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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서야 튀니지를 떠올리는가

시간이 흘러야 더 아름다운 것들

by 월급쟁이 노마드

튀니지에서 3년을 일하며 살았다.


그 시절은 흙탕물 같았다. 나빠서 흙탕물이라기보다 그때는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친 시기였고, 좋고 나쁨,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흙탕물 속 흙들이 다 바닥에 가라앉아 맑은 물만 남게 되었다. 가장 맑은 부분만 남게 된 지금, 이제서야 나는 튀니지에 대한 글을 쓸 준비가 되었다.


튀니지에서 돌아온 이후 많은 사람들이 물어왔다. '튀니지 살기 어때요?, 주말엔 할 게 많아요? 치안은 괜찮아요?' 등 꽤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대체로 첫 문장은 모호하게 대답한다. '바다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살아볼 만해요!' 어째 조금은 무책임한 답변인 거 같기도 하다. 세상 모든 곳은 다 장점이 있기 마련이고 한 번쯤은 살아볼 만하지 않나.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튀니지에서의 아름다웠던 나날들이 아무 이유 없이 떠오른다.

매콤한 튀니지의 꾸스꾸스, 뜨끈한 민트티, 일하다 점심으로 자주 간 카페의 파니니, 쇼핑몰 헬스장의 요가 공간, 즉석에서 구워주는 양고기 냄새,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 섞인 뜨거운 바람, 겨울이면 자주 갔던 하맘, 메디나의 색감,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밭, 그리고 한여름 지중해의 온도 같은 것들이 모두 뒤죽박죽으로 떠오른다.


확실히 기억은 미화된다. 물을 뿌옇게 만들었던 흙들이 다 가라앉아 맑은 물만 남은 게 보인다. 시간의 힘이다. 그리고 나도 그 시간의 힘을 빌어 튀니지를 추억한다. 내 머릿속 아름다운 튀니지의 풍경들, 내가 위안을 얻었던 음식과 공간들 그리고 스쳐간 인연들에 대하여. 그리움, 미련, 원망보다 이제는 아름다움만 남았다.


앞으로 쓸 글들은 튀니지에서 3년간 직접 경험한 일들, 그리고 그 일들을 추억하는 지금의 마음이 담겨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내가 가진 튀니지에 대한 아름다운 감상을 느껴주길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튀니지 여행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정보를 얻기 위해 읽는다면 시간 낭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지나친 환상만 가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나는 이런 아름다운 감상을 남기기까지 5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렸다.

Saint Vincent de Paul Cathedral in Tu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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