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이 조용하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니까 저녁은 같이 먹자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직 답도 없고, 집에도 안 온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방문을 두드려봐도 답이 없다. 딸은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카레 준비를 했다. 음식을 같이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라도 건네 보려고 했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딸이 좋아해서 아내에게 유일하게 배운 요리가 카레다. 채소와 고기를 썰어 넣고 볶다가 시판 가루 소스와 물만 넣고 끓이면 되는 간단한 건데도 자주 해주지 못했다. 카레가 보글보글 끓을 때쯤 현관 쪽에서 소리가 났다.
“연우 왔니?”
“네.”
“손 씻고 와. 아빠가 카레 만들었어. 같이 먹자.”
“카레 싫어요.”
“왜? 너 좋아하잖아?”
“싫어요. 그냥 마라탕 시켜 먹을게요.”
쾅. 방문이 닫혔다. 한 시간 후 배달 기사가 초인종을 누르고, 딸이 현관에서 마라탕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정은아? 어떻게 해야 해?’
다음 날, 출근길에 경찰서 주차장에서 김 주임을 마주쳤다. 한 보따리 들고 가는 거 보니 출동인 모양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김 주임은 박 형사를 그냥 보내지 않는다.
“어제 연우랑은 얘기 좀 하셨어요?”
박 형사는 고개만 가로저었다.
“요즘 애들 마라탕이랑 탕후루 좋아한대요. 그런 거 좀 사가세요.”
“어제 좀 말해 주지 그랬어! 그나저나, 김 주임은 아침부터 현장이야?”
“네, 변사요. 목맴 자살 같다는데요. 일단 가보면 알겠죠.”
김 주임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과학 수사 차량 운전석에 올라타고 직원들과 사라졌다. ‘성질 급한 건 알아줘야 해. 저 녀석도. 아참, 마라탕, 탕후루?….’ 박 형사는 탕후루를 검색하며 사무실로 향했다.
김 주임은 사건 현장인 빌라 옥상에서 변사자와 마주했다. 검시관이 먼저 도착해 변사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받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자살인가요?”
김 주임이 물었다. 검시관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전형적인 자살처럼 보이는데, 받침대가 없어. 어떻게 저기에 끈을 달고 매달렸을까?”
검시관의 말을 듣고 보니, 옥상 물탱크 밸브에 빨랫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어지간히 독한 마음이 아니면 이렇게 죽기도 힘들 것이다. 옥상 건조대에 빨랫줄 하나가 잘려져 나가 있는 걸 보니 그걸 잘라 사용한 모양이다. 잘려져 나간 빨랫줄 일부를 증거 봉투에 담았다. 밸브에 줄을 매고 목에 건 채로 뛰어내리듯이 매달렸다면 가능하려나? 뛰어내리며 목이 조여왔다면 본능적으로 살려고 손으로 줄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일단, 김 주임은 변사자의 목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받침대를 걷어차고 매달리는 것과 뛰어내리면서 매달리는 건 분명히 상흔 흔적이 달라야 한다. 끈 자체가 까슬까슬하다. 목 주변에 조금의 까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아! 이건??’ 김 주임 눈에 타살 임이 분명한 증거가 보였다. 범인을 밝혀주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사람은 스스로 이런 상태가 되고 싶진 않았음이 분명했다. 발견 상태 그대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확인한 후. 시신을 내려서 더 자세히 관찰했다. 검시관 말로는 사망 추정 시각이 최소 10시간은 지나 보인다고 했다. 김 주임과 직원들은 본격적으로 변사자의 온 몸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눈꺼풀결막에 점 출혈이 많았다. 그리고, 팔다리 하방 부위에 있어야 할 시반도 보이지 않았다.
“검시관님? 자살 아닌 거 같죠?”
“그러게, 강력팀 불러야 할 것 같아.”
박 형사는 곧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재개발 지역으로 이주 기간을 알리는 안내문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동네였다. ‘CCTV는 기대도 못 하겠군.’ 박 형사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건물 4층을 한달음에 뛰어 옥상으로 향했다. 김 주임은 변사자의 손톱에서 무언가를 채취하고 있었다.
“뭐로 보여?”
“글쎄요, 자살을 위장한 타살?”
“체구가 좀 있네, 50대쯤 되려나?”
“목격자 말로는 여기 사는 분은 아니래요. 1층에 아직 거주 중인 분이 아침 7시쯤에 담배 피우러 올라왔다가 발견하고는 신고했대요. 유류품이 신발밖에 없어요. 핸드폰도 없고, 일단 지문부터 채취해서 신원확인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혹시 모를 증거들을 수집하느라 과학수사대 직원들은 분주했다. 국과수 부검 결과가 나오면 이 여성이 누군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있겠지. 나머지는 형사과에서 풀어야 할 일이다. 박 형사는 김 주임이 변사자에게서 신원과 타살의 증거 등을 확인할 동안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문을 시작했다.
반 이상이 떠난 폐허 같은 마을이었다. 인적조차 드물어서 탐문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일단, 아직 운영 중인 동네 가게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한밤중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건너편 정육점 앞에 외부로 향한 CCTV가 하나 있어서 확인해 보니, 사건추정 시간으로 보이는 시간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데, 새벽 2시경, 쌀 포대 같은 자루를 메고 골목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어둡고, 화질이 좋지 않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덩치가 작은 사람이란 것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동 수단이 있었을 텐데….’ 갑자기 CCTV 안에 커다란 자루를 들고 나타나서는 끝내 돌아오지 않은 사람!
