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사는 마약반 서 팀장에게 신익수 아들에 관련된 정보들을 얻었다. 5년째 미제인 사건이다. 담당 사건도 아니다. 증거도 없고, 증인도 목격자도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게다가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다. 신익수가 박 형사에게 원한을 가졌다 한들 구속되고 5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에 갑자기 자기를 잡아들인 형사의 아내를 살해했다? 개연성이 떨어진다. 김 주임에게 자기의 생각을 살짝 흘렸을 때도 ‘설마 그렇게까지.’라고 얘기했지만, 또 그가 아니면 아내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인물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박 형사는 볼펜을 책상에 딱딱 부딪치며 한동안 생각에 잠긴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팀장님!”
“팀장님!!”
장 부장이 몇 번을 불렀는지 옆에서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조차 모른 채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시기에 댓 번을 불러도 못 들으십니까?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아니야, 걱정은 무슨. 왜 뭐? 출동이야?”
“아니요. 점심 드시러 가자고요. 밥은 먹어야죠.”
‘벌써 점심시간인가? 오전 시간을 쓸데없는 망상으로 보내 버렸네.’ 박 형사는 점퍼를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유가 있을 때 먹어두는 게 일상이 되어버려 시간이 되면 끼니를 해결하는 습관이 생겼다. 가는 내내 장 부장은 주절주절 일상적인 얘기들을 한다. 쌍둥이가 어제 어쩌고, 아내랑 그래서 다퉜다는 둥 별일도 아닌 일을 혼자 열을 내며 얘기하는데 박 형사 귀에는 들어오지도 않는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마, 인마.’
“설렁탕 괜찮으시죠?”
“어, 이런 날씨에 괜찮지.”
날이 점점 추워진다. 뙤약볕보단 낫겠지만 살을 에는 추위도 야외에서 일하는 일이 다반사인 그들에겐 반갑지 않은 계절이다. 보글보글 끓어 넘치는 설렁탕에 적당량의 파를 넣고 휘휘 저어 밥을 말았다.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맛이 탄생 되는 과정이 신비롭기만 하다. 새삼스럽게 설렁탕의 매력에 빠져 있는데 박 형사의 전화가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연우 담임입니다만, 연우 아버님 되십니까?”
“네, 제가 연우 아빠입니다만…. 무슨 일이라도?”
“학교에 한 번 와주실 수 있을지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 알겠습니다. 오늘 오후에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박 형사는 막 한술 뜬 수저를 내려놓았다. 학교에서 먼저 연락이 온 건 처음이다. 박 형사가 알기에 연우는 공부도 꽤 잘했고, 모범적인 아이였다. 생각해 보니 학기 초 학부모 상담도 못했다. 간단히 전화 통화만 하면 되는 건데도 뭐가 바빠서였는지 놓치고 말았다. 갑작스러워 당황스럽고 두려웠다. 요즈음의 연우에 관해 아는 게 없었다. 남친이 생겼다는 것 정도?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물어보진 않았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일까?
박 형사는 식사가 덜 끝난 장 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경찰서로 돌아와 꼼꼼하게 양치하고 면도도 했다. 며칠 집에 가지 못해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단정히 머리도 빗고 매무새도 고쳤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수업 시간인지 학교는 전체적으로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교무실 주무관인 듯한 젊은 사람이 안내한 자그마한 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덩치가 큰 젊은 남자가 연우의 담임이라며 깍듯이 인사하며 들어왔다. 박 형사는 자기보다 스무 살은 아래일 듯한 남자에게 구십도 가까이 허리를 구부리며 자리에 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연우 아빠입니다.”
“바쁘실 텐데 갑작스럽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연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게 실은, 연우가 조금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제 개인적인 생각에….”
“네? 위험이요? 연우가 왕따라도 당했나요?”
“아니요, 아니요. 아버님, 그런 건 아닙니다. 연우 학교생활은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모범적인 아이예요.”
“그런데, 무슨?”
“실은 이게 가벼운 사안이 아니라서. 강력계 형사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네, 그렇긴 한데. 잠시만, 혹시 강력 사건이랑 연관이 되어 있나요?”
“네.”
박 형사는 지금 경찰서가 아니라 학교 상담실에 앉아 있다. 그런데 딸아이의 담임에게 강력 사건에 내 딸이 연관되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서 한동안 담임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얼마 전에 발생했던 **중학교 동창 살인 사건 피의자의 전 남자 친구가 지금 연우의 남자 친구고, 최근까지 전 남친과 그 살해 용의자가 계속 만나는 사이였다 그 말씀인가요?”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피의자가 자수한 사건이기도 하고. **학교 측에서도 애를 썼는지 기사화되지는 않았고,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도 자세히 알려주진 않았어요.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며칠 전 연우랑 친한 아이들이 저에게 조심스럽게 말해주더라고요. 연우가 그 남자 친구를 만나기 시작한 게 **학교 가해자가 사망한 피해자를 본격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할 즈음이라는 겁니다.”
박 형사는 담임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본인의 사건이라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딸아이 일이고 아빠의 감정이 섞이다 보니 앞뒤 분간도 안 될뿐더러 사건의 흐름조차도 파악이 되지 않았다.
