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과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되지 않아 임신을 하게 되었다.
신혼 생활을 얼마 즐기지 않고 임신을 계획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아기를 가질거면 빨리 가지라는 의사선생님의 조언도 있었고,
낳을거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으라는 말이 와닿았다.
또 무엇보다 코로나 시기였다 보니 이것 저것 취미 생활이나 여행 등 즐길 것들이 많지 않았다.
배란 테스트기를 3개월 정도 쓰며 기다린 결과 선물 같이 아이가 찾아와 주었다.
어머님은 아들이 어도 좋고, 딸이어도 좋다고 하셨지만 주변에서는 아들이라는 말에 다들 할 일을 해냈다며 축하해주었다.
'아니 진짜 성별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했고 정말 나는 성별이 무엇이든 건강하게만 태어나 주면 좋았다.
어머님이 어느 날에 조심스레 물어오셨다. "돌림자는 쓸거니?" 하시는 말에 단칼에 "아니요"라고 답했다.
요즘 돌림자를 많이 안쓰는 추세이기도 하고, 이름만큼은 엄마인 내가 지어주고 싶었다.
게다가 돌림자가 '희'로 끝나는 이름이라 하니, 아들인데 어울리지 않는 이름처럼 느껴졌다.
임신 생활 내내 늘 평화롭고 설레는 시간이 계속 되었다.
어머님 아버님은 배가 불러오는 며느리를 위해 신혼집으로 두 손에 먹을 것을 잔뜩 들고 한번씩 방문해주셨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나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부모'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전생'과도 같았고 이제 나는 절대로 '전생'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제부터 정말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나와 시부모님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했다.
이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로서, 또 이 아이의 '엄마'로서.
아기를 낳기 전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만 저만 보통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늘어갔다.
'돌림자를 왜 안쓰니'
'모유는 먹이고 있니'
등등, 우리가 낳은 아이이기 때문에 '부모인 우리'의 소관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시부모님은 자주 궁금해 하셨다.
유도분만 실패로 힘든 진통 끝에 수술로 낳은 아기를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볼 수 있었다.
산후 회복이라는 말은 우습게 여기듯 젖몸살이 찾아왔다.
'엄마'라는 자격을 얻기 위해 하루하루 시험에 드는 기분이 었다.
이 와중에 남편은 시부모님 전화를 받기 바빴다.
전화의 요지는 '며느리의 산후조리'가 아닌 '손주 이름의 돌림자'였다.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열달동안 고심 끝에 지어주고 싶은 이름을 결정한 이후였고,
그 이름을 가장 많이 불러줄 사람은 바로 엄마인 '나'였기 때문이었다.
시부모님의 전화에 안절부절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더욱 짜증이 밀려왔다.
결국 남편은 내가 지은 이름으로 출생 신고를 하고와서는 이제 더이상 무를 수 없다는 듯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때부터 였을까. 마음속에 한편으로는 시부모님에 대한 서운함이 몰려왔다.
손주를 가져 고생한다며, 고맙다며 두둑히 건네주시던 봉투와 과일들, 고기들, 매일 소화가 되지 않는 임산부를 위해 직접 손수 만드신 매실청은 왜 생각이 나질 않았을까.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엄마'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기에 나는 너무나 마음이 바빴고, 사사건건 전전긍긍,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처음이니까. 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튼 아기를 낳은지 50여일만에 시부모님께서 방문하셨다.
어머니가 하신 분명 많은 말들이 있었는데 나는 왜 여태껏 '집이 왜이럽게 춥니' '아기가 아빠를 닮았구나' 하는 말들만 기억이 나는 것일까?
출산후 호르몬 때문일까? 아니면 모유수유 하느라 잠도 잘 자지 못하고 먹는 것도 가려야 하는 상황에 잔뜩 예민해졌기 때문일까?
'집이 추우면 산모인 나한테도 안좋은 것 아닌가? 아이는 태열이 한가득인데 뭐 이렇게 자꾸 춥다고만 하시는거야' 하며 속으로 울그락 불그락 하다가, 나의 감정은 더욱 치닫고 말았다.
모유를 먹일 시간이 되어 아기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어머니가 따라오시는게 아닌가.
'금방 나가시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아기는 배고프다고 울고 칭얼거리는데 어머니는 내 가슴을 빤히 쳐다만 보고 계시는게 아닌가.
여태 남편 외에는 누구 앞에서 모유를 먹여본 적이 없는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창피한데..."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름다운 광경이에요~"하시는 어머니를 남편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말 내키지 않는 마음에 가슴을 가리며 아기한테 물리려하니 어머니가 정말 불편한 기색을 눈치채셨는데 방문을 닫고 나가셨다.
모든 상황이 불편하고 낯설었고, 그저 피곤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서운해했고, 불편해했고, 새로운 정체성을 반기면서도 당황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