박 형사는 그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은 길이다. 대문이라고 하기도 뭐한 쪽문들이 골목을 마주하고 있고, 집 집마다 공가라는 빨간 표시가 점령하고 있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그들과 함께 이주한 탓이겠지. 박 형사는 골목 끝까지 걸어가 보았다. 마주하는 4층 건물. ‘아, 이쪽으로도 연결되는 거였구나.’ 박 형사는 자신들이 온 길이 본 도로와 접해 있고, 자루 같은 걸 메고 온 사람이 온 길은 이면 도로와 접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면 도로에 있는 CCTV를 모두 뒤졌다.
박 형사는 사무실로 돌아와 확보한 CCTV를 다시 확인했다. 오토바이였다. 평범한 오토바이. 색깔도 구분이 안 되고, 번호판도 없었다. 오토바이를 세워 둔 곳은 확인했으나 출발 지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박 형사는 오토바이 사진과 자루를 짊어진 사람의 사진을 뽑아서 다시 그 동네로 향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세운 지점을 먼저 확인해 보았다. 그럼 그렇지. 오토바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을 붙잡고 오토바이와 자루 포대를 멘 사람에 대한 기억을 캐물었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이 동네에 이런 오토바이는 수두룩하다며 헛수고 하지 말라는 식으로 핀잔을 주신다.
‘피해자 신원부터 파악되어야겠구나.’ 내일쯤이면 나오겠지. 박 형사는 집으로 향했다. 도중에 아침에 검색해 둔 탕후루를 주문했다. 이런 것도 배달이 되는구나! 집에 도착한 박 형사는 씻을 여유도 없이 배달 온 탕후루를 딸 방문에 걸어두고 다시 사무실로 출발했다. 그 사이 피해자의 신원이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연우야, 오늘 밤에 아빠 못 들어가겠다. 문단속 잘하고 자.’ 딸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파악된 정보를 확인했다. 피해자는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54세 여성, 신 씨였다. 사건 현장일 수도 있으니 김 주임팀도 동행했다. 신 씨는 발견된 곳과 20여 분 떨어진 동네 단독주택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박 형사님! 여기!”
김 주임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현관 앞에 빨랫줄이 잘려져 있었다. 김 주임은 잘려진 부분의 빨랫줄의 묶인 부분을 풀고 증거 수집 봉투에 넣었다. 곧이어 들어간 방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과학수사팀이 집 안 내부를 수색할 동안 박 형사는 집주인에게 사망한 여성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혼자 사신 분인가요?”
“네, 남편은 일찍 죽고, 아들 하나 있는데 지방에서 직장 다닌댔어요.”
“어제 혹시 소란스럽거나 수상한 낌새는 못 느끼셨어요?”
“네, 평소에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해서…. 이사 온 지 1년 넘었는데, 2층 입구가 저희 출입구랑 달라서 마주친 적이 별로 없어요. 아래위로 살아도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시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일하거든요. 시장 오며 가며 본 적은 있어도…. 아, 근데 한 달 전이었나? 남자랑 2층으로 같이 올라 가는 걸 한 번 보긴 했어요.”
“아들 아니었을까요?”
“에이, 아니에요. 오십은 되어 보이던데요? 윗집 아줌마보다는 어려 보였지만, 아들은 아닐 거예요.”
"생김새는 혹시 기억나시나요?"
"글쎄요...신 씨보다 조금 더 컸나. 키가 작았던 거 말고는..."
아들의 알리바이는 이미 확인했다. 그는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부검이 끝나면 장례 절차를 밟을 것이다. 박 형사네 팀원들은 신 씨의 통신사에 요청해서 핸드폰 기지국 이동과 통화기록을 일일이 확인했다. 석 달 전부터 매일 통화한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번호는 어제 아침 이후, 마치 통화가 안 되는 걸 알고 있다는 듯 한 번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박 형사님. 돈 될만한 건 아무것도 없네요. 싹 쓸어갔거나 원래 없었거나, 물색흔이 아주 구석구석 있어요. 핸드폰도 현금도 지갑도 도장도 통장도 뭐 아무것도 없어요.”
“지문은 좀 나왔어?”
“감식 더 해봐야겠지만 장갑흔이라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요즘 범인들은 다 똑똑하다. 갈수록 범인 잡기가 어려워질까 봐 걱정이란 생각이 들던 차에 연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손에 탕후루를 들고 브이를 하고 있다.
“김 주임, 탕후루가 통했나 봐.”
사진을 보여주자 김 주임도 웃는다.
“말보단 때론 요런 게 통한다니까요.”
박 형사는 힘이 났다. 다시 풀어보자. 신 씨의 통화기록 상대자는 55세의 여성이었고, 확인해보니 그 번호는 남동생이 사용 중이라고 했다. 누나는 대번에 무슨 사고라도 일으켰냐고 물었다. 용의자일 뿐이며 아직 확인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그녀의 남동생 최기영은 47세로 전과 17범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잘한 사건들을 일으켰고, 강도상해로 7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지 석 달이 조금 지났다. 박 형사는 사망한 여자가 일했던 식당으로 향했다. 최기영의 사진을 보여주자, 식당 주인은 대번에 알아보며 단골손님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달 전부터 신 씨와 부쩍 가깝게 지내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남자가 외상을 자주 했는데, 외상값을 신 씨 월급에서 제하기도 했다는 걸 보니 보통 사이는 아님이 틀림없었다. 핸드폰 기지국으로 그의 위치를 파악해 보려고 했지만, 전원은 꺼진 상태였다. 박 형사와 팀원들은 기약 없는 잠복에 들어가기로 했다. 두 팀으로 나누어 누나가 알려 준 고시원 인근과 누나 집 근처에서 기다렸다. 누나 말에 따르면, 일정한 직업도 없고, 돈 떨어지면 자기에게 찾아올 거라며 연락이 오면 바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정황상 최기영은 출소하자마자 사망한 여성을 지갑처럼 사용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