“혹시 연우가 집에서 무슨 말을 하진 않았나요?”
“아니요. 제가 집에 잘 없다 보니 할머니랑 거의 같이 있는데 다른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학교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보니 수사가 여기까진 미치지 않을 거 같은데, 아버님은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박 형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말이 이어질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연우가 만나는 남자 친구가 공범이라는 의심이 들어서요. 이건 학교 차원에서 아이들과 상담하다가 아이들에게 들은 겁니다. 근거리 학교이기도 하고 학원에서 주로 만나는 범위 안에 있다 보니 저희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요. 우리 학교 일도 아닐뿐더러 아이들의 말만 믿고 담당 수사관분들께 말씀드리기엔 섣부르다는 걱정도 돼서요. 전적으로 아이들의 추측이니까요. 연우 아버님께 말씀드리는 게 가장 이상적일 거 같아서 뵙자고 했습니다.”
박 형사는 그런 사건이 있는지도 몰랐다. 멍하게 앉아 있는 박 형사에게 담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 마디 덧붙였다.
“거리를 두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적어도 그 남자아이가 관련이 없음이 밝혀질 때까지만이라도.”
박 형사는 담임에게 좀 전과 같이 깍듯이 인사하고 학교를 나섰다. 그리고, 경찰서로 달려갔다. 연우의 인근 학교 동급생 살인 사건. 박 형사는 해당 경찰서 수사과장과 친분이 있다. 몇 차례 전화를 돌려 확인한 바에 의하면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절친의 절교 선언에 화가 나 친구의 집을 찾아가 목을 조르고 자수한 사건이다. 아직 조사 중인 사건. 공범의 여부는 아직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자수한 아이의 말로는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갔고 죽은 아이의 방에서 몇 차례 몸싸움이 있었으며 홧김에 목을 졸랐다는 게 전부였다. 가해 학생은 친구가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고 했고, 처음 현장을 확인한 경찰은 가해 학생이 현관의 비밀번호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사망한 아이의 몸에는 여기저기 멍 자국이 있는 반면에 가해 학생은 아무런 상처가 없다는 것. 수사관들이 밝혀낸 건 여기까지였다.
박 형사는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담임은 부모 동행 학습을 권유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학교를 가지 않고 연우와 함께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떠냐는 담임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오늘은 연우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남은 세 시간이 보름은 되는 것 같았다. 사무실에 돌아와 일주일 병가를 냈다. 하나밖에 없는 연우다. 어떻게든 지켜야 하는 소중한 딸.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서 편의점에서 커피를 하나 사 들고 바깥 의자에 앉았다. 설렁탕 한 숟가락이 지나간 식도에 커피의 쌉쌀함이 따라 들어간다. 그제야 조금 마음의 요동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에요? 병가 내신 분이 여기 이렇게 앉아서?”
김 주임이었다.
“어떻게 알았어?”
“장 부장님이 문자 주셨어요. 혹시 아는 거 있냐고. 주차장에 차가 있길래 여기로 와봤죠. 왜요? 무슨 일인데요?”
“김 주임, 혹시 **중학교 동급생 살인 사건 알아?”
“네, 알아요. 지난주에 모임 갔다가 들었어요. 거기 과수에 친한 친구가 있어서, 근데 그게 왜요?”
“가해자 전 남친이 지금 연우 남자 친구래. 담임선생님이 그 친구랑 거리를 좀 두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공범일 수도 있다고 애들이 그랬나 봐. 아직 그쪽 수사팀에서 밝혀진 건 아니고.”
김 주임은 그새 젤리를 사 들고 와서 질겅거리며 말했다.
“가해 학생이 본인의 아이폰을 초기화시켜 버렸고, 죽은 아이 핸드폰은 유심칩을 빼고 찻길에 던져버려 찾긴 찾았는데 망가져서 복구 불가능한 상태랬어요.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피해 학생 집에서 발견한 아이패드는 비번을 여덟 차례 틀린 정황이 있고요. 지난주까지는 못 열었다고 들었어요.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도 별로 없는 걸로 들었어요. 대조할 지문 몇 개. 가해자와 모두 일치했고. 공범이라…. 증거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데 망을 봤다거나 그럴 수는 있겠지만.”
“담임 선생님이 괜한 걱정을 하시는 걸까?”
“글쎄요. 뭔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니까 불러서 말했겠죠. 형사인 거 알 거잖아요.”
“응. 알더라고.”
“어쩔 생각이세요?”
“모르겠어. 사실 얼마 전에 연우가 남자 친구랑 집 앞에서 한참 동안 얘기하는 걸 내가 봤거든.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
박 형사와 김 주임 모두 말이 없었다. 딸의 남자 친구의 전 여자 친구가 그녀의 친구를 죽였다. 그리고, 딸의 남자 친구가 어쩌면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얘기를 함과 동시에 당분간 만나지 말라는 얘기를 연우에게 어떻게 잘 꺼낼 수 있을까. 평소에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딸에게.
“저, 오라버니.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그 방법밖엔 없어요. 괜히 에둘러 말하면 그게 더 복잡해질지도 몰라요.”
“그렇겠지? 하,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셔야죠. 연우 아빤데. 제가 도울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고요.”
“그래, 매번 고맙다.”