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5시에 정확하게 일어 난 우진은 간단하게 세안을 마치고 토스트 하나와 삶은 달걀 하나를 챙겨 먹으면서 30분짜리 동영상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5시 45분 고시원을 나섰다. 5분 거리의 헬스장이다. 문은 안에서 잠근 채 청소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청소도구를 챙겨 나오는데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아직 10분 전인데?’ 우진은 후다닥 뛰어가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
“6시 오픈인데, 이용 고객이신가요?”
“네!”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급하게 뛰어가 안에서 잠근 문을 열고, 환하게 웃었다.
“어? 전우진?”
“어! 미경 누나!”
“너, 뭐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그러는 누나야말로 새벽부터 여기 왜 있어요?”
“나야 운동하러 왔지. 운동하고 학교 가거든. 원래 오픈하던 아저씨는?”
“그런 건 잘 몰라요. 오늘부터 제가 해요. 오픈이랑 청소만”
“야, 우연이 두 번 겹치면 인연이라던데. 뭐냐 너.”
“웩, 꼰대 같아요.”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어?”
“일단 들어와요. 운동하러 왔다면서요? 회원증 있어요?”
“검사까지 하냐? 여기 있다!”
미경은 회원증을 내보이고는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락커 룸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우진은 미경과 인사하느라 지체된 청소를 계속 이어갔다.
“우진 군, 일찍 나왔네. 혹시나 해서 와봤더니.”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니, 사장님. 박 씨 아저씨는 어디 가시고, 쟤가 왜 있어요?”
미경이 대뜸 사장에게 묻는다. ‘이 동네 인싸인가?’ 갸웃거리며 우진은 다시 제 할 일을 한다.
“박 씨 아저씨 당분간 병원. 디스크 때문에 치료받는대. 아마 못 나오실 거야. 저 친구 너 아는 친구니?”
“어제부터 편의점에서 같이 일하거든요. 깜짝 놀랐어요.”
“하하하. 그래? 잘 생겼지? 매력 있어, 저 녀석.”
“잘 생기긴. 저런 애들 널렸어요. 뭐.”
“그 널린 애 하나 잡아 봐. 아직 연애도 한 번 못 해봤으면서 말은 잘해.”
“나 참, 헬스나 해야지. 사장님하고 얘기하면 꼭 거기로 빠지더라.”
“하하하.”
사장의 웃는 소리를 뒤로 하고 미경은 자신의 루트대로 운동을 시작했다. 우진은 갑작스러운 미경의 등장에 잠시 놀라긴 했지만, 청소에 열중하느라 이내 미경의 존재는 잊었다. 뭐든 집중력 하나는 끝내주는 모양이다. ‘이런 건 누굴 닮은 걸까? 하민준이라는 내 생물학적 아빠? 쳇!’ 애꿎은 걸레에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아빠라는 사람에 대한 미움을 담았다. 하도 빡빡 문질러댄 통에 팔이 아플 정도다. 그런 우진을 사장은 흡족한 얼굴로 바라 보았다. 운동을 끝내고 샤워까지 마친 미경은 땀투성이가 된 우진에게 이따 보자며 총총총 사라졌다. 사장님이 헬스장 샤워실 사용까지 허락해 준 덕분에 우진은 고시원 공동 샤워장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우진은 반복되는 삶에 금방 익숙해졌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수업을 듣고, 5시 50분에 헬스장 오픈과 청소를 한다. 청소를 마치고 한 시간 정도 운동도 시작했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고시원으로 돌아가 저녁 알바 시간까지 계획대로 하나하나 성취해 나갔다. 3월생인 그는 며칠 전 운전면허도 취득했고, 8월에 있을 검정고시를 위해 원서접수까지 끝냈다. 예상 문제를 풀어보았는데, 이대로 가도 60점은 가뿐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능을 보려면 8월 검정고시는 무조건 통과해야 하니까, 만만하게 봐서 될 일은 아니었다. 검정고시와 수능 공부를 정해진 시간에 하고, 읽고 싶었던 책도 실컷 읽었다. 몇 번인가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언제든 돌아와라. 엄마가 걱정하고 있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니? 등등의 문자도 와 있었다.
‘아직도 그깟 대학 포기 못 했나 보네. 김미경 씨! 가도 내가 가. 이제 더 이상 상관하지 말라고!’ 우진은 엄마 생각만 하면 기분이 나빠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에게 인정받는 게 1순위였는데, 하루아침에 인생이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 좀 꼰대 같지 않아?”
