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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Oct 11. 2024

징크스

완결

 현장은 너무 참혹했다. 어깨 위로만 무려 아홉 군데, 허벅지에도 두 군데의 자창이 발견되었다. 죽이려고 작정한 이의 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누가 발견한 거야?”

“어머니가요. 아침 8시쯤에 아들 반찬 갖다주려고 잠시 들렀던 모양이에요. 그 시간이면 학원 가고 없을 시간이라 냉장고에 넣어 두고 가려고 들어왔다가 보신 모양이에요.”

“많이 놀라셨겠네.”

“기절하셔서 구급차에 실려 가셨대요.”

박 형사는 변사자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손도끼 그런 걸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예기는 아닌 것 같아요. 검시관 말로는 사망 추정 시각이 오늘 아침 7시쯤이 아닐까 하던데.”

김 주임은 말을 하면서도 다른 과학수사대원들과 함께 증거 찾기에 바빴다. 그녀는 사인을 실혈사로 확신했다. 목 주변과 허벅지에 피가 낭자해 있었다. 목 보다는 허벅지 대동맥을 건드린 게 과다 출혈의 원인 같아 보였다. 범행 후, 증거 인멸을 위한 시도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부분에서부터 성의가 없다고 해야 하나? 다른 범행 현장의 그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치우다 만 듯, ‘이깟 거 무슨 소용이야.’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쪽지문 몇 개는 찾았다. ‘이게 다 그 개새끼 때문이야.’ 김 주임은 사무실로 돌아와 죄 없는 남의 집 귀한 개에게 욕을 퍼붓고는 몇 개 안 되는 증거들을 국과수로 보냈다. 


 박 형사는 그의 신원부터 확인했다. 보이스피싱 운반책으로 2년간 복역하고 1년 전에 출소한 서동민이라는 사람이었다. 이제 서른 살. 건축기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는지 책상 위에 학점 은행제로 발급받은 졸업증명서랑 건축기사 시험 일정 등이 놓여 있었다. 2년간 복역하며 열심히 살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지나간 죄는 차치하고, 새롭게 시작하려던 젊은 인생이 어쩌다가 이런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된 건지, 이유는 찾아야 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아들은 억울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시작했는데, 보수가 많다 보니 쉽게 발을 빼지 못했고, 총 다섯 건의 운반책을 하게 되었다. 재판을 받으면서 많이 후회했고 반성문도 많이 제출했다고 한다. 피해자 중에 자살한 사람까지 생기면서 심적 고통이 더 심했다나...

 

 출소 후, 다시는 그런 일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고, 건축기사 자격증을 딴다며 학원이랑 원룸밖에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부모의 말이다. 오열하며 아들을 죽인 범인을 꼭 잡아달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세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로남불, 자기 죄는 작아 보이고 남의 죄는 커 보이는 법이다. 아들이 죽은 그의 앞에서 박 형사는 처음으로 유가족에게 동정심이 생기지 않았다. 서동민은 아버지의 말처럼 갱생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는 일 때문에 자살한 사람까지 생겼다면 2년이란 판결은 너무 유하지 않나? 반성문의 효과였을까? 피해자들은 어디선가 아직도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죗값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새 삶을 살 수 있는 세상.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박 형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객관적으로 사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혹시나 보이스피싱 조직이 그를 포섭하러 왔다가 실패하자 죽인 건가?’ 박 형사는 그의 핸드폰 기록을 확인해 보았지만, 수상한 점은 찾지 못했다. 통화 기록도 거의 없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출소 후엔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았다. 다른 범죄와 연루된 것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원룸 엘리베이터 CCTV에서 수상한 남자를 찾았다. 180센티미터 정도의 건장한 남성. 모자와 마스크, 가방을 둘러맨 평범한 학생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새벽 5시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룸 건물에 들어와 아침 7시 30분에 다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밖으로 나갔다. 입주민들에게 그 남성을 물었지만, 거주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박 형사는 엘리베이터 남성의 뒤를 역으로 추적했다. 용의자일지도 모른다. 그가 나간 길로는 그의 행방을 더 이상 쫓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왔던 길을 CCTV를 따라 되짚어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커다란 학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각종 자격증을 다루는 종합학원 같은 곳이었다. 엘리베이터 속 사진을 데스크에 내미니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옷차림새로는 쉽게 판단하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는 한 층 더 올라가 학원 접수실에 있는 여성에게 그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대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아, 이 친구. 알죠. 건축기사 자격증 준비하는 학생인데, 얘 옷이 거의 매일 이거에요. 학원 동영상 강의 촬영할 때 보조하면서 학원비 절반 할인받고 있거든요. 싹싹하고 일도 잘하고, 그런데 이 친구는 왜 찾으세요? 학원등록 할 때 인적 사항 적게 되어 있으니까, 어디 보자…. 여깄네. 이 친구입니다.”

