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사는 먼저 집으로 올라왔다. ‘요즘 아이들이 빠르다더니 내 딸도 요즘 아이였네.’ 박 형사는 냉수 한 모금 넘기며 숨을 골랐다. 연우는 박 형사가 집에 돌아온 후에도 한참을 밖에 있었다. 헤어지기가 싫어서 ‘너 먼저 가, 아니야 네가 먼저 가….’ 그런 실랑이 중일지도 모른다. 박 형사가 정은이와 데이트할 때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아직 열다섯인데, 너무 빠른 건 아닌가 당황스럽기도 했다. 모르는 척하는 게 일단은 맞겠지? 박 형사는 무거운 마음을 샤워기에 흘려보내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연우가 박 형사의 방문을 빼꼼히 열더니 아빠가 잠든 줄 알고 조용히 문을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이나 밖에서 무슨 할 얘기가 있냐고.’ 박 형사는 괜히 '쳇쳇' 거리며 잠이 들었다.
아침에 마주한 연우는 여느 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자세히 보니, 살짝 얼굴에 화장도 한 것 같다.
“박 연우! 오늘 좋은 일 있어? 웬일로 아침부터 싱글벙글이야?”
“평소랑 똑같은데 뭘, 아빠가 자주 못 보니까 그런 거지.”
“그건 그래, 오늘 좀 많이 예쁘네. 우리 딸~.”
연우는 대답은 안 하지만 기분이 좋은 듯했다. 등교하면서 “다녀오겠습니다.”를 하는 걸 보면. 박 형사도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경찰서가 소란스럽다. ‘대형 사건이라도 터졌나?’ 박 형사는 강력팀이 있는 1층 문을 열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좀 조용히 지나가면 좋겠다 싶은데 장 부장과 팀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속닥거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뭔 일이야? 분위기 왜 이래?”
“요즘 애들이요. 어떤 면에선 어른들보다 더 무서운 거 같아요. 애들이 겁이 없어, 겁이. 마약반 지금 발칵 뒤집혔어요.”
장 부장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든다.
“뭔 소리야?”
“고등학생들이 마약을 팔았대요. 그것도 학교 안에서. 그 좋은 머리들 좀 다른 데 쓰지. 왜 어른들 흉내를 못 내서 안달인지 몰라.”
“애들이 어떻게 팔았다는 거야? 텔레그램이야?”
“텔레그램으로 유통한 건 맞는데, 그걸 산 방법이 기가 차요. 처방전 잘 내주는 병원만 돌면서 전국적으로 다녔대요. 그것도 아주 조직적으로. 왜 한참 문제가 있긴 했잖아요. 근데 그걸 이제 청소년들이 한다니까요.”
“펜타닐? 혹시 그거야?”
“딩동댕~!”
“그게 구하기가 쉬워? 아닐 텐데. 그보다 애들이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기는 알고 쓰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호기심이 중독으로 가는 거죠. 인생 종 치는 것도 모르고.”
그때 강력팀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장 부장이 박 형사를 쳐다본다.
“에휴... 가시죠, 팀장님.”
박 형사는 아이들이 펜타닐까지 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물론 모르지는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청소년 마약 사범과 중독자들이 많다. 범죄를 많이 다루지만, 아이들이 범죄자가 되어 가는 건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어젯밤 연우와 남자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박 형사는 애써 머리를 흔들었다. 사건에만 집중하자... 복잡한 마음을 붙잡고 장 부장과 함께 현장으로 이동했다.
“오~ 박 형사님!! 오랜만인데요?”
병원 영안실에서 마주한 김 주임이 반갑게 인사한다.
“오랜만이긴, 이 녀석아. 3일 만이야.”
“그런가? 헤헤.”
“웃지 말고, 무슨 사건인데 강력반 호출이야?”
“사망 사건이니까 불렀죠. 급성마약중독 같아요.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변사자가 고등학생이에요. 그것도 1학년.”
“뭐라고요?”
