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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Oct 08. 2024

징크스

1

 김 주임, 아니 시영은 박 형사와 헤어진 뒤, 차에 올랐다. 크게 심호흡했다. 까딱하면 박 형사 앞에서 울 뻔했다. 연우 엄마는 시영에게도 존재감이 컸다. 이 지방청으로 전원해 왔을 때 유일하게 시영을 따뜻하게 받아준 사람이다. 시영은 그때가 생각나 시동도 켜지 못한 차 안에서 한참을 울어야 했다.


 벌써 5년이 지났다. 서울에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본가로 내려가기로 결정은 했지만, 고향에 돌아갔다 다시 서울로 온 선배들의 얘기는 그녀의 귀향길을 더 두렵게 만들었다. 서울에서는 3년 차부터 과학수사팀에서 줄곧 일했다. 그녀에게는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더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고자 하는 지방청엔 자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나마 경험이 있는 경제팀으로 지원했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임에도 사람들은 그녀를 이방인 취급했다. 서울은 워낙 사건 사고가 많다 보니, 그녀는 의도치 않게 경험이 많았고 그 덕분에 사건이 쉽게 해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무리가 있었다. 특히나, 여경들의 시선이 매우 불편했다. 그녀의 이혼이 뒷담화에 오르내리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시비를 걸었다. 그때 정은 언니를 만났다. 팀은 달랐지만, 외롭고 고달플 때마다 정은 언니는 시영을 친동생처럼 살갑게 대해 주었다.


 시영이 경제팀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쯤 수배자전담반, 다시 말해 수배자추적팀이라는 게 만들어졌다. 형사들만 범인을 잡으러 간다고들 생각하지만, 경제팀에 근무하는 수사관들도 때때로 수배자들을 잡으러,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당시 그 팀에 여경이라고는 김 주임밖에 없었다. 다들 갖은 핑계를 댔다. 김 주임의 뒷담화를 하던 그 입으로. 

 첫 수배자를 서울에서 잡아서 KTX로 이동해 온 적이 있었다. 네 명이 한 조로 움직였는데, 수배자 수갑을 김 주임이 같이 차고, 다른 팀원들이 양쪽에서 밀착 방어를 하며 시민들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하는 긴장된 상황이었다.

“어머, 저 이런 거 처음 봐요. 범인 잡아 오는 거예요?” 호들갑 떨며 사진을 연신 찍어대던 젊은 여자에서부터 해코지당할까 봐 근처도 못 오던 사람들까지. 사람들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그 사건을 해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서울에서 A급 수배자가 내연녀 집에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를 잡으러 수배자추적팀이 서울로 다시 출동했다. 내연녀의 집은 찾았으나, 그가 상주한다는 확신은 없었다. 이틀을 꼬박 잠복하고, 그가 타고 다니는 차량 한 대를 특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지금 내연녀 아파트주차장에 있다.

“차 팀장님, 제가 저 새끼 유인해 볼게요.”

“무슨 수로?”

“제가 차를 박았다고, 그렇게 해 보면 안 될까요? 여자는 의심 잘 안 하잖아요, 쟤들도, 안 그래요?”

“저번처럼 차 앞으로 뛰어들려고?”

“에이, 안 그래요, 팀장님한테 너무 까여서, 그래도 잡았잖아요.”

“그 새낀 잡았는데 네가 다쳤잖아. 인마!”

“멍 좀 든 걸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아, 그때 제가 그 새끼 귀에다 대고 욕 해줬어요. 사람들 앞이면 모욕죄로 고발당할까 봐. 그 표정을 보셨어야 하는데, 하하하.”

“제발, 몸 좀 사려. 김 주임. 내가 너 때문에 수명이 줄어. 어쨌든 네가 전화할 동안 우리는 계단에서 대기하고 있을게. 너도 통화 끝나면 합류해. 알았지?”     

 

 시영은 자신들이 타고 온 차량을 수배자가 타는 걸로 의심되는 차 앞에 갖다 붙였다. 그리고, 차에 올려진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자가 받았다.

“혹시, 1234 차주 되시나요?”

“무슨 일이죠?”

“죄송해서 어쩌죠, 제가 차를 살짝 긁었어요.”

“잠시만요, 자기야, 전화 좀 받아 봐.”

굵은 목소리의 남자가 전화를 이어받았다. 시영은 차를 긁고 어쩔 줄 모르는 초보 운전자가 되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초보라 주차하다가 그만 차를 좀….”

“내려가겠습니다. 거기 계세요.”     

수배자추적팀은 내연녀 아파트 동 입구와 현관 앞 계단 위아래에서 대기 중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시영은 내연녀 집 앞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내연녀 집의 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수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영은 재빨리 현관문을 등으로 고정하고 기다리고 있던 팀원들 모두 합세해 그를 체포했다. 시영은 미란다 고지를 하고, 그의 팔에 수갑을 걸었다. 그리고, 1년 뒤 시영은 과학수사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날은 유난히 푸른 하늘이 반겨주는 아침이었다.

