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남편의 차에 수배를 걸었다.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할 텐데…. 박 형사는 저녁을 대충 때울 생각으로 근처 샌드위치 가게로 향했다.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이 녀석아! 또 빵이냐? 이쯤 되면 빵 중독이야.”
“어! 박 형사님! 웬일이세요? 안 좋아하시잖아요?”
“네가 샌드위치만큼 영양학적으로 건강한 식품이 없다며? 나도 한 번 먹어 보려고.”
“당근이죠. 근데 이게 단점이 하나 있어요.”
“뭔데?”
“그게 말이죠. 배가 금방 꺼져요.”
박 형사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사무실에서 먹으려던 샌드위치를 김 주임과 함께 가게 안에서 먹고 가기로 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뭐 좀 나왔어?”
“다행히 소파가 남아 있더라고요. 혈흔도 발견했어요. 국과수감식 기다려야죠. 엄청 잔인하게 죽인 거 같아요. 비산혈흔 형태만 봐도 아마 동맥파열이지 않을까 싶어요. 혈흔이 튄 형태가 딱 그래요. 아직 실종자를 보지 못해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기지국이 강원도인 거 말고는 확인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카드도 사용 안 하고, 이거 먹고 강원도로 가려고. 어쨌든 가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기지국 근처를 싹싹 뒤져야지. 하...벌써 힘드네. 두 사람 말이야. 부부싸움이라도 한 걸까?"
김 주임은 잠시 생각에 잠긴 거 같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그럴 수도 있죠. 의외로 부부싸움 중에 홧김에 서로 죽이는 사건 우리 많이 보잖아요. 부부 싸움하니까 또 생각나네. 그 새끼. 제 전남편요. 술만 마시면 그렇게 저를 때렸잖아요. 나름 나도 경찰인데 맞고 사는 게 쪽팔려서 1년을 참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도박때문이더라고요. 돈 잃고 오면 홧김에 때린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그만두자 했어요. 10년을 알고 지냈는데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어요. 그때 자괴감이란 말도 못 해요. 아이고, 또 이런 신세 한탄을. 어젯밤에 그 새끼가 꿈에 나오는 바람에. 죄송해요.”
“야 인마. 그 얘기 어디 가서 할 데도 없잖아. 이혼하고 여기 온 뒤로 한동안 그 새끼 너한테 계속 전화하고 스토킹 해서 내가 전화 대신 받아서 혼 내준 거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한데. 나한테라도 해. 정은이가 있으면 이럴 때 좋을 텐데. 정은이 대신에 나도 꽤 잘 들어주는 편이지 않아?”
“하하하, 언니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나저나, 그 새끼 도박하는 건 어떻게 안 거야?”
“강원도 정선 어디 모텔 영수증이 옷에서 나오더라고요. 처음엔 바람인 줄 알았어요. 마음이 변해서 나를 그렇게 때리나. 그래서 그 모텔을 찾아갔는데, 커플로 갈 만 데가 아니었어요. 여관도 아닌 것이... 모텔 주인 말이 숙박자 대부분이 카지노 하러 온다는 거예요. 그때 감이 왔죠.”
“너도 참. 고생 많았네. 이제 좀 잊어라. 10년이면….”
“그러게요. 헤헤.”
박 형사는 김 주임과 헤어진 뒤 사무실에 와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도박으로 돈 잃고 술 마시고 와서는 그 스트레스를 김 주임에게 풀었어. 나쁜 놈.’ 박 형사는 시영의 전남편에게 욕을 하고 수첩을 펼쳤다. 그때였다. 찰나에 스쳐 지난 한 가지 생각! 박 형사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하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박 형사팀은 낯선 곳에 와 있었다. 형사 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직접 와 본 적은 처음이었다. 이곳에 과연 있을까? 벌써 어딘가로 사라진 건 아닐까? 박 형사는 긴장한 채로 카지노 안으로 향했다. 카지노 측에 확인해서 그가 이곳을 여러 차례 다녀간 것을 확인했고, 심지어 어제도 카지노에 출입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오늘도 올지 모른다. 반나절을 쉬지 않고 달려 카지노 오픈 시간부터 밤새 그의 흔적을 좇았으나, 한발 늦은 것 같았다. 너무 넓어서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팀원들이 흩어져 밤새 뒤졌으나 그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한숨도 못 자고 긴장하고 다닌 탓에 다들 힘이 쭉 빠졌다. 아침이 되자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왔다. 밤새 얼마의 돈을 따고 또 잃었을까? 탐문 중에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도박의 굴레에 대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적게는 수천에서 수십억. 그렇게 전 재산을 잃고 가족도 잃은 사람들이 카지노 근처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결국 고독사이거나 자살로 삶이 마무리될 걸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한다는 말도. 마지막으로 나오는 사람까지 다 확인한 박 형사 팀은 근처 모텔을 다시 뒤져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일단 허기진 배부터 달래고자 팀원들과 함께 근처 시장으로 향했다. 장거리 이동과 밤샘 수사로 지쳤는지 다들 말없이 밥만 먹었다. 뚝배기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워갈 때쯤 계산대에서 익숙한 사투리가 들려왔다.