장 부장도 깜짝 놀란 거 같았다.
“아니, 안 그래도 저희 그 얘기하면서 왔는데, 마약반 지금 난리 났거든요. 고등학생들 펜타닐 처방받아 판매하고 난리도 아니에요. 설마, 그런 건 아니겠죠?”
“장 부장님! 정확하게 맞췄어요. 펜타닐 20 gm 패치가 몸에 다섯 개나 붙어 있어요. 어머니 말씀으론 지병도 없었고, 강력한 진통이 필요할 만한 사고도 없었대요. 부모님이 야간에 일 하시고 오셨는데 아이 신발이 그대로 있어서 늦잠 자는 줄 알고 깨웠더니 안 일어나서 바로 119 신고하셨더라고요.”
“다른 얘기는 더 들은 거 없어?”
박 형사는 습관적으로 김 주임에 물었다.
“그건 형사님들이 하셔야 할 일 같은데요?”
“아, 김 주임. 미안. 정신이 없다. 장 부장, 일단 주변 탐문부터 하자. 그나저나, 김 주임아, 이거 자살이야? 타살이야?”
“부검 결과 나와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검시관님 말도 그렇고 저희가 보기에도 그렇고, 타살이라고 보기보단 자살? 내지는 실수?라고 봐야겠죠? 스스로 붙일 수 있는 위치에 있어요, 패치들이.”
“음, 일단 알았어. 김 주임 수고해.”
박 형사는 팀원들을 사망한 김 군의 학교로 보냈다. 그리고, 박 형사는 김 군의 부모들을 만났다. 부검이 끝날 때까지 장례는 치르지 못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화장 날짜와 시간까지 정해놓고 빠른 처리를 원하고 있었다. 아들의 사망 원인이 마약 때문이라는 게 외부에 알려지는 게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이 죽었는데... 부모 마음이 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안타까웠다. 감정은 일단 뒤로 넣어두고, 김 군이 어떤 루트로 왜 그렇게 많은 양의 펜타닐 패치를 붙인 채 죽은 것인지는 부모의 의지와 상관없이 형사인 그는 밝혀내야만 한다.
“평범한 아이였어요. 공부는 중간이고, 특별히 저희 속 썩인 적도 없고요. 분명히 누군가 우리 아이를 꼬드겼을 거예요. 분명해요.”
엄마는 나쁜 친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직 어느 것 하나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없다. 부모에게 간단히 몇 가지 질문을 더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이는 금요일 학교에서 돌아온 이후 집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집에 들락거린 사람도 부모님 외엔 없었다. 증거품으로 수거한 아이의 핸드폰이 있었다. 엄마가 고등학생인 아들의 핸드폰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것도 이상했지만, 안에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도 이상했다. 박 형사는 포렌식 감식을 맡기고, 학교 탐문을 다녀온 장 부장과 회의실로 향했다.
“학교도 발칵 뒤집어졌더라고요. 이미 마약반이 와서 아이들 조사하고 갔고 말입니다.”
“마약반에서 뭐 들은 건 없어?”
“거기도 지금 정신없어요. 이게 아이들이 웃빵잡자고 한 게 아니에요. 일단 현재까지 밝혀진 건 김 군이 다닌 학교에서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은 아이가 10명이에요. 한 아이당 한 달 치, 그러니까 한 장당 3일, 10장씩을 처방받았으니까 확인된 것만 100장이에요. 조사하면 더 나오겠죠. 그걸 모아서 판 총책은 따로 있나 봐요. 3 학년에 중간 총책과 처방받는 애들이 있고, 그 위에 애들 봉고 태워 다닌 놈, 그러니까 총책을 찾아야하는데 쉽지 않은가봐요. 똑같은 레퍼토리를 외우게 해서 병원마다 돌면서 처방받았대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는데 집안 사정상 치료를 못 받아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펜타닐을 처방받을 수 있느냐." 그런 식인 거죠. 전화로 미리 확인하고 된다는 곳만 돌면서. 그리고, 김 군이 직접 처방받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럼, 김 군이 샀다는 거네?”
