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은 찝찝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분명 놓친 게 있다. 뭘까? 사건 현장 감식을 마치고 차에 올랐지만,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지워낼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은 침입의 흔적이 있었던 건 아닐까?’ 몇 번을 꼼꼼히 확인했음에도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의 진실을 알아낼 수 있는 건 자신들의 몫이라는 책임감에 퇴근 후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틀을 잡생각으로 보낸 시영은 출근을 서둘렀다. 그새 국과수에서 무언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빌라에서 두 모녀가 죽었다. 마지막을 함께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은 위층에 사는 절친한 이웃이었고,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은 후 아래층 엄마와 딸만 목숨을 잃었다. 시영은 위층 여자가 의심스러웠지만, 이웃들의 증언에 따르면 친자매나 마찬가지로 사이가 좋았다고 하니 덮어 놓고 의심할 수도 없다. 물론, 이 부분은 형사과에서 차차 알아낼 것이다. 출근하자마자 시영은 뭔가 모를 찝찝함에 재감식을 하자고 팀장을 조르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건 다했는데 왜.”
“위층 여자 말이에요. 너무 의심이 가는데, 뭔가 놓친 거 같아서 계속 찝찝해요.”
“김 주임. 섣부른 의심은 오히려 독이 돼. 엄마가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었고, 딸이랑 같은 날 사망했으니까 동반 자살 그런 거 아니겠어? 외상도 외부 침입도 없었고, 다른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도 없었어. 엄마가 아이 혼자 남겨두고 가기 그러니까 그런 선택을 했겠지. 위층 여자는 같이 저녁 먹고 바로 자기 집에 갔다고 진술했다며?”
“알 수가 없죠. 빌라 내부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닌데.”
“수사관으로서 끝없이 의심하고 캐내는 건 너무 훌륭한 자센데 지나치면 김 주임만 힘들어. 늘 현장에서 겪는 거잖아. 우리가 할 일은 끝난 거야.”
이 팀장의 말도 맞았다. 사실 의심할 건 더 이상 없었다. 집 안엔 두 모녀와 위층 여자의 흔적밖에 없었다. 이 팀장의 말처럼 외상도 없었고, 외부 침입 가능성도 없었다. 엄마의 방에서 우울증 약 봉투가 발견된 것도 그들이 자살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하지만, 시영은 께름칙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수사경력 15년 차 베테랑이다. 그중 10년을 과학수사과에서 일했다. 놓칠 뻔한 사건을 그녀 덕분에 해결한 게 많아 팀 전체 표창도 여러 번 받았다. 그래서가 아니었다. 남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감식 결과가 나오기 전이긴 하지만 이렇게 현장이 깔끔한 사건엔 늘 물음표를 갖는 버릇이 생겼다. 몇 년 전, 방 안에서 고등학생 한 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침입의 흔적도, 자살의 징후도 없었다. 부검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영은 문득 혹시?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의 방과 연결된 다용도실에서 보일러 연통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인은 일산화 중독. 시영이 발견을 하지 못했더라도 부검 결과가 나온 후, 다시 재감식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원인이 보일러 연통임은 며칠 내로 밝혀졌을 것이다. 하지만, 시영은 늘 왜? 라는 물음표를 머리에서 지우지 않았고, 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틀 뒤 국과수에서 연락이 왔다. 엄마에게서 알코올 성분, 그리고 모녀 모두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다. 하지만, 엄마가 복용하던 수면제가 아니었다. 또 하나, 딸의 사망 추정 시간과 엄마의 사망 추정 시간이 달랐다. 위에 남은 음식물이 딸은 저녁은 먹고 얼마 후, 엄마는 최소 딸보다 두세 시간 정도 더 뒤에 사망한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이 팀장은 머쓱해하며 시영에게 다가왔다.
“김 주임, 어디서부터 해야 하지? 수면제 종류가 다르니 자살이라고 결론내리기도 애매해져 버렸어.”
