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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랑은 그게 아닙니다만.

by 터뷸런스

글을 쓰는 건 여러모로 나에게 도움이 된다. 기존에 알고 있는 단어의 뜻이 재발견되거나 재정립 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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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사랑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면 단순히 연애에서의 애틋함 정도가 먼저 떠오르곤 한다.

사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사랑하는 개념도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함께 지내는 가족의 모든 부분이 다 좋고 맘에 들던가? 그렇지 않아도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이 좋고 싫음의 수준을 떠나 모든 것을 덮고 아우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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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본적으로 사랑받고 싶어 한다. 다만 "사랑받는다"의 전제는 "내가 먼저 사랑을 줘야" 한다 이며

값없이 주는 사랑이 내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가, 얼마나 값지고 진실된 사랑을 하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좋은 척도가 된다.


가끔 내가 사랑을 담아 무언가를 베풀어도 먹고 튀거나, 알아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조금 아프지만 괜찮다. 나는 상대가 내게 무엇을 베푸는지보다 내가 어떤 사랑을 베풀며 살고 있는지가 몇 배는 중요해서다.

먹고 튀든 어쩌든 나는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다만 그들을 바라보며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왜 튀나. 겨우 그 정도로 살아서 인생을 다 어찌 알아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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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영 앤 리치 빅 앤 핸썸 톨 앤 머슬이 연애를 시작하는 기준이란다.

이런 것들로 시작되고 유지되는 사랑이 과연 얼마나 값진 사랑일까. 딱히 와 닿지 않는다.

애초에 단어 몇 개와 숫자 몇 개로 정의되는 사랑이 가장 흔한 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그게 나에게도 적용되어야만 만족한다면 사랑의 개념을 대체 얼마나 정확히 깨닫고 있는지 의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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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기쁨, 행복, 배려, 평안, 정성, 사랑 이 모든 종류의 긍정적인 바이브들은 결국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단어가 실제로 내포한 수천만 가지의 경우의 수를 얼마나 많이 깨달았는지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다.

사랑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나 역시 다 아는 건 아니다.

다만 분명한 건, 남들 짓밟아가며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사람들보다는 좀 더 정확히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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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싸는 것 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다.

내게 주어진 삶이 어떠한 가치가 있으며 그래서 나의 오늘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야 하는지 정립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


궁금해해야 하며, 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격해져도 거기서 한발 물러서서 조용히 지켜볼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현재의 단면과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과거와 , 그래서 현재의 모습을 기반으로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까지도 유추해볼 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사랑하는 자세가 갖춰졌을 때 가능한 일이다.

사랑하라. 내게 주어진 그 모든 것들이 실제로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들인 지 발견하게 되는 순간부터

삶은 달라진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달라지는 건 없는데 다르게 보인다.

보여지는것보다 내가 어떻게 보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어디를 향해 어떻게 달려가는가.

나는 내 삶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해 하나의 단어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도 사람들이 제시하는 행복을 거절하고 내가 정립한 행복을 선택하고자 누리고자 몸부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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