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살지 결정해야 한다. 거기서 대부분의 걱정거리들은 해소되기 마련이다.
-
예전에는 연애와 우정에 대한 착각이 있었다. 긴 연애는 결혼을 가기 위한 필수적 발판이라 생각했고
우정은 나만 잘하면 평생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결혼은 무조건 긴 연애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우정은 내가 잘한다고 해서 평생 가지도 않았다.
결국은 나와 맞는 상대를 만나면 시간의 장벽 따위는 의미가 없었고 내 삶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만 남았다.
어떻게 해도 남을 사람들은 내가 사는 방식에 대해 굳이 가타부타 해명하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신뢰가 바탕이 됐기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애초부터 신뢰관계가 부족했던 사이는 내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좋게 보지 않았다. 아주 작은 일에도 신뢰를 잃고 떠나갔다.
부족해진 신뢰를 다시 채워 넣기 위해 찾아가서 일일이 내 선택의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 내 시간과 심력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사실 근 1년은 내게 폭풍과도 같은 한 해였다. 아주 많은 것을 잃었지만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생각해보면 내게 주어진 시간의 상자는 크기가 정해져 있었고 그 상자에 들어올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래서 선택한 건 내게 더 중요한 것에 몰입하는 삶이었다.
-
꼽아보니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과의 돈독한 관계 성립 , 효도 , 건강관리, 내 아내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었다.
절반이 모두 개인적인 영역의 것들이었다. 그래서 선택을 했고 집중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 드는 생각은 누군가는 분명 내게 섭섭해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당연히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면 거기서 선택받지 못한 누군가는 서운해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여력이 한정적이어서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을 택하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중요한 일들을 선택해 온 정성을 쏟더라도 아쉬워하지 않을 친구들만을 선택하기로 다짐했다. 그러고 나서 찾아온 건 오히려 자유로움이었다.
친구의 수는 줄었지만 남은 친구들과의 관계는 깊어졌다. 애초부터 내가 깊은 관계를 나눌 수 있는 친구의 수는 10손가락도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관계의 양과 질은 반비례 관계 같았다. 질을 선택하려면 양을 포기해야 하는 게 맞았다.
이제 주말에 더 이상 어떤 친구를 만날까 고민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며 말씀을 읽는다. 혹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아내와 데이트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방식의 삶이 존재한다. 나는 항상 내가 하는 방식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다만 어쨌든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는 거다. 내가 나로서 온전하려면 내 삶에 집중해야 한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늘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일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친구 때문에 괴롭다면 과감히 놓아버리는 것도 답이다. 연인 문제로 고통스럽다면 헤어지면 그만이다.
-
누구나 자유롭기 위해 무언가에 종속되지 않는 삶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가장 중요한 사랑에게 종속되는 삶이다.
내 부모님과 , 내 아내와, 태어날 내 자식들에게 종속되는 삶은 버텨내고 견뎌내는 책임감과 더 강한 의지를 심어줄 것이다.
나는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강해져야겠다 생각했고, 강해지려면 더 많은 것들을 책임져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으며 그저 홀로 살아가는 삶이 나를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예견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더 해야 할 것도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지만 오히려 더 행복하다.
왜냐하면 우선순위를 나 스스로의 기준을 통해 선택했고, 거기서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삶이 나를 강하게 만들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타인에게 지나치게 간섭받거나 관여당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의지로 오롯이 나아가는 삶을 만들어가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기대되고 기대된다.
나는 나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 누구도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