“콤프됩니까?”
주인은 당연하다는 듯 손을 내밀어 뭔가를 받아 들었다. 박 형사는 숟가락을 놓고 벌떡 일어나 곧바로 계산대로 향했다. 박 형사는 낯선 남자의 팔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김지성 씨! 저 좀 잠깐 보실까요?”
그는 깜짝 놀라 도망가려고 했지만 뒤이어 나온 형사들에게 둘러싸여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박 형사는 일단 그를 차에 태웠다. 며칠 씻지도 못했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김지성 씨, 부인 강성미 씨 어딨습니까?”
“모릅니다.”
“김지성 씨 댁에서 부인 혈흔이 나왔어요. 순순히 자백하시죠.”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는 박 형사에게 담배 있냐고 물었다. 박 형사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늘 소지하고 있는 담배 한 개비를 건네고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차에…. 그런데 그게 중고차 입고 대출을 받아서 아직 못 찾았어요. 어제 가서 따려고 했는데 돈이 없어서. 오늘 조금이라도 어디서 융통해서 돈 따면 차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박 형사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장 부장을 그가 말한 곳으로 보냈다. 그의 차는 모 전당포에 맡겼다고 했다. 전당포를 찾은 장 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팀장님, 주차장이 너무 넓은데요? 와, 여기 장난 아니에요. 이런 건 저도 처음입니다. 차가 도대체 몇 대야?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 빨리 연락드릴게요.”
김지성과 함께 차에서 기다린 지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장 부장에게 연락이 왔다.
“팀장님! 찾았습니다. 차 트렁크에 여행용 가방이랑 그 안에 김장용 비닐에 싸인 시신 한 구도…. 어떻게 할까요?”
“장 부장 어부바탁송 알지? 그거 알아봐. 그대로 싣고 가자.”
박 형사와 다른 팀원들은 남편 김지성을, 장 부장은 그의 차를 탁송차에 싣고 경찰서로 돌아왔다. 미리 연락을 받은 김 주임은 트렁크부터 확인했다. 여행용 가방 안에는 습기 제거제가 가득 들어있었다. 김장비닐로 몇 겹을 둘러싼 건지... 슬슬 추워지는 계절이 되어서였을까? 비닐로 꽁꽁 싸맨 나머지 공기가 통하지 않아서일까? 부패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영안실로 옮긴 후 김 주임과 팀원들은 증거가 될 만한 것들과 신원 확인용 지문을 확보했다. 국과수 부검결과로 사망원인과 다른 증거들은 더 밝혀질 것이다. 김지성은 모든 걸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박 형사는 덤덤하게 조사를 시작했다.
“왜 그랬습니까?”
그는 테이블만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 형사는 그가 입을 열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시신도 찾았고, 증거는 넘친다. 그가 자백하지 않아도 기소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왜? 신혼 3년 차 아내를 무참히 살해했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는 자포자기한 듯 조용히 말을 꺼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좀 받으려고 했어요. 집이 아내 명의라 아내 동의 없이 대출받기가 힘들었어요. 퇴직금도 중간 정산해서 다 잃고, 카드대출까지 받아서 다 잃고, 돈 나올 데가 거기밖에 없어서...”
“도박 자금이 또 필요했습니까? 많이 잃었는데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까?”
