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가 뒤바껴버렸네요^^;;;;
‘엄마 돌아가셨다. *** 장례식장 ***호’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이다. 우진은 민석이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그날처럼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한참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곳에 머물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엄마 잃은 아기 새, 딱 그모습이였다. 수능장 앞에는 종일 기도하며 기다리던 부모들이 자기 새끼를 찾느라 여기저기서 이름을 불러대고, 그 아수라장을 정리한답시고 경찰까지 와서 북새통이었다. 그 한가운데 방금 엄마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꼬마 아이가 서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작은 아이가.
우진은 이내 마음을 먹은 듯 조용히 택시를 탔다. 목적지를 말하고는 미경에게 급한 일이 생겨 며칠 알바를 못 갈 거 같다. 편의점 사장님이랑 헬스장 사장님께 좀 전해 달라. 부탁한다는 문자를 남기고, 핸드폰 전원을 껐다. 미경의 말이 문득 스쳤다. 구름 이불, 아니, 나에겐 선인장 같은 이불. 그 이불을 만나러 간다. 계절이 세 번밖에 안 바뀌었고, 집을 나온 지 1년도 채 안 되었다. 무엇보다 아직 건강할 나이다. 스물넷인가에 그를 낳았으니, 아직 사십 대다. 몇 달 전 버스 안에서 보았던 그들이 생각났다. 아빠 손에 들려 있던 약 봉투..... 우진은 조용히 아빠가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빈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검은 띠조차 두르지 않은 낯선 여자의 사진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저렇게 해맑게 웃었던 적이 있었나? 우진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더 현실 같지 않았다. 사진 속 여자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것 같다. ‘잘 못 찾아온 건가?’ 다시 나가서 이름을 확인했다. ‘故人 김미경, 夫 전현수, 子 전우진’ 뚜렷하게 적혀 있다. 그때 우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였다.
“우진아!”
우진의 아빠는 아들의 손을 잡고 그녀 앞으로 데려갔다.
“네 아들 왔다. 네 말이 맞았네. 네가 죽어야 볼 수 있을 거라더니.”
그는 흐느껴 울었다. 믿어 지지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이. 아빠의 울음소리가 허공에서 계속 맴돌아서 꿈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 게속 되었다.
“어디 아프셨어요? 갑자기 왜?”
우진은 나오지 않는 말을 억지로 꺼냈다. 이유가 궁금했다.
“스스로 갔어.”
‘스스로 갔다?’ 우진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늘 수능이었잖아. 어젯밤에 너 수능 봐야 하는데, 네 인생 자기가 망쳤다고. 밤새 울더라. 진정이 안 되기에 우울증 약을 먹이고 재웠어. 혹시나 해서 옆에서 지켰는데, 내가 깜빡 잠든 사이에 그랬나 봐. 십삼 년 전엔 살렸는데 이번엔 못 살렸어. 미안하다. 우진아, 정말 미안하다.”
아빠는 다시 목 놓아 울었다. 한참 울고 난 아빠는 주절주절 지난 일들을 꺼냈다. 엄마는 우진을 낳고, 지금의 아빠 외에 모든 사람과 등을 돌렸다고 했다. 아빠는 고아로 자라서 가족이 없고, 우진의 외가가 있지만, 이십 년 만에 부고로 알릴 수는 없었다고. 생전 미경의 뜻이기도 했단다. 가족만 참여하는 장례식. 조문객이 없는 게 이해가 되었다.
“우울증은 언제부터 있었던 거예요?”
“네 친아빠가 떠나고 나서부터. 네가 예닐곱 살 땐가 건선이 심해서 유치원에서 건선 치료하라고 알림장을 받은 적이 있었어. 그날도 목을 맸었지.”
우진은 그날을 분명히 기억한다. 알림장을 박박 찢던 엄마와 어떤 사람에게 심하게 욕을 하던 것까지. 하지만, 극단적 시도를 했다는 건 몰랐다. ‘그런데 왜? 본인이 죽으려고 했을까? 건선까지 닮은 아들이 미워서? 그게 분해서?’
“아빠.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아빠는 왜 엄마 옆에 있었던 거예요? 남의 자식까지 떠안으면서?”
