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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Oct 15. 2024

은폐

“김 주임,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다급하게 경찰서 주차장을 나가는 감식 차량을 보고 박 형사가 물었다.

“등산갑니다. 요 며칠 잠잠하더니만, 일단 다녀올게요.”

김 주임이 모는 과학수사 차량은 순식간에 경찰서 밖으로 사라졌다. ‘등산이라 또 누가 자살이라도 한 건가.’ 박 형사는 편의점에 들러 커피 하나를 사 들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어제 발생한 묻지마살인 사건 용의자의 진술을 받아야 한다. 아침 등굣길의 여학생을 칼로 찔렀다. 복부를 한차례 찔린 여학생은 비장과 췌장까지 파열되어 과다 출혈로 병원 이송 도중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비틀대며 현장에서 배회하던 용의자는 목격자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박 형사에게 넘겨졌다. 유치장에서 술이 좀 깨고 나야 진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 진료기록과 마약 검사를 의뢰해 둔 상태다. 체포 당시 음주 측정 결과로 보아 만취 상태였던 건 분명했다. 그런데 왜? 아침부터 만취한 채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는 여학생을 찌른 것일까? 그것도 일면식도 없는 아이를. 박 형사는 잠시 짬을 내 연우에게 항상 앞뒤 살피고, 이어폰 꽂고 길거리 다니지 말라고 메시지로 신신당부했다. 물론, 답은 없다…. 


 술이 어느 정도 깼는지, 어제보단 눈빛이 선명해 보였다. 이제 스물아홉. 무슨 이유로 아침부터 만취한 채로 칼을 휘둘렀을까?

“강동석 씨, 본인 맞습니까?”

“네.”

“주민등록번호랑 주소가 어떻게 됩니까?”

또렷한 목소리로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어제 있었던 일 기억하고 있습니까?”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전과도 없고, 직업도 없다. 거주지만 봐도 잘 사는 집 아들이다. 심지어 소위 일류라 불리는 대학을 나왔다. 범죄의 동기? 연결고리?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강동석 씨는 어제 오전 8시, 구미동에서 등교하던 여학생을 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다. 

“사망한 여학생과 아는 사이였습니까?”

입을 굳게 다물기로 한 모양이다. 그때, 장 부장이 밖에서 박 형사를 불렀다.

“팀장님, 강동석 부모가 변호사 입회하에 조사받길 원합니다.”

복도 끝에 변호사로 보이는 남성과 중년의 남녀가 꼿꼿하게 서 있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살인범 자식을 무슨 변호사까지.”

장 부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박 형사의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강동석 부모, 요 근처에서 크게 병원 운영한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러면서, 아들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나 뭐라나.”

“정신과 치료 기록은 나왔어?”

“아니요. 정신과 치료받은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정신적인 문제라는 거야? 남의 새끼 죽여놓고, 부모라는 사람들이 그것도 배운 사람들 아냐? 하…. 일단 알았어. 들어오라고 해.”     

강동석의 부모가 데리고 온 변호사는 강동석 옆자리에 앉아서 강동석의 대리인으로 피의자 조사에 동참했다. 변호사는 정신 감정을 의뢰했고, 최근 구직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와 조현병 증상을 보이고 있었으며, 본인의 거부로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어왔고, 알코올 중독이 의심되는 과음이 문제였다며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변호사의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 하지만, 박 형사의 질문은 모두 ‘기억이 안 난다.’로 일관됐다. 조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박 형사는 아이가 참변을 당한 장소에 가보았다. 누군가가 놓고 간 꽃과 바나나우유, 과자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안타까운 꿈. 영안실에서 마주한 아이는 연우 또래의 아이다. 안타까운 피해자다. 박 형사는 아빠의 감정으로 아이를 보게 된다. 만취했다는 강동석은 아이의 책가방을 피해 옆구리를 제대로 찔렀고, 아이는 그 한 번의 비이성적인 타인의 손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다. 하루아침에 딸을 잃은 엄마는 실신해 버렸고, 아빠는 살인범을 죽이러 간다고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지인들이 어떻게든 그가 이성을 찾게 돕고 있었지만, 쉬워 보이진 않았다. ‘나라도 저러지 않을까.’ 박 형사는 그의 마음이 백번 이해되고도 남았다. 연우는 ‘ㅇㅇ’이라고 짧게 답을 해왔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그 한 가운데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일도 사건 번호로 남는 남들의 얘기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졌다.

 

 정신 감정의뢰 결과는 이상이 없었다. ‘술에 취해 일어난 우발적 범죄.’ 그들은 그렇게 주장할 것이다. 술에 의한 심신미약이 여전히 통하는 나라다. 박 형사는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다른 증거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의 집에서부터 현장까지 모든 CCTV를 다시 확인하고, 그의 인터넷 검색기록과 게임접속 기록을 하나하나 보다 보니,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계획된 범죄라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다.