“현장으로 다시 가시죠, 팀장님. 그거밖에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자살이든 타살이든 확실한 걸 찾아야죠. 졸피뎀 약통이라도 발견되면 자살로 무게가 실릴 거고. 직접 처방을 받았는지 그런 건 형사들이 해결할 문제고요.”
“그렇겠지? 그러자고.”
시영은 무거운 감식용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처음 감식할 때 놓친 부분을 다시 생각했다. 늘 있는 사건의 하나일 뿐이다. 사건 현장에서 지문 하나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팀장도 시영도 그리고, 막내 지석도 답답했다. 노란 폴리스라인을 조심스레 젖히고 들어가자, 담당 형사들도 현장에 와 있었다.
“어, 김 주임! 반갑다. 안 그래도 네가 왔으면 좋겠다 하고 있었는데, 아이고, 이 팀장님 고생 많으십니다.” 둘은 짧은 인사를 나눴다. 박 형사는 다시 시영에게 다가왔다.
“박 형사님, 뭐 나온 거라도 있나요?”
시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 형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모녀 의료 기록을 확인했는데 집에서 나온 수면제는 엄마가 처방받은 게 맞더라고. 그런데 졸피뎀은 처방받은 적이 없어. 그런데 이상한 건 말이야. 위층 여자가 마지막 목격자일 수도 있으니까 혹시나 해서 그 사람 의료 기록을 찾아봤거든?”
‘역시, 내 생각이 맞았나?’ 시영은 담담한 척 물었다.
“뭐가 이상하단 거예요?”
“그게 사건 이틀 전에 졸피뎀을 처방받았더라고. 그래서, 좀 전에 위층 여자에게 가서 그건 왜 처방받았냐고 물어봤지. 불면증 때문에 갔더니 의사가 주더라나? 자기는 그게 졸피뎀인지 뭔지도 몰랐대. 의사가 주니까 받아와서 먹었다고. ”
박 형사도 위층 여자를 제1의 용의자로 올려둔 것 같았다. 하지만, 졸피뎀은 생각보다 쉽게 처방받을 수 있는 수면제의 일종이다. 그것만으로 피의자로 특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시영은 그 말을 듣고 집 안을 다시 꼼꼼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증거가 있을 것이다. 땀범벅이 된 채 구석구석을 훑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이 팀장은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김 주임, 여 대리. 일단 복귀하자. 여기선 더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시영도 알고 있었다. 찾을 만큼 찾았고, 첫날에 비해 더 나온 증거도 없었다.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다는 이웃들의 말처럼, 외부인의 흔적이라고는 위층 여자의 지문밖에 없었다. 아침저녁 오가는 사이였다니 그럴 수도 있었다. 이 팀장과 시영, 그리고 지석은 김이 샜다. 오늘은 뭔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성과는 없었다. 시영은 빌라 주차장에 주차해 둔 과수 차량에 무거운 감식 가방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시영의 눈에 빌라 주차장 한켠에 있는 분리수거장이 들어왔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이 동네의 재활용 수거 일자를 검색하며 그곳으로 향했다.
“지석아! 이리 좀 와봐. 거기 봉투 들고.”
지석은 시영이 시키는 대로 증거물 담는 봉투를 들고 그녀에게 향했다. 분리 수거장 알루미늄 칸에 수북하게 쌓인 캔들이 보였다. 다른 재활용 쓰레기는 이미 수거해간 모양이었다.
“이거 다 담아.”
“예?”
“혹시 모르잖아. 여기서 할 순 없으니까 사무실 가서 하자. 담아. 얼른.”
시영과 지석은 다시 파란 장갑을 끼고 재활용 수거에 들어갔다. 이 팀장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시영에게 한마디 한다.
“거기 뭐가 있겠어? 괜히 진 빼는 거 아냐?”
“그래도 해봐야죠. 혹시 모르잖아요.”