 과학수사팀으로 옮기고 6개월 정도가 지난 때였다. 마음도 편해졌다. 김 주임을 괴롭히던 여경들은 한 둘씩 육아휴직을 갔다. 열심히 일하니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주기 시작했다. 막 출근하는 시영의 눈에 어떤 아주머니가 개 한 마리를 안고 민원실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떠돌이 개? 그럼, 파출소로 가시든가. 아침부터 경찰서까지….’ 시영은 불길했다. 편의점에서 젤리 하나를 사 들고 자리에 앉았다. 찝찝한 마음을 젤리 한 알에 씹어 날려 보내며 한참 사건 처리를 하고 있는데, 공기의 흐름이 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정은 언니 메신저가 아직 켜지지 않았다. 경제팀은 오늘 아침부터 바쁜가 보네, 하던 찰나에 그 연락을 받았다.     

 

 쾌청한 날씨였다. 박 형사는 아내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일주일째 집에 가지 못했다. 아내에게 속옷이랑 필요한 걸 부탁해서 받으러 가려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읽지 않았다. 전화기도 꺼져 있다. 아침부터 바쁜가 싶어 경제팀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경제 5팀 팀장이 박 형사를 보자마자 묻는다.

“박 팀장, 최 부장 어디 아파? 연락 없이 늦게 오는 사람이 아니잖아. 지금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연락도 안 되고, 전화도 꺼져 있고. 무슨 일이야?”

“그러게요. 저도 연락이 안 돼서 내려왔는데 아직 안 왔습니까?”

“응, 전화가 꺼져 있네. 오겠지.”

박 형사의 핸드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최 정은씨 보호자 되십니까?”     

 

 박 형사와 김 주임은 성심병원 영안실에서 그녀를 마주했다. 김 주임은 부서를 옮기고도 정은과 자주 만났다. 사적인 자리에선 언니였고, 경찰서 내에서도 언니였다. 주말에 시간이 나면 연우랑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키즈카페도 갔다. 그녀의 남편인 박 형사와도 친 오빠처럼 친해졌다. 그녀는 시영이 한참 사건 후유증에 빠져서 헤매고 있을 때,  진심으로 충고해 주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김 주임은 믿을 수가 없었다. 

 박 형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루틴은 너무나 정확했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경찰서 방향이 아닌, 박 형사가 아는 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동네로 향했다. 그리고 낯선 길 전봇대를 들이박고, 사망했다. 시영과 과학수사대 팀장은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국도의 갓길 전봇대를 박았을 뿐이다. 차량 파손도 그녀의 외상도 심하지 않다. 단순한 사고였다. 그런데, 죽었다.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시영은 눈물을 꾹 참고 박 형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검 하실 거예요?”

“어쩌지, 몸에 칼 대는 거 무서워하는데…. 우리 정은이.”

박 형사는 이미 차가워지기 시작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다. 시영은 그녀의 몸에 남은 데스 사인을 보았다. 하지만,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건 그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형사가 아닌 그녀의 남편이니까.

“하자, 부검. 밝혀야지. 이렇게 가면 안 되잖아.”

부검 결과는 더 참혹했다. 차라리 교통사고에 의한 내상 같은 사유였다면 지금은 그녀를 보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살인 사건 피해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미 죽은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교통사고는 위장이었다. 사인은 질식사. CCTV가 없는 국도의 어느 한적한 시골길에서 죽은 채로 운전석으로 옮겨졌다. 시영은 영안실에서 그녀의 입 주변과 입안에서 상흔을 보았다, ‘뭔가를 입에 집어넣었다가 뺀 거 같은데.’ 시영의 느낌은 맞았다. 국과수 분석에서도 ‘이물질에 의한 기도 막힘으로 인한 질식사’라는 소견이 나왔다. 봉지를 씌웠거나 손수건 같은 무언가를 입에 넣어서 숨을 못 쉬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그렇게 만든 이는 자기 얼굴을 철저하게 가리고, 정은 언니가 발견된 그 지점에서 죽은 이를 운전자로 바꾸었다. 그가 언제 그녀의 차에 탔는지, 왜 그녀를 죽였는지? 그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쪽지문을 그녀의 차 안에서 찾아내긴 했지만, AFIS(지문 자동 검색시스템)에서도 일치하는 지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사건 발생 후 1년 가까이 그녀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지만, 결국, 국도변 40대 여성 살인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 파일 속에 포함되고 말았다.


 달콤한 하루의 휴식을 보내고 시영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길에 나섰다. 주차장에서 멋들어지게 한 방 주차를 끝낸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편의점부터 찾았다. 하루치의 젤리를 사고 1층을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잠깐, 이거 개소리?’

시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젊은 여자가 개 한 마리를 안고 민원실 앞에 앉아 있었다. ‘시발, 개는 좀 데리고 들어 오지 말라고!’ 아침부터 짜증이 몰려왔다. 당직 조로부터 간밤의 사건 얘기를 듣고, 조회를 시작하던 참이었다. 출동 신호다. ‘아, 그놈의 개새끼…. 불안하더라니.’ 시영은 감식 준비를 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길에 박 형사를 마주쳤다.

“혹시?”

“응, 아마 너랑 목적지가 같을걸?”

“아침에 개 한 마리가 있더라고요. 정은 언니 사건 나던 날도 개가….”

박 형사는 못 들은 척하려는 것 같았다.

“죄송해요. 박 형사님, 아침부터.”

“죄송할 것도 많다. 개 들어 오면 강력 사건 터지는 거, 우리 징크스 아냐? 그런가 보다 해야지. 그렇게 따지면 수두룩해. 핑계 댈 거.”

박 형사는 김 주임의 어깨를 툭툭 치며 현장에서 보자는 말을 하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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