우진은 오른쪽 팔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이 친구는 내가 포기하거나 감정이 다운되면 나오는 거 같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대충 그런 느낌이 들었다. 분노와는 상관이 없었다. 엄마를 버리고 가버린 친아빠와 그런 친아빠가 미워 나까지 버리려 한 엄마를 떠올리면 화가 났다. 고시원 밖으로 뛰쳐나갈 정도로 여러 번 화가 났는데도 그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민석이가 생각나거나 지난번 같은 깊은 구렁텅이를 떠올리면 무서운 존재감을 드러냈다.
우진은 여느 때와 같이 오후 5시 50분에 편의점에 도착했다. 늘 먼저 와 있는 미경이 아직 오지 않았다. 6시가 지나도 오지 않는다.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봤지만, 읽지 않았다. 혼자서 많은 손님을 감당해 본 적이 없는 터라 우진은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 버렸다. 결국, 그날 미경은 오지 않았다. 우진이 보낸 문자는 여전히 읽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헬스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꽁꽁 숨어버렸다. 10시가 되어 밤 근무자가 왔다. 그에게 시재를 맞추어 넘기고는 편의점을 나왔다. 장마철 눅눅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우진은 편의점 폐기 음료 하나를 들고 무작정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혼자 일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써보았다. 미경이 궁금했지만, 아직 읽지 않은 문자에 기분이 상한 데다 추가 문자까지 얹고 싶진 않았다. 무슨 일이 있겠지. 그럴 뿐이었다.
불쑥 민석이가 떠올랐다. 민석이가 죽기 전, 우진은 민석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이 빠지고 낯빛이 창백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가볍게 여겼다. 물어볼 수도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하지만, 우진은 아는 척도 묻지도 않았다. ‘나도 힘들어. 너만 힘드냐? 고3이니까. 당연한 거야.’ 되려 우진은 수험생티를 내는 민석이가 얄밉기까지 했다.
‘나도 그때 같이 형수에게 당했더라면, 마음이라도 편할까?’ 생각하자 팔목이 경고하기 시작했다. 우진은 근처 놀이터 의자에 앉아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고 몇 번을 반복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동안 지켜본 미경은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다. 우진은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 민석이에게 해주지 못했던 관심, 그녀에게는 보여야 했다. 하지만, 우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응답하지 않았다. 통화 중지 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멍하게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슬펐다. 아, 팔목!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색이 진해졌을 뿐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던 그때, 우진의 전화가 울렸다. 미경이었다.
“누나!”
“……”
“무슨 일 있어요?”
한참 동안 말 없던 그녀가 어디냐고 묻는다.
“편의점 앞 놀이터요.”
“너, 지금 시간 있니?”
“네, 괜찮아요. 누나 있는 데로 갈까요?”
“아니야, 근처에 있어. 내가 갈게.”
10분 후 그녀는 놀이터에 나타났다. 습하고 더운 날씨였다. 그럼에도 긴 점퍼에 긴 바지, 이마에는 땀이 흥건하다.
“안 더워요? 뛰어왔어요?”
우진은 다급하게 캐물었다.
“천천히 물어봐! 더워! 그리고, 걸어왔어. 됐냐?”
“걱정했잖아요. 왜 연락 두절하고 그래요. 이틀 동안 얼마나 바빴는지 알아요?”
“미안, 사장님껜 한 이틀 못 간다고 말씀드렸는데, 너한텐 말을 안 하셨나 보네. 많이 미안! 배 안 고파? 미안하니까 밥 살게”
“얼렁뚱땅 밥으로 때우시겠다?”
“이 자식! 하여튼. 가자. 나 배고파. 밥 먹자!”
그렇게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김치찌개 집으로 들어갔다.
“우진아! 누나 소주 한 잔 마셔도 돼?”
자리에 앉자마자 미경이 우진에게 양해를 구했다.
“마셔요. 나는 물 마실게요.”
미경은 익숙한 듯 소주 한 병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에이, 천천히 마셔요. 나 누나 책임 못 져요.”
“키는 뭐 같이 큰 녀석이 나 하나 감당 못 하냐? 만약에 취하면 파출소에 데려다 놔. 그럼 됐지? ”
잔은 계속 비워지고 또 채워졌다. 그녀는 소주 한 잔, 국물 한 모금을 번갈아 가며 거뜬하게 한 병을 비워냈다.
“사장님,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에이, 누나. 그만 마셔요.”
“나 술 세. 걱정하지 마. 그런데, 너 왜 안 물어봐?”
“물어보면 말은 하고?”
그녀는 잠시 주춤하더니 점퍼를 살짝 벗었다. 민소매 셔츠 아래로 팔 전체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우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쉿! 아무말 마. 별일 아니니까. 종종 있는 일이야.”
우진은 그녀의 말에 더 놀라 미경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다리를 걷어 보여준다. 그곳도 멍투성이였다. 이 정도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교통사고라도 났어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어디서 그렇게 멍이 든 거에요?""