배시시 웃는 시영을 이 팀장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끈질김. 그도 익히 아는 바다.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고, 그녀의 근성 덕분에 해결한 사건이 많았다. ‘그래, 거기에서 뭐라도 나오면 좋겠다.’ 이 팀장은 운전석에 앉아서 시영과 지석을 바라보며 사건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시영과 지석은 캔 겉면과 안에 내용물을 하나하나 감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국과수로 캔을 다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날따라 무전취식자와 절도사건은 왜 그리도 많은지. 출동만 연달아 다섯 번 하고 나니 녹초가 되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시영과 막내 지석은 다시 캔 입구의 DNA와 전체 지문, 그리고, 안의 내용물을 꼼꼼히 수집해 나가기 시작했다. 출동은 몇 차례 더 있었고,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같은 작업을 이어갔다. 밤은 금방 지나가고 아침이 찾아왔다. 시영은 밤새 모은 시료들을 국과수로 보냈다. 양이 많아서 일주일은 족히 걸릴 것이다. 출근과 퇴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사건 현장은 다양했다. 무연고 변사자와 화재사망, 절도, 무전취식... 일주일이란 시간은 많은 이들의 죽음과 함께 산 사람의 시간을 과거로 만들어 갔다.
마약 사범의 집에서 주사기를 증거물로 수거해 돌아오던 길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이 팀장이 국과수에서 연락이 왔다며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졸피뎀 성분이 든 맥주 캔이랑 음료 캔이 나왔어. 모녀의 지문이랑 DNA도.
“그게 다예요?”
“아니. 다른 맥주 캔에서 위층 여자의 지문이랑 DNA가 나왔는데 그 캔에서는 졸피뎀은 검출되지 않았어. 그런데 모녀가 마신 걸로 추정되는 맥주 캔이랑 음료에서 위층 여자의 지문이 나왔고 말이지.”
“적어도 위층 여자가 맥주랑 음료를 건네준 건 맞다는 거네요. 그런데, 졸피뎀을 누가 넣었는지, 그리고, 같이 마셨는지는 이걸로 부족해요. 다른 걸 더 찾아야 하는데….”
“김 주임, 일단 형사과로도 감식 결과 전달됐으니까 이제 형사들이 알아서 하겠지. 지켜보자고.”
시영은 사건 현장에서 위층 여자를 보았다. 폴리스라인 너머에서 한 여자가 무슨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자기 집과 모녀 집 사이의 계단에 서서 수사관들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모녀의 시신이 집에서 나오자 털썩 주저앉으며 통곡했다. 박 형사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사망자와 관련된 것들을 이것저것 물었고, 그녀는 친동생 같은 사이였다고 말하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과한 억측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끼던 이웃사촌이 어린 딸과 함께 하루아침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슬펐을지도 모른다. 끝없는 의심이 억울한 죽음의 한을 풀어주기도 하지만, 아주 가끔은 죄 없는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시영은 매일 가는 편의점에서 젤리 한 봉지를 샀다. 머리가 복잡할 때 젤리를 씹으면 조금 진정되는 것 같다. 계산대에서 카드를 꺼내려는데 언제 왔는지 박 형사가 불쑥 자기 카드를 내민다.
“김 주임, 또 젤리냐? 안 물려? 애도 아니고.”
“헤헤, 잘 먹을게요, 박 형사님. 어른들도 젤리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판에 박힌 사고를 하시는데도 수사는 잘하신단 말이야.”
시영은 박 형사에게 장난을 쳤다.
“아오, 요 녀석 꿀밤 한 대 딱 때려야 되는데,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신고할까 봐 그러지도 못하겠고. 나, 참. 하하하.”
시영과 박 형사는 편의점 야외 의자에 마주 앉았다. 박 형사는 커피를 마시고, 시영은 젤리를 씹으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했다. 그러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그 사건으로 넘어갔다.
“김 주임은 어떻게 생각해?”
