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도 적이 있다.

by 터뷸런스

유재석도 적이 있다. 하물며 난들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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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를 향한 타인의 증오에 집중할 것인가 혹은 애정에 집중할 것인가를 선택하느냐의 반복이다.

유독 성실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사기 마련이다.

혹은 아주 친절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눈밖에 나기도 한다.


우리는 상실을 통한 분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돈을 잃어서, 친구를 잃어서, 누군가를 향한 신뢰를 잃어서 분노하는 사람들이 들끓는다. 누군가의 상실이 나를 향한 분노가 되는 경험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를 향한 애정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증오와 분노가 내 감정을 위태롭게 만드는 경우는 일상다반사에 가깝다.

다만 문제는 증오는 더 큰 증오를 만들고 애정은 더 큰 애정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흔히 말하는 기회비용의 차원에서, 증오는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 이상으로 너무 많은 애정과 사랑을 포기하게 만든다.


반면 애정은 수많은 증오를 포기하게 만들고 더 큰 애정을 품게 만든다.

단순히 + - 로 계산해봐도 무엇을 선택하냐는 인생에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를 향한 증오의 가장 무서운 점은 내가 증오를 뿜어내는 존재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때때로 증오에 가까운 부정적 감정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무서워 포기하곤 한다.

나는 그간 너무나 많은 사랑과 애정 속에 커왔고 그것이 증오보다 얼마나 더 큰 가치가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경향성의 문제다.

어디로 끌려가려 하며 그래서 어디로 가려하는지 선택에 의해 생겨난 경향성.

나 역시 누군가의 증오를 경험하고 아주 큰 증오를 표출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은 내가 애정을 선택하게 만들어주셨다.


그 누구의 권유도 등을 떠미는 강요도 필요치 않다.

내 선택에 내가 책임지는 삶은 유유히 흘러간다.

다만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내 존재가치를 결정한다면 나는 증오보다 애정을 선택하려는 경향성이 내재되길 원한다.


증오가 혼재된 공간에서 애정이라는 작은 섬으로 떠나는 여정을 오늘도 계획하고 한걸음 내딛는 것.


맹목적인 군중의 분노보다 단호하고 이유가 필요치 않은 애정이 훨씬 값지다는 사실을 하루하루 알아가는 것.


그게 오늘 행복하고, 지금이 감사하며, 내일을 기대하게 되는 기쁜 삶이 아닐까.

증오라는 이름의 대지에서 벌목당한 나무는 애정이라는 그루터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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