"그게, 부끄럽지만 동생한테 맞았어. 너랑 동갑인 남동생이 있거든. 필요한 게 있어서 잠시 본가에 갔다가 딱 마주쳐 버렸어. 학교 갈 시간이라 없을 줄 알고 갔는데 말이야. 얼마 전에 사고 쳐서 자퇴했더라고. 미리 알았더라면 안 갔을 텐데 얘기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
여기까지 얘기한 미경은 다시 소주 한 잔을 털어넣었다.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자포자기한 사람마냥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남동생이 나한테 콤플렉스가 있거든.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자주 맞았어. 아빠는 알면서도 모른 척, 엄마라는 사람은 아들 편만 들고.... 걔랑 나랑 엄마가 달라. 울 엄마는 하늘나라 갔고. 아빠는 새엄마랑 그 아들이랑 셋이 살고, 나는 혼자. 이해되니? ”
우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완벽해 보이던 누나에게도 나와 비슷한 상처가 있다. 안타까워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아니, 아무리 콤플렉스가 있다 해도 누나를 이렇게까지? 제정신 맞아요?”
“형수 그 자식이 공부 잘하는 사람을 싫어해. 지독하게도.”
우진은 순간 멈칫했다. 미경은 무슨 일인가 싶어 우진을 쳐다보았다.
“누나, 형수라고 했어요? 혹시 A 고등학교 3학년. 김형수?”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우진은 한동안 말없이 물만 마셨다.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미경은 궁금하단 표정으로 우진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빈 잔에 술을 채우고 있었다.
“저 올해 초까지 그 학교 다녔어요.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죽었죠. 그 형수라는 아이 때문에.”
미경은 입으로 향하던 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닥에서 부딪히며 낸 쨍그랑 소리가 우진과 미경의 시간을 잠시 멈춰 세웠다. 직원이 쫓아와 아수라장이 된 바닥을 치우는 동안 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미경이었다.
“나가자.”
둘은 밖으로 나와 처음 만났던 놀이터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민석이가 뛰어내리던 날 아침에 본 얼굴이 아직도 생생해요.”
“알 것 같아. 그 아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나도 몇 번 그런 생각을 했었으니까. 시도해 보기도 했어, 실패로 끝났지만. 다행히 대학이라는 도피처가 있어서, 정당하게 집에서 나올 수가 있었지. 어쩌면 가족들 모두 내가 나가 주길 원했을 거야. 나는 그 집에서 이방인이었거든. 그보다, 내 동생 때문에 네 친구가 죽었다니, 유감이야. 그렇게밖에 말 못 하는 거 이해해 줘.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사실 잘 모르겠어.”
“누나 잘못이 아니니까요. 나도 마찬가진 걸요. 결국 지키지 못했어요. 나 역시도 방관자였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경은 우진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넌 왜 학교를 그만둔 거야? 친구에 대한 죄책감 그런 건가?”
“아니오. 그렇게 착하진 않아요. 지독히도 미운 사람 때문에.”
“혹시 형수가 너도 괴롭혔니? 그럼, 공부를 아주 잘했다는 건데?”
“참나, 이 와중에 농담이 나와요?”
“하하하, 미안해. 웃어야지. 어쩌겠어. 이 와중에라도.”
밤은 깊어 갔다. 하지만, 둘 다 자리를 뜰 생각은 없었다. 헬스장도 내일은 쉬는 날이라 일찍 들어가야 할 이유도 없었다. 딱히 대화가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둘 다 그날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 문득 찾아오는 우울이 싫었다. 바닥 끝까지 내려가는 무기력함도. 서서히 날이 밝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골목골목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다. 이 하루라는 아이는 지겹지도 않나 보다. 쉬는 날도 없다. 그가 쉬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슬슬 돌아가서 잠을 청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진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그런데 말이야,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미경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우진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뭐가 궁금한데요?”
“네 팔목에 있는 문신 같은 거. 그거 왜 한 거야? 너 처음 본 날 거기가 퉁퉁 부어오른 걸 봤거든. 왜 계산도 안 하고, 약 털어 넣었던 그날 말이야. 글자까지도 선명하게 보였어. 문신 부작용, 뭐 그런 건가?”
“문신이라니, 아니에요. 저도 몰라요. 어린 시절 기억이 돌아오면서 갑자기 생겼어요. 어떻게 생긴 건지. 누가 그런 건지.”
“그럴 수가 있어?”
“그럴 수가 있더라고요.”
미경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동생 대신 사과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공감한다고, 그 마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진은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누나나 잘하라며 꿀밤을 때렸다. “이 자식이!” 하며 덤벼들었지만, 키가 작은 미경의 손은 우진의 머리에 닿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는 역 쪽으로 사라졌다. 이따 보자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