 

 이도형. 스물다섯, 순하게 생긴 인상이다. 이런 아이가 둔기로 한 사람을 무참히 살해했다? 쉽게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전과도 없었다. 헛수고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감식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려고 했다. 그러나 시간차가 있다 해도 거주지가 다른 두 남성의 동선이 겹치는 건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그의 집 주소로 향해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박 형사는 이도형의 부모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의 본가는 경기도 인근의 평범한 아파트였다. 두 분은 경직되어 있었다. 그냥 경찰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정확한 증거도 없이 용의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들의 근황을 물었다. 그의 엄마는 초점 없는 눈으로 금기의 책이라도 여는 사람처럼 조용히 읊조렸다.

“우리 애는 왜 찾아요? 우리 도형이 여행 다녀온다고 어제 아침에 전화 왔었어요. 당분간 전화 안 될 거라고, 혼자 여행하고 싶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어요. 누나 기일이 어제였거든. 지 누나 그렇게 보내고 많이 힘들어했어요. 우리야 자식을 잃었으니 힘들어도 삼켜야지. 그런데, 그 녀석은 마지막을 봤으니까 더 힘들었을 거야. 도형이랑 누나가 유난히 사이가 좋았어요. 둘이 같이 서울에 살면서 의지도 많이 했을 거고. 앞에 앉아 있는데 미안하지만, 우리는 경찰 지긋지긋해. 범인 잡으면 뭐 해! 우리 딸은 없는데……….”

두 분은 울분에 겨워 가슴을 치며 울었다. 박 형사는 열었던 메모지를 조용히 닫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박 형사는 이도형의 누나, 이수지의 사건 파일을 부탁해 확인해 보았다.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수지는 4백만 원가량의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신고했고, 피해자 진술까지 받았다. 잠시만, 김시영? 담당자가 시영이였구나. 박 형사는 시영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시영아, 5년이나 지나서 기억하려나? 너 경제팀 있을 때 이수지 씨라고, 보이스피싱 피해자로 너한테 조사받았던데...”

“기억해요. 저 그 사건 때문에 경제팀 관두고 과학수사로 옮겼거든요.”

“그 사건이랑 부서 바꾸는 게 무슨 상관이 있길래?”

“그분이 저한테 조사받고 한 달 뒤에 자살했어요. 4백만 원 때문에. 범인 꼭 잡아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그녀한테 그 돈은 단순한 4백만 원이 아니었어요. 동생 학비로 꼬박꼬박 모아둔 돈, 그걸 잃은 거예요. 돈보다 자기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더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 새끼, 진짜 미친 듯이 찾았어요. 결국 지능팀이랑 공조해서 일당들 다 잡았죠. 그럼 뭐해요. 이미 피해자는 죽고 없는데…. 허무했어요. 그녀의 간절한 얼굴이 떠올라서 한참 동안 빠져나오질 못했어요. 그때 정은 언니가 저보고 가고 싶어 하는 데로 가라고, 마침 과학수사팀에 자리가 생기기도 했고요. 그런데, 갑자기 그 사건은 왜 물어 보시는 거예요?”

“서동민 살인 사건에 이수지 동생이 관련이 있는 거 같아. 아직 정황밖에 없어서 용의자로 단정 짓기가 애매해. 그냥 동선이 겹치는 것밖에 없거든.”

“이수지 씨 동생이 일당들 잡고 난 뒤에 저를 찾아왔었어요. 장례식 때 몰래 다녀왔는데 알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범인 잡아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일 것 같은 순한 친구였어요.”

이제 막 대학을 입학한 건축학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착하고 순한 인상. 그 외에는 김 주임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이도형이 다니던 건축기사 학원에 서동민도 같이 다녔더라고. 이도형 부모님 말씀으로는 사건 공판 열릴 때마다 가서 참관했던 모양이야. 그런데, 우연히 서동민을 학원에서 마주쳤고, 뒤를 밟아 주소지를 확인한 뒤 학원으로 나서는 그를 살해하고 누나의 복수를 했다? 시나리오는 가능하지. 안 그래?”

김 주임은 깊은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4백만 원 때문에 자살한 그녀를 떠올리고 있음이리라. 

 박 형사는 감식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동선 외에 직접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인들에게 물어봐도 김 주임 말처럼 한결같이 착하고 순한 사람이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 전화기는 그의 집 근처에서 꺼진 채 그대로다. 그의 집을 압수수색을 하려고 해도 명분이 없었다. 감식 결과가 빨리 나오길, 아니면 이도형의 여행이 빨리 끝나서 연락이 닿길…. 그는 그 남매를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아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 박 형사의 전화기가 무겁게 울렸다. 발신자는 김 주임이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박 형사님, 지금 성심병원 영안실로 오셔야겠는데요?”

