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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Dec 09. 2017

설리, 그 두 번째 글.

설리, 그 두 번째 글.

설리가 손가락질받던 지점들에 대해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다.


1. 설리는 로리타를 연상시키는 콘텐츠를 생산한다?

2. 과한 노출로, 청소년들에게 여성으로서의 잘못된 가치를 심어준다?

3. 지나친 관종이다?


답 1. 설리는 로리타(로리콘)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녀는 성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발달된 신체를 노출한다. 로리타적 행위는

미발달 한 소아의 신체와, 그것에 대한 애호로 시작된다. 일단 시작되는 전제조차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소아성애는 성애의 대상에 대한 강제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이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설리는 능동적 여성성을 기반으로 노출을 감행한다. 자기 자신이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

어떠한 거리낌도 없다. 오히려 그녀의 사진들은, 수동적 여성성을 강요하는 남자들에 대한 항거로 느껴질 정도이다.

고로 설리와 로리타적 요소는 아무 관계가 없다.


답 2. 아니다. 이건 정말 고리타분한 관점이라 볼 수 있다. 1840년대의 프랑스 여성들은, 아름다운

미의 기준을 갖추려면 허리가 10~13인치 여야 한다고 강압을 받았다. 심지어 여왕이 선두에 나서 그걸 권장할 정도였으니. 그런데 그것은 미에 대한 잘못된 소수의 관점이 전체에 적용되는 폭력성에 가깝다고 평한다.

브라를 하든말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마치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성범죄를 부추긴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정확히 말하자.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것 보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문제다.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데, 인터넷에 치면 나오는 p2p사이트가 이천배는 더 악하다.

거기엔 어른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수위를 가진 콘텐츠가 길바닥의 돌처럼 굴러다닌다.


그녀의 그 정도 노출이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준다고 한다면, 청소년들을 너무 얕잡아 본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참고로 본인은 지난 10년간 중고등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최근 아이들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얼마 전 모대학 교수가 성폭력 행위를 당하지 않으려면 여자들이 조신하게 다녀야 한다고 해서 큰 파장이 일었었다. 미친 소리다. 이건 마치 사과를 깎아먹는 과도 도 범죄에 이용될 수 있으니 모든 과도를 정부에서 회수해야 한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설리의 그 정도 노출을 혐오하는 행위는, 시대가 강요하는 폭거의 산물이다. 개인의 노출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기형적인 허리사이즈를 강요하던 코르셋을 착용시키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것보다 당신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에 들어있는 게 더 심하다. 그걸 본다고 해서 우리가 사는데 지장이 있는가? 난 없다.


답 3. 그녀는 관종이 맞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관종이다.

우리가 연인을 만날 때 잔뜩 꾸미고 나가는 것도, 여자들의 서랍장에 색조화장품이 가득한 것도, 남자들의 옷장에 비슷한 디자인의 하얀 셔츠가 가득한 것도, 다 우리는 상대의 관심과 반응을 먹고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정 부분은 자기만족에서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들에게 내 개성을 드러내는 지점은 타인의 관심과 기호 속에서 작동되기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너나 나나 다 관심종자라는 것이 아예 틀린 전제는 아니란 소리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논리는 아주 합리적이다.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대상은, 어떠한 자기관리나  꾸밈들이 지속될 수 없다. 게다가 설리가 올리는 콘텐츠는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고자하는 의도성이 아예 없으며, 오히려 본인의 직업을 지속하게 해주는 좋은 도구로서 작동된다.


고로 관종 짓 또한 그녀의 포지션에서 할 수 있는 아주 합당한, 합리적인 행동이다.

오히려 그녀는 그런(?) 영역에서 선두주자에 가깝다. 기자들은 날마다 그녀의 기사들을 재생산 유포하고, 그녀는 그 인지도를 팔아서 자신의 몸값을 올린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에 대한 손가락질은 오히려 그녀를 먹여 살리고 있다.


유교 문화와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으며, 알게 모르게 생겨난 고리타분한 "꼰대짓"은, 설리로 하여금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낙인찍어 버린다.

설리는 따분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들의 구분선을 나누어주는 좋은 매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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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주체적 사고에 의해 개성을 드러낼 자유가 있다. 타인의 영역을 강제로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육질이 좋은 거대한 참치는 둘레 200미터짜리 어장이 아닌, 제한이 없는 망망대해에서만 잡을 수 있다.

고작 개인의 사생활이 담긴 sns에도 정치질을 당하는데, 다양함이라는 큰물에서만 탄생되는 예술성 담긴 콘텐츠가 어찌 자유롭게 생산될 수 있겠는가.


이는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 대중들은 설리라는 개인의 땅에 침범하려 하고, 강탈하려 한다.

나는 그들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한다.

당신 주변에 자신은 꼰대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설리에 대한 위의 질문을 하면, 꼰대인지 아닌지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설리의 판단에 대해 강제할 수 없으며, 강제하려 해서도 안된다.

마치 인간관계와 비슷하다. 당신과 맞지 않으면 안 보면 된다. 페이지라면 언팔하거나, 올라오는 기사를 보지 않으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녀가 당신 집의 방문을 부수고 들어와 노출을 하는 게 아니라면, 그녀에게 가해지는 어떠한 종류의 비난들도 합리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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