“뭘요?”
“서정 빌라 모녀 사건 말이야. 자살로 덮기엔 앞뒤가 안 맞잖아. 그렇다고, 같은 빌라 분리수거장에서 나온 DNA만 가지고 의심할 수도 없고 말이야.”
“아까 이 팀장님하고도 잠시 얘기했었는데, 졸피뎀이 든 캔, 하나는 맥주, 하나는 음료수. 그리고, 거기서는 위층 여자의 지문이 나왔고, 그녀가 마신 걸로 추정되는 맥주 캔에서는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단 말이죠. 모녀가 죽은 날 같이 저녁을 먹었다고 했잖아요. 위층 여자는 자기가 처방받은 졸피뎀을 엄마의 맥주와 딸의 음료에 미리 넣어서 건넸고…. 충분히 의심해 볼 수는 있어요.”
“거까진 나도 생각해 봤어. 그런데 누가? 어떻게? 위층 여자는 그냥 건네기만 했고, 졸피뎀은 변사자가 직접 넣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야. 위층 여자가 캔을 미리 따고 졸피뎀을 넣어서 건넸다? 그게 더 억지스럽잖아.”
“그렇긴 해요. 혹시 위층 여자 재조사는 해 보셨어요?”
“하고 있어. 그 여자 행적 CCTV로 분석 중이야. 입구를 비추는 CCTV는 하나 있더라고. 이동 경로랑 빌라 드나든 거, 거기서부터 역추적해서 사건 당일 행적부터 일단 확인해 보려고. 뭐라도 나와야 할 텐데. 이거 말고도 사건이 지금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송치할 것도 많고, 일주일째 집에도 못 갔어.”
“연우 보고 싶겠다. 통화는 자주 해요?”
“시간대가 안 맞아. 내가 한가하면 학교나 학원에 있을 시간이니까. 서먹서먹해. 그래도 탕후루 사건 이후 좀 나아졌는데.. 보고 싶네. 휴.”
박 형사는 남은 커피를 입에 탈탈 털어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익수가 생각났다. 사건이 연이어 터지는 바람에 아직 그와 관련된 건 아무 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연우에게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길까봐 박 형사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5년째 잠잠하니 정은으로 끝내려는 건가? 박 형사는 애써 불안함을 누르고 있었다. 김 주임에게 신익수에 관한 얘기를 꺼내려다가 괜한 걱정만 끼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박 형사의 근심가득한 얼굴을 보던 김 주임이 털털스런 웃음을 지며 마지막 젤리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아이고, 혼자인 제가 나은 건가요…. 박 형사님 얼굴 보니 세상 근심 다 지고 계시네. 근데, 박 형사님. 저는 위층 여자가 범인이라고 확신해요. 제 촉 아시죠? 그날 그 여자 봤어요. 박 형사님이 그녀와 이야기하며 한참 메모 중일 때 집 안을 들여다보던 그 여자를요. 눈은 우는데 얼굴 근육이 긴장돼 있었어요. 뭔가가 분명 더 있을 텐데, 답답하네요.”
“잘 안 풀리면 김 주임이 좀 도와줘. 젤리 또 사줄게.”
“하하하. 네.”
그렇게 시영은 박 형사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헤어졌다. 들어오자마자, 출동이다. 이번엔 현장에서 범인이 검거된 살인 사건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일흔이 넘은 아버지에게 무슨 원한이 그렇게 많아서 열일곱 군데를 찔렀을까? 피 묻은 과도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현장에서 혈흔들을 수집했다. 검거된 아들의 옷에서 아버지의 혈흔이, 과도에서는 아들의 지문이 나왔다. 아들은 순순히 아버지를 살해했음을 인정했다. 존속살인죄로 구속되겠지. 증거를 찾아서 범죄사실을 밝혀내도 씁쓸함이 남는다. 살인 사건에 안타깝지 않은 사연이 어딨을까만, 가족 간의 사건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