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여행처럼 경유지가 존재한다. 경유지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필요하다. 거치지 않으면 도착할 수 없다.
나를 버린 사람들이 그 경유지와 비슷하다.
현재 시점으로 봤을 때 내가 여기까지 이 정도의 상태로 올 수 있었던 건 내게서 멀어진 그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처음엔 미움과 증오가 일어났다.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시간들을 모조리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인과응보 자업자득 이런 말들은 알고 있었지만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논리와 이성으로 납득하는 것 말고,
가슴 깊이 이해되고 품어지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재밌게도 내가 생각했던 상처들이 연결되더라. 그 상처들은 자연스레 서로서로 연결되더니
내가 가야 할 방향의 화살표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화살표대로 따라가기만 했을 뿐이다.
이제는 누군가가 조금도 밉지 않다. 나는 그래서 가야 할 곳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마음고생은 잔뜩 시키고 마지막엔 바람피웠던 그 친구도, 내가 버는 돈이
적은 것 같아서 떠나간 그 친구도. 더 이상 내입에 누군가의 험담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화살과도 같은 말을 쏟아내려면 결국 내가 그 화살들을 품은 활통이 되어야 한다.
그 화살들은 움직일 때마다 나라는 활통 안에서도 나를 수없이 찌른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통은 누군가 때문에 증폭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람에 대한 집착과 열망이 만들어낸 허상이자, 난잡하게 사람들을 정의한
뭉개진 내 자화상일 뿐이었다.
섭섭함이란 단어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미운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닌데 사랑을 갈구하는 상태.
그래, 섭섭함이 정확하다. 그래도 나는 내 최선을 다했고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 당신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조금 더 아름다웠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이 들뿐이다.
그랬다면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날도 조금 당겨질 수 있었을 것 같으니까.
나는 그래도 이런 멋진 경유지를 거쳐갔노라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섭섭하지만 시원하지 못했던 계절들이 지나가고 담담히 삶을 마주 할 수 있는 정도에 만족하며 산다.
그냥 작은 소원이 있다면, 내가 가진 용서의 크기와 당신이 가진 용서의 크기가 같았다면.
그래서 차라리 내게 실수를 하거나 큰 잘못을 했다면 나는 그래도 아낌없이 내 용서를 풀어헤쳤을 텐데.
좋은 친구는 실수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친구가 아니다.
그저 내가 겨울일 때 여름이 되어주고, 내가 여름일 때 겨울이 되어주는 존재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 나는 가을이 되고 싶다.
너무 차갑지도, 너무 덥지도 않아서
당신이 혼자서도 조용히 걷는데 가장 좋은 그런 가을.
시간은 흘러갔지만 당신들은 흘러가지 않고 내 마음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있다.
잘 지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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