 무차별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게

아니라면, 결국 당신의 고통을 위로하고 함께해줄 사람은 몇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불쌍한 존재로 여긴다. 


내가 제일 힘들고 괴롭다는 거다. 그래서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성향은 자신을 늪 안에 고립시킨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악랄하고 배려심 없는 사람들로 보이게 되는 거다.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평생 피해망상 속에 살던 한 남자가 조현병이 극에 달해, 주변의 사람들을 악마라며 

무참히 칼로 난도질을 해버린다. 그러나 정작 악마는 헛것을 보며 흉기를 휘둘러댄 자기 자신이었다.

-

세상을 지옥이라고만 보는 사람은 대개 그 지옥에 동참하며 지옥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천사까진 아니어도, 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온전함과 순수함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결국 내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어떤 장소에 있는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정신적, 육체적 컨디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

누구도 당신의 고통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결국 내 짐은 내가 짊어질 수 있어야 할 뿐이다.

술은 잠시 잊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 뿐, 그 술기운에서 깨어나면 짊어진 짐은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진다. 

고통을 스스로 버텨낼 내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삶은 당신에게 그저 산지옥에 불과하다.

-

누구도 도움 주지 않고,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상황을 견뎌낼 단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모든 단련은 배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배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지옥은, 남을 탓하는 경솔함과 겸손함의 부재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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