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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순간만 참으면,

by 터뷸런스

아주 조금만 더 신중하면 된다. 딱 한 번만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말하면 숨기고 싶은 흑역사는 대부분 발생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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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한 번을 못 참고 말이나 행동을 내질러서 관계를 깨뜨리고 신뢰를 저버린다.

신뢰를 쌓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깨는 데는 아주 작은 계기와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신중함이 없으면 어렵게 쌓은 것을 쉽게 잃는다.


억울한 경우도 있다. 내 잘못이 아닌 타인의 잘못이 발단이 되면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의도와 달리 과한 언행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다만 옳고 그름을 떠나 내뱉어져 버린 칼과 같은 말은 상대만 후벼 팔 것 같은데, 의외로 되돌아와 내 가슴도 후벼 판다.

인간의 감정은 1차 방어선이 존재하는데 이게 무너지면 2차 3차까지 쉽게 뚫린다.

그래서 처음 폭발할 것 같은 순간에 참느냐 못 참느냐가 인격의 완성도를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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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과격한 분노는 존중받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부모, 친구, 연인에게 과격한 언어로 핍박받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도화선에 불이 붙어 폭발한다.

그래서 가정폭력에 자주 노출된 사람은 그만큼 반응이 격하다. 생존에 대한 욕구는 극렬한 반감이나 반항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분노조절 장애 사건이 빈번히 기사를 통해 보도된다. 남의 일 같지는 않다.

누구나 분노가 한계에 다다르면 촉발시킨 대상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좁게 보면 그것을 표출하느냐, 진정시키냐의 문제일 뿐이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 논리적이냐 비논리적이냐를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그런데 살아보면 알겠지만 그런 기준들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그마저도 주관적일 때가 더 많고.

거의 모든 폭력사고는 당연히 논리적이지 못하다. 애초에 논리를 따질만한 이성이 있었다면 그런 사고는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현상이 발현되기 까지는 수없이 많은 경험과 사례들이 축적된다. 감정의 표현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없이 복잡한 요소들이 상호 작용된다.


그렇기에 상황을 인지할 때 조금 더 멀리 볼 필요가 있다. 술을 먹고 자식을 패는 부모라면 처음부터 그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가 어떤 상처와 고통으로 변질되었는지 지그시 바라볼 여유가 필요하다. 그 새끼가 X같은 새끼라고 욕하기 전에, 왜 X같아 졌는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화가 나면 내가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쏟아내느냐에 포커싱이 된다. 포커스를 돌릴 필요가 있다. 결국 그 감정을 통해 가장 크게 영향받아 변화되는 건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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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쏟아내 내가 이기면 우리 모두 지게 되고, 내가 잠깐 한 템포 멈추는 모션을 취하면 우리 모두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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