“이제 요령이 좀 생겼거든요. 목돈만 있으면 그동안 잃은 거 다 만회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런데 안 해준다잖아요. 제가 무릎꿇고 빌면서까지 말했는데… 순간 화가 나서 그만.”
그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박 형사는 조사를 잠시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저런 인간 말종들을 상대로 뭘 하고 있는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박 형사는 장 부장에게 뒷일을 부탁했다. 증거도 충분하고, 시신도 찾았다. 자백도 받았다. 하지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경찰서 밖에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김 주임이 과수 차량에서 내리는 게 보였다.
“현장 다녀오는 거야?”
“변사 사건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나저나 그 사람은 자백했어요?”
“응, 도박해야 하는데 대출을 안 해줘서 홧김에 그랬대. 지금 장 부장이 진술받는 중이야.”
“도박 중독은 답 없어요. 아, 과수 사무실에 같이 가요. 부검 결과 나왔어요.”
부검 결과를 먼저 본 김 주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고, 사망한 지 꽤 됐네. 그렇게 아내를 차가운 자동차 안에 방치해놓고 도박이 하고 싶었을까.....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네요.”
건네받은 부검 소견서에는 자창에 의한 실혈 사라고 적혀 있었다. 무려 아홉 개의 자창이 목에서만 발견되었다. 그리고, 시간차 있는 멍 자국도 여러 개 발견되었다. 지속적인 구타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맞으면서도 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까?
“쉽게 말할 수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박 형사님 눈이 멍 사진에서 시선이 멈춰 있어서요. 왜 미리 피하지 못했나 그런 생각하셨던 거 아니에요?”
“한 번씩 무섭단 말이야. 너 신기있는 거 아냐? 안 그래도 그 생각 중이었어. 계속 맞아왔다면 부모님이든 경찰이든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어야지.”
“남편이란 사람, 좋은 사람이었다면서요? 분명 좋은 사람이었을 거예요. 도박하면서 바뀐 거겠죠. 아마, 아내는 도박만 끊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자기를 때렸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아마 그 부인 입장에서는 맞는 거보다 남편의 폭행과 도박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더 힘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 때리고 나서 정신 돌아오면 또 잘해주기도 하거든요. 그 새끼도 그랬고, 그렇게 버티는 거예요. 오늘 맞아도 내일은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까, 지금만 참으면 된다. 그런 생각이 어느새 생기는 거 같아요. 그리고, 경찰에 신고한다? 우리도 경찰이지만 가정 내 사건에 대해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냐고요.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박 형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영이 1년간 전남편에게 맞으면서도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이유. 이번 사건과 다를 게 없었다. 스스로 벗어났다고 말해도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걸 보면 그녀도 과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10년이 흘러도 어려운 일은 어려운 일인 것이다.
김지성의 현장검증이 이루어졌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내를 향해 부엌에 있던 칼로 목 주변만 집중적으로 찔렀다. 그리고, 시신과 함께 하루를 보낸 김지성은 집에 있던 김장비닐로 시신을 꽁꽁 동여매고 여행용 가방 안에 그녀를 욱여넣고는 습기 제거제를 사방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피 묻는 소파를 닦아서 빼내고 벽면과 그 주변, 집안 곳곳을 말끔하게 닦았다. 벽에 튄 혈흔이 생각보다 잘 닦이지 않자, 아내를 죽인 날 주문한 풀 바른 벽지를 꼼꼼하게 덧붙였다. 완벽해 보였다. 그는 거래처에 미팅이 있다며 회사에 출장신청서를 내고, 3박 4일간의 출장길에 올랐고,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현금인출기에서 아내의 현금을 조금씩 인출했다. 그리고, 근처 전당포에 차를 저당 잡고 천만원을 손에 쥔 그는 하루 만에 그 돈을 다 잃었다. 시계까지 전당포에 맡기고 그 돈마저 다 잃고, 카지노에서 받은 콤프로 한 끼 때우고 남은 건 현금화하려던 참에 박 형사 일행에게 잡힌 것이었다.