 강동석은 게임 중독으로 보였다. 하루 접속 시간이 평균 12시간이 넘었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게임을 한 셈이다. 게임은 아주 폭력적이었다. 그의 노트북에는 ‘한 번에 죽이는 법’, ‘과다 출혈’, ‘급소’ 같은 검색어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사건 당일 아침, 집에서부터 비틀대며 나오는 강동석의 오른손 끝에 반짝이는 물건이 보였다. 과도를 옷소매에 숨겨 나와 현장에서 휘두르는 것까지, CCTV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박 형사는 계획적 살인 의도를 가진 무차별 살인이라고 결론짓고, 강동석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반갑지 않은 사건이 박 형사에게 전달되었다. 습관처럼 김 주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주임! 이거 며칠 전, 등산 간다던 그거야?”

“네.”

“감식 결과도 아직 안 나온 거 같던데.”

“맞아요. 오늘내일 중으로 나올 거예요. 나오면 바로 알려 드릴게요. 요즘 보기 힘든 중독사건 같아요. 저희 소견으로는.”

박 형사는 파일을 훑어보았다. 부패가 많이 시작된 사체가 산 중턱에서 발견되었다. 약초꾼들이 발견하지 않았다면, 백골화되어 신원 파악조차도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반듯하게 누운 자세로 발견되어 처음엔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하지 않았다고 했다. 검시관과 과학수사팀의 1차 감식 소견은 타살. 피부 표면에 초록색의 착색이 드문드문 관찰되었다. 사진으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몇 시간 후, 김 주임에게 전해 받은 국과수감식 결과는 안타깝게도 시신의 신원은 30대 초반의 여성이라는 것과 파라콰트에 의한 중독사란 것뿐이었다.      


“박 형사님! 점심 같이 안 드실래요?”

김 주임이 형사과를 찾아왔다. 

“나 바빠. 딴 녀석 찾아봐.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풀어?”

“그죠. 완전 산속이더라고요. 등산로도 없는. 그분들 아니었으면 발견되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일부러 보이게 두고 간 거 같기도 하고, 묻던가, 뭐라도 덮어 둘 거 같은데 말이죠. 사진 보시면 알겠지만, 지문을 뜨려고 해도 뜰 수가 없을 정도로 손이 아예…. 실종자 가족 중에 일치하는 DNA라도 나오면 좋을 텐데….”

“인근 지역에 30대 여성 실종자 수가 어마어마해. 일일이 대조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이 사건 공개로 돌리고, 착용하고 있던 옷이랑 신발 언론에 뿌려봐야지. 뭐”

“고생하십시오. 저는 국밥 한 그릇 때리고 오겠습니다. 오는 길에 샌드위치라도 사다 드려요?”

“아냐, 이따가 짜장면 한 그릇 시키지 뭐.”

김 주임의 마음이 고마웠다. 납골당에 다녀온 뒤로 더 챙기는 듯하다. ‘지 앞가림이나 잘할 것이지.’ 속으로 생각하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공개수사로 돌린 효과가 있었다. 일주일 만에 언니와 엄마라는 사람이 경찰서로 찾아왔고, 3개월 전, 갑자기 연락이 안 되어 언니가 실종신고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었다. 언니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엄마가 다른 자매라고 했다. 엄마와의 DNA 대조만 하면 쉽게 신원 파악이 될거라 생각했는데 복잡해졌다. 일단, 언니의 DNA와 일치하는 퍼센트와 사망자의 주소지에서 과학수사팀이 찾아온 칫솔과 모발로 그녀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친엄마는 아니지만,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었다. 주검으로 돌아온 딸이 믿기지 않는지, 엄마는 딸을 봐야 믿을 수 있다고 울며불며 보여 달라고 했으나 사망자의 언니와 형사들이 만류했다. 시신 상태를 보면 충격이 더 심할 뿐이다. 

 

 신원이 파악되자 수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33세 직장인 최지영 씨. 그녀의 핸드폰은 그녀의 집 근처에서 꺼진 채 종적을 감췄다. 언니 말에 의하면 사귀던 남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의 인적 사항까지는 알지 못했고, 삼십 대 후반의 공무원이라는 얘기만 들었다고 했다. 통신사의 협조를 받아 그녀의 통화 기록을 살펴보았다. 그녀가 실종되기 6개월 전부터 유독 통화가 잦은 사람이 특정되었다. 박 형사는 그에게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을 요청했다. 그는 새파랗게 질려서 박 형사를 찾았다.

“지영이 찾았습니까? 어딨습니까?”

박 형사를 보자마자 남자는 그녀의 행방을 물었다. 박 형사는 그를 진정시키고, 부검을 마치고, 가족들이 장례 절차까지 이미 끝낸 상태임을 알려 주었다. 그는 애처롭게 울기만 했다.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현재 유력한 용의자인 그에게 하나하나 질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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