“그랬겠죠? 요즘 아이들 너무 무서워요. 미국처럼 좀비 거리가 생겨도 이상할 게 없어요. 이렇게 퍼지면. 마구잡이로 처방해 주는 병원이 제일 문제예요. 문제.”
“남 일이 아니야, 정말. 맘 편히 애들 키우겠어? 이런 세상에서?”
박 형사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장 부장도 마찬가지였다. 마약 유통에 관한 건 마약반에서 조사할 테고 김 군의 사망 원인은 부검 결과와 포렌식 결과가 나오면 윤곽이 잡힐 터였다. 어떻게 그 아이가 패치를 다섯 장이나 붙이고 죽은 건지 그게 문제였다. 다음 날, 밝혀진 김 군의 사망 원인은 예상한 대로 펜타닐 중독사였다.
“박 형사님, 이 친구, 패치를 붙이기만 한 게 아니에요.”
부검 결과서를 넘겨주며 김 주임이 말했다.
“붙이기만 한 게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구강에서도 발견됐어요. 그걸 입에 넣었나 봐요. 조각 조각내서.”
“붙이는 걸 왜 입에?”
“이게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잖아요. 패치 25 gm 짜리 하나 붙이면 3일 동안 서서히 반응이 오니까 약하는 놈들은 이걸 조각내서 불에 쬐거나 해서 입에 넣는 경로로 투약하기도 하거든요. 빨리 효과 보려고, 생각보다 지금 심각해요. 약물 중독사가 엄청나게 늘었어요. 펜타닐뿐만이 아니에요. ADHD약, 수면제, 나비약을 비롯해서 각종 다이어트 약들을 섞어서 먹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방법들로 조제해서 써요. 펜타닐이 비급여 약물이다 보니까 중복처방 체크가 안되잖아요. 그 맹점을 기가 막히게 이용한다니까요. 아, 작년 사건인데 말기암 환자인 형 치료용 펜타닐 패치를 동생이 몰래 쓰다가 급성 펜타닐 중독으로 죽고, 한 달 뒤에 형도 똑같이 죽었어요, 암이 아니라.”
박 형사는 김 주임의 얘기를 곱씹으며 김 군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밖에 모여 앉은 또래 친구들이 보였다. 박 형사는 그들에게 다가가 형사임을 밝히고 김 군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김 군이랑 친했니?”
“중학교부터 친구예요.”
그중 한 아이가 잠시 망설이더니 박 형사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어떤 친구였는지 말해줄 수 있어?”
“형사님이라고 하셨죠? 사실, 학교로 경찰들이 왔을 때는 말 못 한 게 있는데요. 현민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좀 당했어요. 그런데, 학교폭력이라고 할 정도인지 애매하기도 하고, 현민이가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집에 말해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자기 부모는 관심 없을 거라고. 알아서 한다길래…. 저라도 학교에 말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런데 마약이 학교에 돌고 있는 건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대부분은 너희처럼 몰랐어. 그리고, 네가 죄송할 일도 아니고. 혹시 현민이 괴롭힌 아이들이 누군지는 알고 있니?”
“3학년 선배들이요. 저희도 잘 못 걸리면 한 번씩 심부름하기도 해서 우리보다 더 찍혔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어요. 애들 봐가면서 괴롭히는 거 같기도 하고.”
아이들과 얘기하고 있는데 장 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박 형사님, 어디 계십니까?”
“나? 김 군 장례식장.”
“사무실로 오셔야겠는데요. 포렌식 결과 나왔는데, 어이가 없습니다.”
박 형사는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팀원들을 회의실로 집합시켰다.
“3일 대화 내용이 뭐가 이렇게 많아?”