김지성은 후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착하고 건실했던 사람이라고 다들 입모아 말했다. 지인과 함께 놀이 삼아 방문했던 카지노에서 뜻밖의 재능을 보였고, 한 번이 두 번, 두 번이 세 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도박에 물들어 갔다. 그가 법무부 차량에 올라 이동하는 걸 지켜보던 박 형사는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차량에 후송되어 가던 신 씨가 생각났다. 10년 전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조폭이었다. 그는 경찰서를 떠나던 날, 박 형사에게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며 차에 올랐다. 너희 가족들 무사하지 못할 거라며….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보니, 박 형사도 잊고 살았다. 하지만, 그가 투옥되고 5년 뒤, 박 형사의 아내는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는 여전히 교도소에 있는데 말이다. 박 형사는 계속 그의 주변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씁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박 형사는 근처 선술집에서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지금 집에 가도 연우는 집에 없을 것이다. 연우가 학원 마치는 시간에 맞춰서 들어가야지 생각하고 앉아서 한두 잔 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흘러가고 있었다. 천천히 소주 한 병을 비워내고 있는데 옆에 누가 조용히 앉는다. 장 부장이었다.
“퇴근 안 하시고 혼자 청승맞게 이러고 계십니까? 저라도 부르시죠.”
술 한 잔을 따르며 장 부장은 종업원에게 자기 잔도 부탁했다.
“장 부장이 웬일이야. 칼퇴근의 정석 우리 장 부장이!”
“에이, 저희가 칼퇴근이 어딨습니까? 사건 끝나면 바로 들어가는 거죠. 집사람 혼자 애 보느라 힘들어요. 쌍둥이잖습니까?”
“그런데 왜 여깄어? 집에 안 가고?”
“구원투수 등장이요. 장모님이 다 데리고 가셨어요. 저도 쉬어야 한다고. 덕분에 오랜만에 팀장님이랑 한잔 하는 거죠.”
“감사하네. 어른들 도움 없으면 애 어찌 키울까 싶어. 나도 그렇고 말이야. 아, 장 부장! 교통사고 조사팀으로 옮긴다는 소문 있던데 사실이야?”
“팀장님도 모르는 사실이 어딨습니까? 어디서 와전된 건지 참. 이 바닥도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넘쳐요. 무서워서 어디 말 한마디 하겠습니까?”
“힘들면 옮겨도 되는데, 눈치 보지 말고. 다들 오래 못 버텨.”
“저는 강력팀이 좋습니다. 힘은 좀 들지만요. 그런데 저도 사십이 넘어가니까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네요. 팀장님이 대단하신 거죠. 팀장님이야말로 이제 좀 편한 데로 가셔도 되지 않습니까?”
“편한 데가 있기는 해? 몸이 편하면 마음이 힘들고. 다 똑같아. 그리고 사람들 말하는 거 신경쓰지 마. 나도 정신병 걸릴 뻔했어. 근데 지나고 나니 별일 아니야. 나만 옳으면 되는 거야.”
두 사람은 묵묵히 잔을 채우고 마셨다. 사건을 해결했기에 가능한 한 모금의 술이기도 하다.
“연우도 내년이면 중3이네요?”
“그러게, 세월 빠르지? 3년만 지나면 그 녀석도 성인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나.”
“팀장님, 혹시 연우는 엄마 죽음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사실은 전부터 여쭤보고 싶었는데…. 기분 나쁘시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거 뭐 있어. 연우는 교통사고인 것만 알아. 기사화된 것도 아니고. 물론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아빠 마음으로는 좀 더 크고 나서 알았으면 좋겠어. 지금도 나랑 사이가 안 좋은데 그 사실까지 알게 되면, 나는 완전 찬밥 되지 않겠어? 나도 나 때문에 정은이가 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데 연우도 아마 그렇게 생각을 할 테고….”
장 부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직업의 숙명 같은 거죠. 저도 협박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인스타 이런 거 안 하잖습니까. 가족들 노출될까 봐. 총각 때는 겁 없이 달려들었는데 이제 칼 든 놈들 대할 때 무서워요. 한심하죠?”
“한심하긴, 나도 그래. 지키고 싶은 게 아직 많으니까.”
두 사람은 적당히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연우가 올 시간은 아니었다. 박 형사는 집 앞에 도착해 연우를 기다렸다. 쌀쌀한 바람이 그의 취기를 날려 주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아파트 입구에 연우가 나타났다. 웬 남자아이와 함께. 박 형사는 본능적으로 안 보이는 곳으로 몸을 피했다. 둘이 손을 잡고 있다. ‘연우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