“네가 들으면 우습겠지만 사랑했어. 아마 죽을 때까지 나한텐 미경이밖에 없을 거야. 그래서, 징글징글했나 봐. 사랑 하지도 않는 남자가 자꾸 자기 옆에 달라붙어 있으니까. 어쩌면, 나 때문에 간 건지도 몰라.”
우진의 아빠는 눈물샘이 고장나버린 것 같았다. 반대여야 했다. 아들인 자기가 울고 그는 덤덤해야 했다.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는 여자와 그의 아들을 끼고 눈치 보며 20년 가까이 산 사람이다. 이제 놓아줄 때도 되었거늘, 왜 이렇게 미련스럽게 울고 있을까? 우진은 그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우진의 눈엔 우둔한 성인(聖人) 같아 보였다.
삼일 동안 아무도 오지 않는 빈소를 둘이 지켰다. 하루만 하자고 했지만, 우진의 아빠는 김미경을 그렇게 보낼 수 없다고 딱 잘라 반대했다. 어쩔 수 없이 삼일을 그와 붙어 있어야 했다. 생각보다 두 사람 사이에 추억이 많았다. 어릴 적 같이했던 놀이며, 같이 갔던 곳들, 이건 어디서 난 상처인지까지, 신기할 정도로 그는 다 기억하고 있었다. 삼일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어딘가에서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유골함을 받아 들고, 서울 왜곽의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는 아니 그들은 이미 이곳을 정해 두었던 모양이다. 옆자리는 자기 자리라고 했다. 혹시 자기가 죽으면 여기에다 묻어달라며…. 죽어서도 그녀 옆에 있고 싶다는 이 남자. 그의 마음을 읽기에 우진은 아직 어렸다. 이제 막 심은 듯한 나무 밑에 미경을 묻고 이름표를 걸었다. 한 사람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이 두 사람의 머릿 속에서 돌고 돌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는 우진에게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왜 그렇게 그 대학에 보내려고 했는지 아니?”
“엄마 욕심이었겠죠.”
“네 아빠가 거기 나왔어, 네 엄마도. 그리고, 나도.”
우진은 운전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처음 듣는 얘기다.
“나는 보육원 출신이라 혼자 일어서려면 공부밖엔 방법이 없었어. 미친 듯이 공부해서 들어갔지. 생각해 봐. 고아에다 먹고살기에 바빴으니 얼마나 꾀죄죄했겠니. 그런데, 네 엄마랑 아빠는 좋은 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늘 빛이 났어. 바로 C. C가 되더니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더라고. 졸업하면 곧바로 결혼한다는 소문까지 났었고 말이야. 그런데도 내 눈에는 네 엄마밖에 안 보이는 거야. 가까이 있으려면 내 마음을 숨기고, 친구라는 명분으로 옆에 있는 방법밖엔 없었어. 그러다 둘 사이에서 네가 생겼고, 네 엄마는 아주 기뻐했어. 나는 좌절했고. 인생이 끝나버린 것만 같았어. 그런데, 그 소식을 전하자마자 네 아빠는 매몰차게 미국으로 가버리더라. 그래서, 나에게 네 엄마 옆자리가 생긴 거야, 너도 함께. 김미경에게 좋은 기억은 그 학교밖에 없어. 죽는 순간까지도 네 친아빠와 너를 사랑했으니까.”
그의 말은 국어책에 나오는 시조처럼 들렸다. 구슬픈데 어렵다. 단어 하나하나에 뜻풀이가 필요했다. 며칠 제대로 못 자서 인지 머리까지 아프다. 우진은 집 근처에서 내렸다. 집에 들렀다 가라는 아빠의 말을 정중히 거절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지난 3일이 꿈만 같았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굉장히 평안했다. 살짝 웃고 있는 거 같기도 했다. 목이 조여 죽어가면서 웃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미 이십 년 전에 웃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그 자리는 화와 울분이 전부 차지해 버렸다. 그리고, 결국 이십 년 만에 본인을 버림으로써 그 웃음을 되찾았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워도 아들이다. 죽음을 선택하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면 아들에게 변명 한 번쯤은 할 수 있지 않나? 아빠 말대로라면 우진을 사랑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홀연히 떠나버렸다. 자신의 영원한 웃음을 되찾기 위해. 우진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