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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Nov 13. 2018

나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나는 내 것만 중요했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보니, 당신과 내가 함께 중요하게 여길만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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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조영화가 좋았고 당신은 심야 영화가 좋았다면. 이제는 그저 같이 영화를 보는 게 더 중요해졌다랄까.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나의 '좋음'을 관철하는 것은 타인이라는 대상을 접촉했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것이 명확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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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 확고하고 명확할수록, 당신과 함께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성큼 다가왔다. 

사실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다. 영화를 늦게 보든 빨리 보든, 밥을 적게 먹든 많이 먹든, 피자를 먹든 파스타를 먹든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내가 당신과 발맞추려 노력하고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게 없건만.

:

생각해보면 나의 위치에 대해 민감했던 것 같다. 누구도 날 무시하지 않길 원했고,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던 나는 어떻게든 고수하려는 것들이 많았다. 마치 큰 성을 지키려 세워진 높은 성벽이 있었다랄까.

그 성벽에서 벽돌 한 장을 빼기보다는 틈만 나면 그위에 더 높이 벽을 쌓으려 했던 거다. 

그러니 누군가와의 순수한 대면은 더욱 어려웠다. 그가 높은 성벽을 넘어오도록 시켰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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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 높은 성벽을 기어올라 오라고 하지 않는다.

그 성벽에 나무로 된 작은 문 하나를 만든 거다. 그 문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고통스럽게 성벽을 기어오를 필요도 없고 아주 짧은 시간에 당신과 내가 대면할 수 있어졌다.

내가 가진 벽을 쉽게 무너뜨릴 수 힘은 없었다. 그저 나의 은밀한 곳을 보여줄 용기와, 작은 결단이 필요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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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그토록 애써서 뭘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사실 결국 보여줄 것은 적나라한 '나' 였을 뿐인데. 

그래서 지금이 감사한 이유는, 그냥 이모양인 나도 알아줄 누군가를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뿐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솔직하지 않았다가, 지금은 솔직해질 수 있어진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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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가 어디쯤에 와있다고 사실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내가 다른 멋진 곳에 있었다고 속였던 것을 후회한다. 

이러든 저러든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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