“왜?”

“이도형 찾았어요.”

박 형사는 급히 차를 몰았다. 성심병원 영안실. 그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다. 그 뒤로도 자주 왔지만, 그날따라 괜히 마음이 더 무거웠다. 박 형사는 자기 생각이 틀리길 바라며 영안실로 들어갔다. 김 주임은 기다렸다는 듯 이도형을 만나게 해주었다.

“집 근처 등산로에서 목맨 채 발견됐어요. 오늘 새벽에…. 옆에 있던 가방에서 손도끼 한 자루랑 유서가 발견됐고요. 유서가 얼룩덜룩해요. 울면서 쓴 건지.”

그의 옷차림은 엘리베이터에서 본 것과 동일했다. 그는 서동민을 도끼로 무자비하게 내려찍고, 무서워서 집 근처 산으로 도망간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이렇게 계획된 것이었을까?

“부검을 해 보면 더 자세한 사망원인이 밝혀지겠지만, 서동민 사망 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여요. 목맨 흔적도 자살 쪽에 무게가 더 실려 보이고. 그 착해 보이던 사람이 왜 그랬을까요?”

김 주임은 말을 끝내고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본인의 동생이 죽은 것처럼 구슬프게 말했다.

“범인들은 멀쩡히 잘만 살아가는데, 왜 억울한 피해자들이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피해자 본인들이 심판하려 하는지…. 전 정말 모르겠어요.”


 김 주임은 영안실을 나와서도 한참을 울었다.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지만, 박 형사도 씁쓸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법이 너무 약해서일까, 이도형은 한 명씩 출소하면 순서대로 죽일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서동민을 죽이고, 심하게 괴로워했다. 누나를 죽게 만든 놈들을 죽이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더 큰 괴로움에 휩싸여 후회하면서 누나 곁으로 간다는 짤막한 글을 남겼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서동민의 상흔에 있던 흉기와 이도형의 가방에서 찾은 도끼가 일치했고, 그가 입고 있던 옷에서 서동민의 혈흔이 나왔다. 서동민의 집에서 나온 쪽지문도 이도형의 것으로 밝혀졌다. 도끼의 혈흔도 지문도 모두 이도형이 피의자임을 입증했지만, 그는 구속되지 않았다. 그렇게 원룸 살인 사건은 피의자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박 형사는 사건을 마무리 짓고 아내의 납골당으로 향했다. 자주 찾고 싶지만, 사건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녀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신 형사 아니야? 왜 내 억울함은 아직 못 풀고 있는 거야?’ 연우와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 그를 향해 원망을 쏟아내는 것 같아서 오랜만에 찾았음에도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돌아서서 나오는데 김 주임이 국화꽃 한 다발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야, 너 뭐야?”

“왜 오늘 오신 거예요? 나 참, 이런 데서 마주치면 오해받는다고요.”

“하하하, 걱정 마셔. 넌 내 취향 아니거든?”

“나도 마찬가지거든요!! 가지 말고 기다리세요. 금방 인사만 하고 올게요.”

김 주임은 정은에게 한참 조잘거리다 온 것 같았다. 금방 온다더니…. 박 형사는 고맙고 미안했다. 정은을 기억해 주는 사람은 이제 김 주임밖에 없는 듯하다. 모든 이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그녀의 사건도. 


 둘은 각자의 차로 경찰서 근처로 다시 돌아왔다. 내일 둘 다 근무다. 차를 아예 두고, 술 한잔하자며 근처 선술집에 나란히 앉았다. 

“박 형사님, 아니 오라버니. 옛날에 정은 언니 있을 때는 오라버니라고 불렀었는데…. 그죠?”

“그러게, 그때가 좋았지? 연우도 방문 안 닫고 나 잘 따랐는데.”

“사춘기 꼬맹이, 연우는 그 뒤로 좀 어때요?”

“알다가도 모르겠어. 어떤 날은 살갑게 다가오다가 어떤 날은 방문도 안 열어주고.”

“좋아질 거예요. 두 분 딸이잖아. 걱정 마셔요.”

“넌 좀 괜찮아? 그 새끼는 더 연락 없어?”

“네, 아직은요.”

“마음 잘 챙겨. 너 보면 불안불안하다. 내가.”

그때 순찰차 한 대가 지나갔다. 열린 창문 틈으로 “둘살 의심, 둘살 의심.” 무전이 들렸다.

“오늘밤 근무자들 쉽게 넘어가긴 틀렸네요.”

“내일도 그렇지 않을까?”

두 사람은 싱거운 대화를 나누며 며칠간의 기억을 쫓아내려고 애썼다.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의심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증거가 전혀 없었다. 둘은 더 찾아보자며 공조 의지를 다졌다. 두 사람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 그녀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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