“그 이전부터 한 번 보세요. 예상한 대로 김 군을 일부러 마약에 중독시킨 거 같아요. 내용 보시면 아시겠지만, 처음엔 패치를 그냥 한 장 줘요. 그리고, 이틀 뒤에 한 장을 더 줘요. 밤에 부모가 집에 없는 걸 알고 있어요, 얘들이.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을 자세히 설명까지 해 줘요. 잘라서 입에 넣어도 된다고 하니까 김 군이 입에도 넣고, 그랬나 보더라고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벌써 죽었어도 이상할 게 없어요. 그러다가 그놈이 텔레그램으로 얘기하자고 하거든요. 김 군이 엄마가 핸드폰 검사를 한 번씩 해서 안된다. 그랬더니 쌍욕을 하고는 그럼 메시지로 하고 바로바로 지우라고, 그리고, 죽은 날은 아주 가관이에요. 그놈이 김 군에게 다섯 장을 한꺼번에 붙이라고 해요. 김 군에게 남은 게 다섯 장이었거든요. 그리고, 10장을 더 팔아요. 선입금하면 내일 학교에서 주겠다면서. 그리고, 김 군이 100만 원을 송금했고요. 한 장당 10만 원에 팔았어요. 이 미친놈이.”
“다섯 장 붙이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판매한 놈은 몰랐을까?”
“그거보단 돈이 먼저였겠죠.”
김 군에게 한 장당 10만 원에 판 같은 학교 3학년 선배는 이미 마약반에 의해 구속된 상태였다. 이놈은 마약 유통을 한 죄뿐만이 아니라, 살인죄도 추가해야만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인데, 어쩌다가 이런 일을 하게 된 걸까?
“강태우, 맞지?”
“네.”
“마약반에서 대부분 혐의는 인정했던데, 맞아?”
“네.”
“김현민한테 펜타닐 패치 판매한 적 있지?”
“네.”
“왜 다섯 장을 붙이라고 한 거야? 죽이려고 그런 거야?”
“다섯 장 붙이라고 한다고 진짜 다 붙일 줄은 몰랐어요. 병신새끼, 진짜 저도 죽을 줄은 몰랐다고요.”
“.... 너는 안 해봤어?”
“네... 망하고 싶으면 네가 붙이고 돈 벌고 싶으면 판매만 하라고.”
“누가?”
“아씨 X, 마약반에서 다 말했어요. 거기서 물어보세요. 저는 진짜 죽을 줄은 몰랐어요. 판매한 건 맞지만 걔가 죽을 줄은 진짜 몰랐다고요. 진짜예요.”
박 형사는 마약반에 들러 서 팀장과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눈 후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신익수, 그 새끼 라인이었어? 아직 이렇게나 힘이 있다고? 감옥에 있는데?’ 마약반 팀장은 조심스럽게 신익수 아들이 위에 있는 거 같다고 했다. 아직 증거도 없고 확신도 없지만, 며칠간 조사하다 보니 펜타닐을 조직적으로 구매하게 한 봉고차가(봉고차를 몰고 아이들에게 처방받으라고 한 사람) 신익수의 아들과 함께 신익수를 면회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면회일지에는 아무 말 없이 인사만 하고 갔다고 적혀 있었다고 했다. 봉고차의 행적을 사방으로 쫓고 있지만 어디로 숨었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잡혀 온 아이들이 봉고차에 대해 아는 건 고작 봉필이 형이라는 가명과 텔레그램 연락처가 다였다.
박 형사는 그간 조금씩 알아낸 것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익수의 조직이 그의 아들을 통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돈이 될 만한 사업들을 벌이면서…. 아마도 불법 바카라와 마약같은 어두운 돈들이겠지. 아직 밝혀진 것도 없고, 더 두려운 건 어디까지 뻗쳐 있는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리고, 꼬리 자르기 수법을 쓴다. 대가리들은 전혀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고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고 있었다. 박 형사는 아내의 사고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그동안 심증으로만 있던 아내의 사고가 신익수와 관계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동안 설마했던 게 설마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연우도 안전하지가 않다. 박 형사는 새삼스럽게 공포심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