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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Nov 08. 2018

뭐 어쩌라고

사람들은 당신이 꽤 많은 것들을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게다가 모르는 것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다.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내 상황을 이해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없다.

나라는 개인을 독립적 존재로 자각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타인의 이해와 공감이 없이는 나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는 세대가 지금의 세대다. 

나 스스로의 자각과 인정이야말로 내일을 담담히 맞이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핸드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타인과 연결되는 시대가 주는 가장 무서운 점은, 독자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인하는 감각을

무뎌지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좋아요 몇 개와 칭찬 몇 마디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땔감이라면 당신은 꽤 위험하다. 

애초에 그 자원들은 굉장히 제한적이고 불안정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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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철저히 개인화될만한 시간을 가질 때 비로소 스스로의 역할을 자각한다. 

그리고 그 역할의 의미는 개인으로서 부여받은 과업을 달성하는 데에 달려있다.

당신이 카페의 캐셔라면 주문을 받고 결제를 하는 그 모든 과정을 완벽히 숙지해야만 바리스타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공동체에 속해있지만 개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마땅히 수행할 줄 알아야 한다. 아니라면 속한 공동체에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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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는 함께이나, 해야 할 일은 개인이다. 

이걸 분간 못하면 개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부분들까지 공동체에 떠넘겨 버리곤 한다.

간혹 같은 업무환경에서도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별 군소리 없이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

꽤 괜찮은 환경에서도 이런 일은 흔하게 벌어진다.  다양함의 확인은 우리가 더 나은 방향을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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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자각하는 것. 

그리고 그 자각 속에 스스로의 부족함과 나약함에 대해 끝없이 고찰하는 것.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나은 모습을 지향하는 태도가 체화되는 것.

내가 타인의 경각심이 되기보다 스스로의 기대감이 되는 것.

스스로가 스스로의 깜냥이 되는 것 말고는 어떠한 방법도 없다는 걸 깨닫지 못하면 세상은 계속해서 축소되는 패닉룸이 될 뿐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대해 반문하지 않는 자의 삶에게 주어지는 결과는 무한한 고통뿐이다.

현실에서의 천국과 지옥은 사실 장소의 개념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는 곳이라면 지금 있는 곳이 천국이고, 그게 없다면 그곳이 지옥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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